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24일 일요일

예술에 대한 잡담



 어제는 도산공원 쪽 에르메스 매장에 있는 아뜰리에 에르메스에 가서 김영일 작가의 <귀한 사람들>전을 관람하고, 가야금 공연을 감상했다. 친한 누나가 김영일 작가의 팬이었고, 나로선 그 덕에 좋은 문화생활을 한 셈이다.
 김영일 작가는 본래 초상사진을 전문으로 하는 분으로, 잘은 모르지만 이 분야에서 대단한 분인가 보더라. 사진작가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다가, 20여년 전부터 우리 전통 음악에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 뒤로 카메라 외에 녹음기도 함께 들고 다니며, 우리 소리를 기록하고 널리 알리려 애써왔다고. 현재까지 70여종의 국악음반을 제작했고, 그 중에 정가악회 3집 '여창가곡'이라는 음반이 2011년 제 54회 미국 그래미 어워드에 국내음반 역사상 최초로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니 대단하다.

 에르메스 매장에 들어가 본 것도 처음이었고, 사진전도, 국악도 나에게 생소해서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개인적으로 사진이나 미술과 같은 예술분야에 대해서 꽤 전부터 품어온 의문이 몇 가지 있었다. 사진과 공연을 관람한 뒤에 매장을 나서니 다시금 의문이 피어올랐는데, 우연히도 어제 저녁에는 미술관 큐레이터를 하는 분과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있었다. 운 좋게도 그 분께 관련된 질문도 하고, 대화도 나누며, 의문을 조금은 해소할 수 있었네.

 이번 기회에 내가 가져왔던 의문들을 블로그에 풀고 해답을 찾아볼까 한다.


1. 나는 늘 뭐가 예술이고, 뭐가 좋은 그림인지, 좋은 사진인지 알 수가 없었다. 똑같은 붓자국도 피카소가 하면 예술이 되고, 내가 하면 장난이 되는 것처럼 여겨졌고, 그래서 지나치게 추상적이거나 상징적인 미술은 허영으로 생각되기도 했다.
 큐레이터 분은 이런 내 질문에 대해서, 미술가로서 피카소가 보낸 삶과 나의 삶이 다르고, 붓자국 하나에 담은 의미가 다르기 때문에 피카소의 붓자국은 예술이 될 수 있다고 답했다.
"피카소는 아주 어려운 그림도 그릴 수 있지만, 절제된 붓자국 하나를 그려낸 거에요. 보통 사람이 똑같은 붓자국을 그릴 수 있다고 해도, 그 둘을 같다고 말할 순 없죠."
 수긍이 가는 답이지만, 반박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지나온 삶이나, 담긴 의미같은 것은 눈에 보여지지도, 귀에 들리지도 않는 막연한 것이다. 나라고 아주 예술적인 의미를 붓자국에 담아내지 못하리라는 법이 어디있는가?
 그림 그 자체로(혹은 사진 그 자체로) 포착할 수 없다면, 왜곡되기도 쉽고, 객관성을 획득하기 힘든 것이다.

 나는 아주 복잡한 연주를 해낼 수 있는 프로연주자들이 들려주는 깔끔하고 절제된 연주에 깊은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확실히 더 복잡한 연주만이 음악의 정수는 아니다. 더 간단한 연주가 더 감동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차이란 관(람)객이 포착할 수 있어야만 할 것 같다. Steve Gadd이 쳤다는 이유만으로 특징없는 드럼연주가 명연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가만있자.. 그렇지만 과연 꼭 관(람)객이 포착할 수 있어야만 할까?


2. 내가 마지막으로 활동했던 밴드는 주로 카피곡을 연습했지만, 자작곡도 조금 썼다. 한 번은 스튜디오를 빌려서 밤새 자작곡을 녹음한 적이 있다. 녹음은 보통 리듬파트를 가장 먼저하고, 그 다음에 멜로디파트, 마지막으로 보컬 녹음을 한다. 녹음은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힘든 작업이다. 왜냐하면 악보대로 '정확히' 연주하는 것 자체가 대단히 힘든 것이기 때문이다. 좋은 연주자도 녹음을 하다보면 조금씩 리듬이나 음정이 엇나간다. 연주자에게 스튜디오 녹음은 음악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를 표현하는, 가장 숭고한 과정이다.

 지금도 기억나는 장면은, 처음에 드럼 연주를 녹음할 때였던 것 같다. 중간에 필인(feel-in) 연주를 녹음했는데, 연주가 정확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무식한) 나는 대체 어디가 틀렸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만큼 비 전공자에게는, 아니 전공자라고 해도 그 파트만 세심하게 귀기울여 듣지 않으면 틀렸는지 알 수 없는 연주였다. 그럼에도 드럼 연주를 녹음하던 친구는 연주를 다시 녹음하고 싶어했고, 신경이 온통 곤두서서는 두세 차례 반복해서 연주한 끝에 그 부분의 녹음을 끝낼 수 있었다.

