2013년 10월 25일 금요일

블로그를 만든지 2년


 2년 전 오늘이다. 경상남도 통영에서 병원선을 탈 적에 Hubris님의 블로그에 감명받아서 블로그를 처음 만들었다. 작년에도 같은 날 포스팅을 했다. '블로그를 만든지 1년'. 이제 2년이 되었다. 문득 세월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 처음으로 삼십대가 되었는데, 벌써 31살이 눈 앞에 보이는 듯하다. 나이를 먹는다고 삶의 고민들이 해결되는 건 아닌 것 같다. 듀이의 철학이 그렇듯이, 나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주위 환경도 그러하다. 그리고 나의 고민도 조금씩 색깔을 바꾸면서 내 곁에 머물러 있다. 나의 해답도 마찬가지다. 늘 조금씩 변화한다. 삶의 해답이란 늘 임의적인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p.s : 아버지는 얼마 전에 흔들의자를 장만하셨다. 쓸데없이 방이 많아서 사진의 방은 책 방, 어떤 방은 아버지의 화실이 되었는데, 의지가 책 방과 잘 어울리긴 한다. 아버지는 흔들의자를 장만하는게 로망이라고 이따금 말씀하시곤 했다. 노년에 작은 꿈 하나를 이루셔서, 의자에 앉아 흔들흔들 기분을 내시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듀이의 실용주의


 듀이는 실용주의자라고 일컬어진다. 그런데 실용주의라는 건 항상 '무언가'를 위한 실용성을 강조하는 것이니까, 자연히 그렇다면 무엇을 위한 실용주의인가 하는 의문이 뒤따라온다. 이에 대해 분명히 대답하는 것은 쉽지 않다.

 듀이가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은 것들을 두 가지 꼽자면, 진화론과 헤겔의 철학을 고를 수 있을 것 같다. 진화론과 과학의 경험주의는 당대의 시대 전반에 큰 영향을 주었다. 환경이 변화하면 어떤 생물은 살아남고, 어떤 생물은 살아남지 못한다. 살아남은 생물은 자손을 번식할 수 있다. 이 자손도 또다시 환경의 변화를 겪고, 변화의 과정이 반복된다. 생물만이 환경의 영향을 받아 변화하는 것이 아니다. 듀이의 시대에 과학기술의 발달과 급속한 산업화는 환경을 급격하게 변화시키고 있었다. 생물과 환경은 서로 상호작용한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변화시키는 되먹임 작용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여기서 듀이는 끊임없는 '변화'와 '상호작용'이 세계의 중심원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역동성은 헤겔의 철학과 조화될 수 있었다. 듀이는 과학의 기반이 되는 경험을 중시했고, 헤겔의 관념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헤겔의 변증법은 실제 세계를 반영하는 올바른 틀이라고 생각했다. 듀이는 어떤 철학도 절대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떤 철학도 진공에서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그게 속한 시대상이 투영된 반영물이고, 그 가치도 시대의 요구에 따라 달라진다. 당대에 가치가 있는 철학도, 새로운 시대에서는 그 가치를 잃고, 오히려 해를 끼치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그에 대한 해법을 어떻게 결정할 수 있을까? 듀이는 과학에 그 해답이 있다고 보았다. 과학은 경험적인 학문이다. 교조적인 진리로부터 연역된 것이 아니라, 귀납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렇기에 늘 어떤 문제가 있을 때, 다양한 해법을 그 '결과'를 가지고 검토하게 된다. 듀이가 보기에 이러한 과학적 방법이 특정한 영역을 넘어서 사회 전체의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채택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듀이의 실용주의는 오늘날의 상식과도 잘 조화되고, 아주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이런저런 의문이 생긴다. 버트런드 러셀은 듀이와 많은 부분 공감대를 이루고 있었지만, 그의 실용주의적 입장이 지나치게 엄격하게 적용되는 것을 경계했다.
 예를 들어서, 누군가 우리에게 지금 비가 오고 있는지를 물어봤다고 하자. 이럴 때 듀이의 실용주의를 채택하게 되면, 우리는 그에게 비가 온다고 답했을 때 빚어질 결과와, 오지 않는다고 답했을 때 빚어질 결과를 헤아려서 둘 중 어느 답변이 더 이로운가 판단해야만 한다. 비가 오는 것이 실제 사실이라면, 이러한 태도로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비가 오는 것이 사실이라고 언제나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는 인식론에 대한 러셀의 입장을 이해해야만 하는데, 러셀은 반대 증거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우리의 지각에 대한 믿음을 철회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러셀의 생각에는 실제로 비가 오고 있다면, 그 사실을 그대로 답하는 태도가 바람직하다. 러셀은 실용주의가 교조적으로 되어, 눈앞의 이익만을 중시하는 천박한 사회풍조를 낳을 것을 우려했다. 물론 듀이도 실용주의가 독단적인 원칙으로까지 교조화되기를 주장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당시의 각종 사회문제들이 미신이나 관습, 비이성적인 충동에 의해 발생한다고 보았고, 과학적인 태도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듀이의 실용주의 철학은 진지하게 받아들이기엔 너무 모호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많은 사회문제들이 서로 다른 가치들의 충돌을 담고 있고, 이는 과학적인 태도로 결과를 평가하고, 분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치란 것은 정량되지 않는다. 서로 다른 가치들을 비교할 수도 없다. 가치 간의 충돌은 '취향'의 차이를 반영할 때가 많다. 어떤 이는 오늘날의 사회가 지나치게 역동적이라고 비판한다. 지금의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은 어떤 사회를 이루어갈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는데 중요한 판단기준이다. 하지만 나는 결코 오늘날의 사회가 '지나치게' 역동적인지 아닌지 평가할 수 없다.
 하지만 듀이의 실용주의는 문제들이 보다 구체적이고, 특정 영역에 국한될 때 큰 도움이 된다. 경제학은 듀이의 바람대로 사회문제를 과학적 방법을 통해 접근하는 학문이다. 가령, 저축이라는 개인의 미덕은 사회 전체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해가 되기도 한다. '미덕'에 대한 교조적 생각에 사로잡히면, 사회 전체에 손해를 입힐 수도 있는 것이다.

