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17일 월요일

정제되지 않은 잡담



1. '디어 클라우드'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밴드다. 이 팀이 처음 알려질 당시, 서울예전 출신들이 모여서 브릿팝 스타일의 록음악을 한다고 해서 화제였다. 서울예전 출신들은 펑크나 퓨전재즈를 연주하는게 보통이라 테크니컬한 연주와는 거리가 있는 브릿팝을 한다는 게 신선하게 느껴졌다.
 당시 한 지인은 이 팀의 1집을 '그냥 가요'라며 폄하했었다. 하지만 난 이 팀의 곡들을 아주 좋아했다. 보컬이 대단히 매력적이었고, 곡도 아름다웠다. 벌써 3집까지 앨범을 내고, 최근에 두 번째 EP앨범이 나온 모양이다. 유튜브를 통해서 전곡을 들어보았다. 지난 3집 때 팀의 음악이 무르익었다고 느꼈는데, 이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게 느껴진다.
 요즘 라디오 방송 출연도 활발한 것 같고, 보컬은 황금시간대에 공중파 방송을 타기도 하더라. 좀 더 알려지고, 좀 더 성공했으면.



2. 어릴 때는 서태지를 좋아했다. 서태지가 은퇴한 뒤론 패닉의 이적이 두 번째 영웅이었다. 패닉 2집 '밑'을 소풍날 버스에서 틀고는, 노래가 괴상하다고 항의하는 친구들을 속으로 비웃기도 했었다. 언젠가부터 TV 가요프로의 순위를 믿지않았다. 더클래식의 여우야도, 패닉의 UFO도 10위 권에 들지 못했다. 내가 생각하는 '진짜'들은 이상하게 가요프로에서 과소평가되는 것 같았다. 밴드음악에 빠진 뒤로는 악기 연주소리가 작게 믹싱된 가요앨범들은 모두 싸구려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예전에 '아소토 유니온'의 리더였던 김반장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한국 대중음악사의 100대 명반에 든 그들의 명반을 내기까지, 김반장과 멤버들은 늘 흑인음악이 최고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뿐이 아니라, 다른 음악은 모두 쓰레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나는 지금껏 모범생스러운 커리어를 쌓아왔지만, 그 안에서 늘 스스로를 반항아로 규정지었다. 제멋대로 행동하면서도 당당해서, 방종을 합리화하려 궤변을 짜내기도 했다. 철이 들은건지, 귀가 열린건지 요즘은 편견이 많이 줄었다. 이제 나에게 '그냥 가요'란 폄하가 아니라, 색깔이 되었다. 요즘은 사람들에게 반듯하다거나 어른들이 좋아할 스타일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대학원 동기들이 들으면 재미있어할 이야기다. 내가 반듯하다니.
 세월이 흐른만큼, 나도 변한다. 다시 스무살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하는건 너무 이른걸까.


3. 자주 만나는 지인이 모교 병원에서 수련을 받고 있는데, 얼마 전에 요즘 인턴생활을 하고있는 후배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 분이 간호사로 큰 병원에서 꽤 오랫동안 근무를 하다가 일을 그만두고, 전문대학원 시험에 응시해서 후배로 들어왔다고 하는 이야기였다. 비록 분야는 다르지만 간호사가 치과의사로 커리어를 바꾼 셈이라 놀랍게 생각되었다. 직장을 관두는 결정을 내리는 것도, 이후에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도, 교수님들과 면접을 치루는 과정도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간호사를 관두게 된 사연이 특히 재미있다. 한달인가를 꼬박 힘들게 일하던 시기가 있었다고 한다. 늦은 밤에 퇴근해서 잠이 너무 부족한 상태로 몽롱하게 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가는데
운전을 하면서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고속도로 중앙난간을 들이받아 차가 뒤집힐만큼 큰 사고가 났다고. 이런 큰 사고에도 후배는 이마만 조금 찢어지고 전혀 다치지 않았다. 당시 의사는 잠들어 버렸던 덕에 안 다친거라고 하더랜다. 어쨌든 그렇게 큰 사고를 당했으니 당연히 몸조리를 위해 며칠 쉬려고 했는데, 왠걸 병원에서는 네가 사고가 난 건 잘 알겠으니 내일부터 출근해라 뭐 이랬다고. 그래서 때려친다고 사직서를 내고 나와서 전문대학원 시험에 응시해서 지금 치과의사가 되었으니 그야말로 전화위복이라고 해야하나.
 참 요즘 갑을 관계가 사회적 이슈인데, 제대로 을의 경험담을 들은 셈이다.


