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11일 월요일

자유주의자의 양심



 Paul Krugman의 뉴욕타임즈 칼럼 제목은 이 책의 원제와 같은 'the conscience of a liberal'이다. 이 책은 2007년도에 발행되었으나, 국내에는 2012년에 비로소 '새로운 미래를 말하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새로운 미래를 말하다'는 진보주의 정신이 가득한 책이다. 논리정연하게 미국의 경제, 정치, 사회가 겪어온 변화를 말하고,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분석한다.
 현재 미국 경제와 정치의 발전상을 기록하면 두 개의 그래프를 그릴 수 있다. 경제 그래프는 심했던 소득 격차가 어느 정도 줄었다가 다시 심하게 벌어짐을 보여준다. 정치 그래프는 공화당과 민주당의 양극화가 심해졌다가 초당적 제휴의 기미가 보이더니 다시 양극화가 초래된 모양새다. 결국 오늘날 미국은 1920년대 대공황(great depression)이전 만큼이나 정치, 경제적으로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이렇게 경제, 정치 그래프가 평행을 이루어 '춤'을 추는 원인은 무엇일까? 가능한 대답은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하나는 경제적 불평등이 춤을 주도한다는 것이다. 기술 발달과 세계화로 소득 격차가 자연히 심화되었고, 계층 간 격차의 확대가 정치적 양극화를 낳았다는 분석이다.
 다른 하나는 정치적 양극화가 주도한다는 것이다. 강력해진 우파 세력이 여러가지 방법으로 불평등을 심화했다.
 Krugman은 이 가운데 두 번째 대답이 정답이라고 말한다. 이의 근거로 4가지를 들고 있다.
1) 우선 불평등이 극심했던 도금 시대(gilded age)에서 비교적 평등한 제2차 세계 대전 전후 시대로의 변환은 결코 점진적이지 않았다. 계층 간 격차는 불과 몇 년 사이에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학자들은 이 시기를 대압착(great compression)이라고 부른다.
2) 최근 미국에서 불평등이 확대된 것은 1980년대부터인데, 1970년대부터 보수주의 운동이 일었고, 우파가 공화당을 차지했다. 즉, 정치적 양극화가 우선했고, 경제적 불평등이 그 뒤를 따랐다는 것이다.
3) 기술 발달이 고학력 노동자의 수요를 늘리고, 저학력 노동자의 수요를 줄여서 불평등을 초래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실제 고학력 미국인들 대부분의 수입은 증가하지 않았고, 극소수 엘리트 집단의 수입만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결국 제도와 규범, 정치적 환경이 시장의 힘보다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4) 기술 발달과 세계화가 원인었다면 모든 선진국에 영향을 주었어야 옳다. 그런데 미국만큼 불평등이 증가한 선진국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정치적으로도 선진국 가운데 미국만큼 우파로 돌아선 국가는 드문 것이다.

 Krugman은 더 나아가, 정치적 보수화의 가장 큰 원인으로 인종주의를 들고 있으며, 새로운 미래를 위해서 무엇보다 의료보험체계를 개혁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이후 obamacare로 어느정도 이 과제는 실현되어가고 있다)

 미국의 정치, 경제가 역사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왔는가 엿보는 것은 학창시절 역사 수업을 듣는 것처럼 재미있지만,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바라보며, 현재를 어떻게 살지 판단하는데에도 도움을 준다. 우리에게 인종차별과 냉전, 테러는 없지만, 대신 북한이 존재하고, 반미와 친일이 존재하며, 영남과 호남이라는 지역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시장이 불평등을 심화했고, 극소수 엘리트들은 능력에 걸맞는 부를 보상받았을 뿐이라는 말은, 책임은 회피하고, 영광과 혜택은 누리려는 거짓된 주장이다.
 합리적인 진보주의자로서 객관적인 증거와 논리적인 분석을 확보하려면 읽어볼만한 책이다.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역사를 굉장히 좋아하는 소년이었는데, 보편적인 고교과정을 밟지 않다보니,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내 지식은 굉장히 얕다. 좋은 한국 근현대사 저서를 추천해달라고 페이스북에 적었더니 강만길, 박태균, 강준만 등의 책이 추천되더라. 읽어봐야지 싶네.

댓글 4개:

Wonyoung Kim :

나도 고등학교 때 카이스트 붙고 나서랑 학부 때 한국 근현대사 책들 훨씬 많이 읽었는데 10년 전이라 대체 뭘 읽었는지 기억이 안 나네-.- 이미 읽었을 것 같은데 조정래 소설들은 거의 역사책이나 다름 없어서 정말 좋았고ㅎㅎ강만길 다른 책은 안 읽어봤고 "고쳐 쓴 한국 근현대사"가 좋았던 기억이 나는데 이것도 읽은지 거의 10년 지나서 지금 읽으면 어떠려나 모르겠다ㅎㅎ

나는 한국 전쟁에 관심이 많아서 좋은 책들 찾으려고 뒤져봤었는데 박태균의 "한국전쟁"도 좋긴 하지만 그것보다는 사실 David Halberstam의 The Coldest Winter가 대박이야. 내가 본 한국 전쟁에 대한 책들 중에 가장 재밌으면서도 (논문을 읽고 있을 순 없으니) 엄청나게 많은 정보가 있음. 오 지금 보니 한글 번역판으로도 나왔네. "콜디스트 윈터" 라고. 그냥 전쟁 얘기 쓴 책이 아니라 전쟁 전의 각 나라의 사정, 미러중이 서로 어떤 생각/오해를 갖고 있었는지 등에 대한 분석이 정말 많아.

나는 강준만 책들은 별로였는데 그것도 10년 전 느낌이라 지금 읽으면 어떨지 모르겠다ㅎㅎ

Spiritz :

Wonyoung Kim/이제는 버클리 김사장이 된 인쓰~ 이야 넌 근현대사 책 많이 읽었구나. 사실 나는 조정래 소설이라는 것도 안 읽어봤고, 한국 문학이나 역사에 견문이 대단히 짧다. 좋은 책 추천 고맙고, 한권 한권 읽고 후기를 들려주겠어.

Wonyoung Kim :

조정래 소설들은 진짜 재밌어! 카이스트 붙고 나서 읽던 기억이 나네ㅎㅎㅎ나는 태백산맥, 한강, 아리랑 순으로 재밌었음. 진짜 태백산맥이랑 한강은 중독성 장난 아니었어.

Spiritz :

Wonyoung/아 조정래 소설이 태백산맥이구나.. 블로그에서 공개적으로 도를 넘는 무식함이 탄로나는군. 사실 너는 알겠지만 내가 최근 소설을 거의 읽지않아. 일단 다른 책부터 시작해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