 헤겔도, 마르크스도, 변증법의 결과는 계속되는 '진보'라고 했다. 사실 왜 변화가 필연적으로 '진보'를 의미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엄격하게 보면, 진화론의 진화도 환경에 대한 적응을 의미할 뿐이다. 진보라는 건 인간의 머리 속에만 존재하는 관념일지도 모른다. 나도 때때로 좌절하고, 무력감에 빠지기도 하지만, 내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믿는다.  듀이도 실용적인 의미에서 이런 나의 생각을 지지해주지 않았을까.

p.s : 사진은 이촌동 '동강'의 유린기. 처음 먹었을 때는 완전히 반했었다. 요즘에는 입맛이 변했는지 전같이 감동적이지는 않더라. 허허.

반항의 추억



 고교 이후의 학창 시절에 나는 몇 가지 특이한 구석이 있었다. 우선 수업을 늘 듣지 않았다. 당연히 성적은 좋지 않았는데, 전혀 개의치않았다. 그리고 도서관을 가지 않았다. 집이나 기숙사, 교실, 나중에는 카페를 선호했다. 좋아하는 교수님이 거의 없었다. 나를 아는 교수님들도 대체로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반항을 하는 것이 중요한 삶의 태도가 되어있었다. 어릴 적엔 수업시간에 조는 것이 선생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여겼다. 그런데 불과 몇 년 뒤, 수업을 듣고 말고는 온전히 나의 권한이니 간섭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중등 시절까지 억압되었던 자아의 반작용이었다. 보통의 대한민국 중학생처럼 학업에 큰 스트레스를 받았기에, 특목고로 진학한 뒤에 내가 느낀 해방감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부모님은 내가 1등을 하지 못해도 더이상 나를 나무라지 않았다. 지나친 경쟁심으로 나를 대하는 또래친구들도 없었다. 게다가 정기적으로 어른들은 내가 나라를 이끌 인재라고 이야기해주었다.
 대학에 진학한 뒤로는 동아리에 취해서 수업을 더욱 게을리 들었다. 그간 형성된 자만심은 이런저런 합리화로 내 태도를 변호했다. 어차피 공부는 혼자하는거다 출석따위로 성적을 메기는 방식은 저급하다 등.
 고교 시절에는 교내 자습실을 이용해 공부했지만, 대학에서는 도서관을 가지 않았다. 공부는 스스로 하는 거니까 도서관에 가는 태도는 한심하다고 주장했다. 사실 그렇게 기숙사에 남아서 스스로 공부를 잘 해내지도 못했던 것 같다.