4. 한동안 학원 강사도 했었고, 요즘도 짬짬이 수험생이나 대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공중보건의를 하면서 다양한 삶을 살아온 환자들을 대하는 즐거움을 조금이나마 배웠다면, 여러 사람들을 가르치는 경험도 스펙트럼은 다를지언정 비슷한 즐거움을 나에게 가르쳐줬다.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사업가 남편을 둔 아주머니도 가르쳐봤고, 큰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 아저씨, 학교 선생님을 때려치고 의사를 준비하는 아저씨도 있었다. 외국 대학을 다니는 유학생들도 꽤 가르쳤다. 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외국에 나가있고, 미국인이 되려고 애쓰는지 몰랐었다. 아무튼 대학생들도 과외받는게 요즘의 한국식 교육이다.

 문득 기억이 나는데, 2년 전이었나 치과기공사 출신의 수험생을 과외한 적이 있었다. 치과기공사가 치과의사가 되기위해 도전하다니 놀랍게 생각했다. 당시에 이야기를 나눈 기억으로는, 치과위생사 중에도 두 분인가 치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는데 성공한 분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의사와 치과의사 사이에선 전문대학원 '출신'을 폄하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다양한 반대 이유가 있는데, 그 중엔 논리적인 내용도 있고 감정적인 내용도 있다. 현재 전문대학원 제도는 대부분 폐지되기로 결정되어 있다. 내가 전문대학원 제도의 혜택을 누린 사람이지만, 이 제도에 반대하는 많은 의견에 또한 동의한다는 점을 우선 밝힌다. 하지만 '출신'을 운운하는 비판에 대해서는 코웃음을 치는 입장임도 같이 밝히고 싶다.
 내가 치의학대학원에 입학한 첫 해, 한 노교수님은 수업 첫 날에 같은 과 교수님들을 소개하셨다. 소개 멘트가 어땠냐면,
"이 교수는 서울대 출신이야. 저 교수는 서울대 출신이 아니야. 쟤는 서울대 출신이야. 그런데 저기 쟤는 서울대 출신이 아니야."였다.
 이거 실화다. 웃기고 섬뜩하다는 건 아마 이런 걸 보고 하는 말일 것이다.
 수업시간에 뜬금없이 이런 말을 한 전공의도 있었다.
"너희들은 모두 다 나보다 멍청한 애들이야."
 참고로 그 전공의는 과학고 출신이 아니다. 뻔하게 과학고 썼다가 떨어진 놈일테니, 이 전공의는 평생 나보다 멍청한 사람이다. 푸하하.

 내가 가르쳤던 그 치과기공사가 결국 합격을 했는지 여부는 아쉽게도 모른다. 그는 초중고교 과정 동안 쌓아야만 하는 기초가 많이 부족했다. 하지만 막대한 과외비까지 들여가며 최선을 다했다. 그는 자기가 부족한 걸 잘 알았기 때문에 아주 겸손했다. 반면에 조금 속물적인 가치관은 치과의사로서 좋지 않을 것 같았다.
 그와 같은 시기에 가르쳤던 다른 한 수험생은 명문대를 나왔고, 부모님과 일가 친척이 의사인 좋은 집안의 자제였다. 하지만 내가 가르쳐 본 수험생들 가운데 손꼽히게 머리가 나빴다. 문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모조리 다 암기하는 식으로 공부를 하더라. 이 수험생은 분명히 합격했고 지금 모 의대를 다니고 있다. 의대나 치대 출신들은 모두 다 알겠지만, 저렇게 모조리 다 외우는 사람이 막상 이쪽 전공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는 경우도 많다. 어쩌면 저 의대에서 우수한 학생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지는 않을까.

 저 둘 가운데 누가 더 의사로서, 치과의사로서 적합한 인재일까? 대답이 쉽지 않다는 걸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출신'운운하는 사고방식보다는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으리라.

 오늘은 왠지 정제되지 않은 잡담을 늘어놓고 싶었다. 어쨌든 을들의 반격을 보는 건 참 감동적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