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25일 금요일

반항의 추억



 고교 이후의 학창 시절에 나는 몇 가지 특이한 구석이 있었다. 우선 수업을 늘 듣지 않았다. 당연히 성적은 좋지 않았는데, 전혀 개의치않았다. 그리고 도서관을 가지 않았다. 집이나 기숙사, 교실, 나중에는 카페를 선호했다. 좋아하는 교수님이 거의 없었다. 나를 아는 교수님들도 대체로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반항을 하는 것이 중요한 삶의 태도가 되어있었다. 어릴 적엔 수업시간에 조는 것이 선생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여겼다. 그런데 불과 몇 년 뒤, 수업을 듣고 말고는 온전히 나의 권한이니 간섭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중등 시절까지 억압되었던 자아의 반작용이었다. 보통의 대한민국 중학생처럼 학업에 큰 스트레스를 받았기에, 특목고로 진학한 뒤에 내가 느낀 해방감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부모님은 내가 1등을 하지 못해도 더이상 나를 나무라지 않았다. 지나친 경쟁심으로 나를 대하는 또래친구들도 없었다. 게다가 정기적으로 어른들은 내가 나라를 이끌 인재라고 이야기해주었다.
 대학에 진학한 뒤로는 동아리에 취해서 수업을 더욱 게을리 들었다. 그간 형성된 자만심은 이런저런 합리화로 내 태도를 변호했다. 어차피 공부는 혼자하는거다 출석따위로 성적을 메기는 방식은 저급하다 등.
 고교 시절에는 교내 자습실을 이용해 공부했지만, 대학에서는 도서관을 가지 않았다. 공부는 스스로 하는 거니까 도서관에 가는 태도는 한심하다고 주장했다. 사실 그렇게 기숙사에 남아서 스스로 공부를 잘 해내지도 못했던 것 같다.

 대학원은 자유롭던 공대와는 분위기가 달랐으므로, 여기서 내 수업 태도는 비로소 위기를 맞이했다. 대학원은 규율이 엄격했고, 문화는 보수적이었으며, 동기 집단이 좋은 평가를 받는 게 중요했다. 당연히 나의 수업 태도는 자주 동기 집단의 도마 위에 올라 비판을 받았다. 변명도 하고, 발끈하기도 하면서 대학원 4년을 지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물론 이와는 달리, 도서관을 가지 않는 태도는 이후로도 쭉 이어졌다. 윗사람을 싫어하는 태도도 마찬가지이다. 나의 개성 중 하나가 된 셈이다.

 흔히들 모두가 '예'라고 말할 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어야만 한다고들 하지만, '예'나 '아니오' 따위로 균형잡힌 삶의 태도를 보장할 수는 없다는 걸 나는 안다. 뻔하디 뻔한 '예'만큼이나, '아니오'도 편협함의 산물일 수 있다.
 그래도 내가 '예'라고만 하는 사람이었다면, '아니오'라고 말하는 소수를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 내가 자주 '아니오'라고 말하는 소수의 기질을 지니고 있다는게 다행스러운 점이 그거다.

p.s : 역시 어머니가 끓여주셨던 찌개. 나이를 먹고나서 알게 된 사실인데, 어머니가 보통의 주부들보다 요리를 잘하시는 거 같더라. 찌개에 대해서는 누구나 어머니의 입맛에 길들여져 있으므로 일반화하기는 힘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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