 대학원은 자유롭던 공대와는 분위기가 달랐으므로, 여기서 내 수업 태도는 비로소 위기를 맞이했다. 대학원은 규율이 엄격했고, 문화는 보수적이었으며, 동기 집단이 좋은 평가를 받는 게 중요했다. 당연히 나의 수업 태도는 자주 동기 집단의 도마 위에 올라 비판을 받았다. 변명도 하고, 발끈하기도 하면서 대학원 4년을 지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물론 이와는 달리, 도서관을 가지 않는 태도는 이후로도 쭉 이어졌다. 윗사람을 싫어하는 태도도 마찬가지이다. 나의 개성 중 하나가 된 셈이다.

 흔히들 모두가 '예'라고 말할 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어야만 한다고들 하지만, '예'나 '아니오' 따위로 균형잡힌 삶의 태도를 보장할 수는 없다는 걸 나는 안다. 뻔하디 뻔한 '예'만큼이나, '아니오'도 편협함의 산물일 수 있다.
 그래도 내가 '예'라고만 하는 사람이었다면, '아니오'라고 말하는 소수를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 내가 자주 '아니오'라고 말하는 소수의 기질을 지니고 있다는게 다행스러운 점이 그거다.

p.s : 역시 어머니가 끓여주셨던 찌개. 나이를 먹고나서 알게 된 사실인데, 어머니가 보통의 주부들보다 요리를 잘하시는 거 같더라. 찌개에 대해서는 누구나 어머니의 입맛에 길들여져 있으므로 일반화하기는 힘들겠지.

2013년 10월 7일 월요일

책 쇼핑도 중독된다



 다른 쇼핑과 마찬가지로 책을 구입하는 행위도 중독이 되는 것 같다. 이전에 구입했던 책들을 2/3쯤 읽고나니 다른 책들을 더 읽고 싶어졌다. 결국 5권의 책을 샀는데, 당초에 계획했던 것보다 교양도서에 더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된 셈이다. 에라이. 잘 하는 짓인지.

종교와 과학/버트런드 러셀 저/김이선 역/동녘
과학의 미래/버트런드 러셀 저/석기용 역/열린책들
인기없는 에세이/버트런드 러셀 저/장성주 역/함께읽는책
런던통신 1931-1935/버트런드 러셀 저/송은경 역/사회평론
아들을 공부하라/데이비드 토마스, 스티븐 제임스 저/김양미 역/글담출판사


1. '아들을 공부하라'는 Hubris님의 추천을 읽고 구입하였는데 하루면 다 읽을 수 있는 부담없는 책이었지만, 솔직히 기대이하였다. 전반부는 흥미롭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진부한 인상. 무엇보다 아들이 성년이 되려면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는 내용은 어이가 없었다. 종교적인 내용을 싣고 싶다면 종교 전문 서적으로 싣거나, 처음에 표지에 밝혔으면. 이는 나같은 무신론자에게는 폭력이다.
 생각해보니 Hubris님의 추천 서적들이 내 마음에 들은 경우가 드문 것 같다. 취향이나 관심사의 차이인가. 나도 아들을 낳으면 이 책이 전과 다르게 보일지도 모르지.


2. 읽어보지 못한 러셀의 저서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전에도 밝힌 적이 있지만, 러셀의 저서들을 계속해서 읽는 것이 효율적인 독서같지는 않다. 그의 책들을 너무 많이 읽어왔다. 하지만 나로선 어쩔 수가 없다. 너무나 그의 팬이기 때문에.
 '인기없는 에세이'는 '게으름에 대한 찬양'처럼 일반 교양을 쌓기에 충분히 좋은 책이다. 아주 재미있기도 하다. 책의 부제가 무려 '지적 쓰레기들의 간략한 계보'이다! 러셀은 특별히 어리석은 열살배기 꼬마가 아니고선 이 책의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에 솔직히 그렇지는 않다. 서양철학 전반에 대한 교양수준의 지식은 있어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종교와 과학'은 유명한 저서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와 비슷한 주제의 책이다. 허나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는 여러 칼럼들을 엮은 형식인데, '종교와 과학'은 일관되게 하나로 집필되어졌다는 점에서 더 좋다. 역자에 의하면 '종교와 과학'은 러셀이 노벨문학상을 받는데 크게 기여한 책이라고 한다. 내가 보기에도 더 풍부하고, 더 선명하게 종교와 과학에 대한 러셀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 문제는 역시 난이도인데, 쉬운 책은 아니다. 아마도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보다 더 어려워서 덜 대중화된 게 아닐까.


