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11일 수요일

본능을 이기는 것


1. 짧은 삶을 살면서 많은 일들을 겪어왔다. 그것들을 통해 남을 더 잘 알게 되는 것도 많지만, 나를 더 잘 알게 되는 것도 무척 많다. 나의 좋은 점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나의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다. 또한 세월이 흐르면서 변하는 나에 대해서도 자각할 수 있게 되었다.
 재미있는 건,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뒤에도 나의 약점을 잘 고칠 수 없다는 것이다.

 가령 나는 밴드활동을 할 적에 중요한 무대에서 제 기량을 잘 발휘하지 못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그러한 문제를 느껴왔지만 머리로 그 사실을 안다고 잘 고칠 수 없었다. 이의 극복은 매우 서서히, 익숙함을 통해서 이룰 수 있었다. 수십회의 공연을 한 뒤에야 비로소 편안하게 무대를 즐길 수 있었다.
이제 나는 더이상 공연을 앞두고 유난히 긴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중요한 운동시합에서 유난히 흔들린다거나 하는 단점은 존재한다. 다시 말해서, 내 천성은 그다지 바뀌지 않았다.
 어쩌면 유난히 긴장하는 나의 천성은 타고난 것이고, 극복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타고난 내분비계의 민감도랄까.(조금은 직업병스러운 분석이다) 그렇다면 이를 인정해야 옳다. 그리고 1)가급적 익숙한 일에 매진하되, 2)피할 수 없다면 낯설음을 익숙함으로 바꾸는 방법으로 이 단점을 희석하는 수 밖에 없을지도. 이는 길고 힘든 과정이다.

2. 김용민의 8년 전 막말은 분명한 흠결이지만, 김형태의 성추행 미수에 비하면 작은 범죄이다. 김용민이 더욱 비난받았던 것은 그것이 음성으로 직접 전해져, 본능적 반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여론이라면 김형태를 더욱 이슈화하였을 것이고, 합리적인 국민이라면 그에게 더욱 분노했을 것이다.

 박근혜는 독재자의 딸이다. 박정희가 그 시대에 얼마나 큰 역할을 했던 간에 과거의 일이고, 오늘날 우리가 완성해야만 하는 민주주의 사회가 독재자인 그를 그리워해서는 안된다. 더구나 박정희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녀가 아비의 영광을 재현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박근혜가 지방에서, 그리고 중장년층에서 막강한 지지를 얻는 것은 박정희에 대한 그들의 호감 때문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국가와 사회를 바라본다면 박근혜를 지지할 수 없을 것이다.

 선거 결과에 참담한 기분이다. 우리나라가 자신의 본능을 이길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길고 힘든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대선은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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