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7일 월요일

책 쇼핑도 중독된다



 다른 쇼핑과 마찬가지로 책을 구입하는 행위도 중독이 되는 것 같다. 이전에 구입했던 책들을 2/3쯤 읽고나니 다른 책들을 더 읽고 싶어졌다. 결국 5권의 책을 샀는데, 당초에 계획했던 것보다 교양도서에 더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된 셈이다. 에라이. 잘 하는 짓인지.

종교와 과학/버트런드 러셀 저/김이선 역/동녘
과학의 미래/버트런드 러셀 저/석기용 역/열린책들
인기없는 에세이/버트런드 러셀 저/장성주 역/함께읽는책
런던통신 1931-1935/버트런드 러셀 저/송은경 역/사회평론
아들을 공부하라/데이비드 토마스, 스티븐 제임스 저/김양미 역/글담출판사


1. '아들을 공부하라'는 Hubris님의 추천을 읽고 구입하였는데 하루면 다 읽을 수 있는 부담없는 책이었지만, 솔직히 기대이하였다. 전반부는 흥미롭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진부한 인상. 무엇보다 아들이 성년이 되려면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는 내용은 어이가 없었다. 종교적인 내용을 싣고 싶다면 종교 전문 서적으로 싣거나, 처음에 표지에 밝혔으면. 이는 나같은 무신론자에게는 폭력이다.
 생각해보니 Hubris님의 추천 서적들이 내 마음에 들은 경우가 드문 것 같다. 취향이나 관심사의 차이인가. 나도 아들을 낳으면 이 책이 전과 다르게 보일지도 모르지.


2. 읽어보지 못한 러셀의 저서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전에도 밝힌 적이 있지만, 러셀의 저서들을 계속해서 읽는 것이 효율적인 독서같지는 않다. 그의 책들을 너무 많이 읽어왔다. 하지만 나로선 어쩔 수가 없다. 너무나 그의 팬이기 때문에.
 '인기없는 에세이'는 '게으름에 대한 찬양'처럼 일반 교양을 쌓기에 충분히 좋은 책이다. 아주 재미있기도 하다. 책의 부제가 무려 '지적 쓰레기들의 간략한 계보'이다! 러셀은 특별히 어리석은 열살배기 꼬마가 아니고선 이 책의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에 솔직히 그렇지는 않다. 서양철학 전반에 대한 교양수준의 지식은 있어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종교와 과학'은 유명한 저서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와 비슷한 주제의 책이다. 허나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는 여러 칼럼들을 엮은 형식인데, '종교와 과학'은 일관되게 하나로 집필되어졌다는 점에서 더 좋다. 역자에 의하면 '종교와 과학'은 러셀이 노벨문학상을 받는데 크게 기여한 책이라고 한다. 내가 보기에도 더 풍부하고, 더 선명하게 종교와 과학에 대한 러셀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 문제는 역시 난이도인데, 쉬운 책은 아니다. 아마도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보다 더 어려워서 덜 대중화된 게 아닐까.


3. 경제나 사회, 정치 등에 관해서는 웹서핑을 하다보면 수준높은 블로그들을 많이 발견한다. 아무래도 관련 분야에 몸담은 사람들이 많이들 블로그를 하기 때문인 것 같다. 반면에 철학에 대한 좋은 블로그는 확실히 드물다. 학문 자체가 대중적이지 않고, 역동성이 떨어지는 탓이 크겠다. 다른 분야처럼 활발한 리플 등으로 의견이 교환되고, 수정되고, 발전될 여지가 적다.

 간혹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철학쟁이의 말장난이 나는 싫다.'와 같은 비판을 접하면 안타깝더라. 철학을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꽤나 맞는 말이기도 하다. 많은 철학자들이 사실은 편견에 불과한 걸 아주 모호하게 포장한 이론을 만들어냈고, 그것이 심오한 양 오해되었다. 그렇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데.


4. 공중보건의로 복무하면서 이런저런 경험도 했고, 진료도 열심히 했고, 책도 참 많이 읽었다. 시간을 허투로 쓴 것 같지는 않은데, 지나고보니 내가 잘 살아가는걸까 회의감이 든다.
 얼마 전에 이미 치과 개원도 했던 고교 선배가, 최근에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형은 생화학 박사인데, 치과의사 면허도 취득했고, 이번에는 금융분야로 MBA 유학을 갔다고 한다. 안면이 있는 사이는 아니인데, 대학원 선배 한 분은 공중보건의 3년 간 사법고시를 준비해서 이번에 연수원에 들어갔다더라. 참.. 다들 가방끈이 길기도 하다.
 어째서 또 커리어를 바꾸는지 시간이 아깝다 싶기도 하고, 한편으론 나만 한 자리에 머물러 있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어찌보면 공부가 가장 쉽다. 새로운 걸 배우고, 진보하고 있다고 느끼게 해준다. 전문직 자격증이나 근사한 외국 학위가 따라온다면 더 좋다. 그리고 둘 모두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고, 사회적으로도 막강한 힘이 있다.
 하지만 다시 공부를 하게되면 그만큼 돈과 시간이 희생된다. 또한 자격증이나 학위는 어찌보면 가장 성취하기 쉬운 것이고, 내 가치의 본질도 아니다.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 커리어에 부합하는가가 중요하다. 커리어를 자주 바꾸는 건, 결국은 시간낭비를 하는 것이다.

 결국은 가장 좋아하는 것, 가장 이로운 것을 찾아야 한다. 둘이 일치하지 않다면 절충하거나 과감한 결단을 해야한다.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은 무엇일까. 삼십대가 되어서도 여전히 잘은 모르겠다.


p.s : 사진은 어머니표 계란빵.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어머니가 해주시는 간식이다. 뜨끈뜨끈할 때 먹으면 정말이지 너무 맛있다. 형용할 수가 없다.

댓글 3개:

vhahah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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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itz :

Sangl Yun/메일 드렸습니다.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어요!

vhahaha :

메일 주소는 지우려 했더니 댓글 수정이 안되네요" 댓글은 지우겠습니다. 다시한번 메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