3. 경제나 사회, 정치 등에 관해서는 웹서핑을 하다보면 수준높은 블로그들을 많이 발견한다. 아무래도 관련 분야에 몸담은 사람들이 많이들 블로그를 하기 때문인 것 같다. 반면에 철학에 대한 좋은 블로그는 확실히 드물다. 학문 자체가 대중적이지 않고, 역동성이 떨어지는 탓이 크겠다. 다른 분야처럼 활발한 리플 등으로 의견이 교환되고, 수정되고, 발전될 여지가 적다.

 간혹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철학쟁이의 말장난이 나는 싫다.'와 같은 비판을 접하면 안타깝더라. 철학을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꽤나 맞는 말이기도 하다. 많은 철학자들이 사실은 편견에 불과한 걸 아주 모호하게 포장한 이론을 만들어냈고, 그것이 심오한 양 오해되었다. 그렇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데.


4. 공중보건의로 복무하면서 이런저런 경험도 했고, 진료도 열심히 했고, 책도 참 많이 읽었다. 시간을 허투로 쓴 것 같지는 않은데, 지나고보니 내가 잘 살아가는걸까 회의감이 든다.
 얼마 전에 이미 치과 개원도 했던 고교 선배가, 최근에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형은 생화학 박사인데, 치과의사 면허도 취득했고, 이번에는 금융분야로 MBA 유학을 갔다고 한다. 안면이 있는 사이는 아니인데, 대학원 선배 한 분은 공중보건의 3년 간 사법고시를 준비해서 이번에 연수원에 들어갔다더라. 참.. 다들 가방끈이 길기도 하다.
 어째서 또 커리어를 바꾸는지 시간이 아깝다 싶기도 하고, 한편으론 나만 한 자리에 머물러 있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어찌보면 공부가 가장 쉽다. 새로운 걸 배우고, 진보하고 있다고 느끼게 해준다. 전문직 자격증이나 근사한 외국 학위가 따라온다면 더 좋다. 그리고 둘 모두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고, 사회적으로도 막강한 힘이 있다.
 하지만 다시 공부를 하게되면 그만큼 돈과 시간이 희생된다. 또한 자격증이나 학위는 어찌보면 가장 성취하기 쉬운 것이고, 내 가치의 본질도 아니다.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 커리어에 부합하는가가 중요하다. 커리어를 자주 바꾸는 건, 결국은 시간낭비를 하는 것이다.

 결국은 가장 좋아하는 것, 가장 이로운 것을 찾아야 한다. 둘이 일치하지 않다면 절충하거나 과감한 결단을 해야한다.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은 무엇일까. 삼십대가 되어서도 여전히 잘은 모르겠다.


p.s : 사진은 어머니표 계란빵.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어머니가 해주시는 간식이다. 뜨끈뜨끈할 때 먹으면 정말이지 너무 맛있다. 형용할 수가 없다.