 김영일 작가의 사진전에서 한편에는 필름으로 촬영된 초상사진이 걸려있었고, 다른 한편에는 디지털로 촬영된 초상사진이 걸려있었다. 작가는 필름 사진들을 찍기 위해 촬영된 국악인들과 인연을 맺고, 사진을 찍기까지 20여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반면, 디지털 사진을 찍기 위해 촬영된 국악인들은 페이스북으로 인연을 맺었고, 사진을 찍는데 불과 몇 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이러한 설명이 사진감상에 대한 새로운 흥미를 더해준 것은 맞다. 하지만 설명을 듣고 사진들을 바라봐도, 나는 전혀 필름 사진과 디지털 사진의 차이를 구별해낼 수 없었다. 솔직히 내가 구별하지 못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나는 왜 김영일 작가가 초상사진에 있어서 독보적인 위치에 올라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고, 아니 애초에 잘 찍은 사진이라는게 뭔지도 잘 모르겠더라.

 전에 음악에는 내재된 '가치'가 존재하고, 그것은 더 높은 소양을 갖추어야만 향유할 수 있다는 내용의 포스팅을 한 적이 있다.
 그렇다. 사진이나 미술도 그것을 풍부히 즐기려면 소양을 갖추어야만 한다. 어쩌면 내가 미술작품, 사진을 이해하지 못하고,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나 자신의 소양이 부족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삐딱하게 생각할게 아니라, 교양을 더 쌓아야 했던 것이다!
 또한 아무도 못 알아챌 수도 있는 작은 실수를 교정하고자 반복해서 연주를 녹음했던 드럼 연주자 친구가 그랬듯이, 예술에는 관(람)객이 포착하지 못한 것마저도 온전히 하려는 자기 수양의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예술은 자기 스스로를 담금질하는 미덕을 칭송한다. 예술이란 때로는 아주 사적인 것이다. 간혹 공감도 안되고, 허영과도 결합하는게 예술이다.


3. 가끔은 사진이나 미술은 부자들의 돈 놀음, 허영과 과시로 배를 불리는 예술이 아닌가 싶다. 음악은 좋은 곡이 만들어지면 그것을 기록하고 복사할 수 있고, 대중들이 쉽게 접할 수 있다. 복사품이라고 해도 음질만 좋으면 충분히 곡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합법적인 절차만 밟았다면) 명곡은 수없이 복사되어도 동일한 가치를 지니는 것 같다.
 그런데 미술이나 사진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누군가 고흐의 작품을 완벽하게 복제해도, 그 그림은 헐값에 팔린다. 반면, 고흐가 그린 원작은 상상할 수도 없는 거액에 팔린다. 내가 보기엔 복제품이라고 해도 충분히 작품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대체 왜 가격은 그렇게도 차이가 난단 말인가.
 원작에 붙는 막대한 프리미엄은 그것이 더 예술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희귀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나로선 명망있는 사진이나 미술은 사치품으로 생각되고, 정서적인 거부감이 드는 것이다.

 미술관 큐레이터는 나의 질문에 이렇게 답하더라. 배가 불러야 예술을 찾는 법이고, 예술은 당연히 옛날부터 권력과 돈을 좇아 왔다고. 음악도 희귀 음반 수집과 같은 사치시장이 존재한다고. 맞는 말이다. 아이돌 상품을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수출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국민인 내가, 음악이 사진이나 미술보다 자본에 덜 종속적이라고 주장하기는 힘들겠다.

 김영일 작가의 사진전이 하필 명품 중의 명품 에르메스의 매장에서 열린 것도, 실리적으론 좋은 선택이다. 사진전도, 국악음악도 부유층을 통해 전파되었을 때 그 파급력도 클 수 있고, 보통 사람들 사이의 평판도 좋아지는 법이다.


4. 공연은 가야금 연주였는데, '성금연류 긴 산조'라는 것이다. 김영일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산조 연주는 연주자가 평생에 딱 한 곡만 완성하게끔 되어있다. 또 서양음악과는 달리 반복되는 중심테마가 없는 것이 특징. 성금연류란 성금연이라는 선배 연주자의 유파(流派)라는 의미라고 한다. 제자가 선배를 선택하게 되어있어서, 제자가 선배의 음악을 존중할 수 없으면 그 이름을 물려받지 않는다고. 후대에 냉정하게 평가받는 음악이라니 살벌하기도 하고, 음악을 대하는 장인정신이 느껴졌다.
 국악연주를 집중해서 들은게 얼마만인가 싶다. 불협화음처럼 들리는 멜로디 진행이 자주 들려서 신기했고, 박자도 자주 바뀌는 변화무쌍한 곡이더라. 반복되는 테마도 발견하기 힘들고, 흐름을 알 수 없다보니 즉흥연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오랫만에 들어도 역시나 잘 모르겠고 어려웠지만 재미있게 감상했다.


5. 사진전에 온 부유층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남녀할 것없이 멋쟁이들뿐이더라. 개인적으로 남자가 패션모델처럼 잘입는 것은 '선을 넘은' 것처럼 생각되어서, 감상은 할 지언정 지향하지는 않는데, 다들 내 기준에서는 '선을 넘은' 멋쟁이들이었다. 양말까지도 범상치가 않더라.
 실내에서도 굳이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던 내 또래 관람객도 눈에 띄었는데, 이런 분들은 볼 때마다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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