2013년 10월 1일 화요일

흄의 철퇴



 데이비드 흄은 아주 젊은 시절부터 빛을 발한 천재이다. 그는 절대적인 진리를 깨닫고 싶어서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30살 즈음의 어린 나이에 너무나 파괴적인 결론을 발견해버렸다. 그 결과 그는 긴 세월동안 회의주의자로 살아가게 되었다. (한 때 싸이월드에서 유행하던 꿈을 잃은 축구천재 카카의 스토리가 떠오른다)
 그 뒤로 많은 철학자들이 흄의 회의주의를 뛰어넘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과적으로 모두 실패했다. 결국 흄 이후로 순수한 경험론은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1. 흄의 파괴적인 결론은 아주 간단하고 명확하다. 'A는 B의 원인이다.'라고 할 때, 우리는 보통 이것이 논리학에서의 어떤 귀결(歸結)과 마찬가지로 필연적인 것이라 여기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밥을 굶으면 배가 고프다.'는 명제를 생각해보면, 이것이 사실인 까닭은 밥을 굶으면 배가 고픈 결과를 경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으로도 계속 같은 원인에서 같은 결과가 나오리라 기대할 수 있는 근거는, 역시 지금껏 유사한 경험을 해왔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결국 순환논증에 빠져버리고, 인과관계란 증명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이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얻는 귀납적 지식에 철퇴를 가한다. 우리가 무엇을 경험하고 지식을 쌓는 과정은 인과관계에 근거를 두고 있다. 계속해서 A가 B와 연관될 때, A는 B의 원인이다 라고 결론짓는다. 이것은 모두 귀납적인 것이다.  나는 사탕을 먹으면 단 것을 알고, 잠은 안자면 피곤한 것을 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것도 안다. 그런데 흄에 의하면 이 모든 생각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우리는 아무 것도 알 수 없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흄은 절망해서 '이성과 감각에 대한 회의주의적인 의문은, 근본 치료가 불가능한 병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니 차라리 '부주의와 방심'을 택해서 회의주의를 벗어나야만 한다. 이 말은 믿을 수 없는 것을 그냥 믿어버리고, 대충 즐겁게 살라는 말이다.


2. 흄은 말한다. '미래가 과거와 유사하다는 가정은, 어떤 논증 위에 세울 수는 없으며, 오직 습관에서 비롯될 뿐이다.' 그런데 이 주장을 가만히 보면, 흄이 이야기하는 습관 역시도 인과관계에 의한 것이다. 경험이 습관을 야기했다는 것이다. 인과관계를 믿게되는 심리적 경향도 그 근거는 오로지 경험에 있는데, 흄이 이것은 받아들이는 듯이 보이는 것은 묘하다.

 흄은 절대적인 진리를 너무나 강렬히 추구했기 때문에, 자기의 결론에 크게 좌절했다. 하지만 귀납법을 통해서 필연성을 획득할 수는 없다고 해도, 개연성을 획득할 수 있다고 보면 숨통이 트이게 된다. 많은 실례가 반복될 경우에 개연성은 점차 확실성에 가까워진다. 물론 그럼에도 결코 필연성에 도달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러한 개연성을 인정하면, 이를 바탕으로 추리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때의 개연성은 분명히 경험을 벗어나 있어야 한다. 개연성이 경험에 근거한 원리가 되면, 개연성에 입각한 귀납의 원리는 순환논증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순수한 경험론을 벗어나지 않고서는 흄의 철퇴를 피할 수 없다.


3. 생각해보면 인과관계라는 개념은 우리 인간의 생물학적 본능에 근거한다. 우리는 욕구가 생기면, 반응하고, 욕구가 해소되는 일련의 본능적인 과정을 밟는다. 결국 우리 인간은 원인과 결과를 늘 정의하고, 짝지으며 살아가는 것 같다.

 그렇다고 인간의 의식구조 안에서만 인과관계가 존재하는 것 같지는 않다. 인과관계와 그에 근거한 귀납법이 없으면, 거의 모든 과학이 성립하지 못한다. 물론 우리는 흔히들 F=ma라는 것이 대단한 진리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 공식이 실험결과와 일치했기에 우리가 믿는 것에 불과하다. 경제학자나 통계학자들은 자주 상관관계와 인과관계의 차이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저 둘 역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흄의 관점으로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인과관계란 강한 상관관계의 다른 말에 불과하다. 100만번 실험해서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해도, 100만 1번째에 이르러서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이와 같은 걸 일일이 따지고 사는건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경제분석과 같이, 극도로 복잡하고 다양한 변수를 연구하는 분야에서는 흄의 철퇴를 늘 기억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p.s : 사진의 요리는 무슨 베네딕트라는데 잘 기억이 안나고, 장소는 청담동 '퀸즈파크'. 된장들의 성지라고 모 양이 소개하고 데려갔던 가게다. 정말 재미있다. 된장들의 성지라니.. 맛이고 뭐고 잘 모르겠는데, 분위기좋고 사람구경하는 재미는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