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16일 금요일

고상한 사람들

 버트런드 러셀의 좋아하는 글 조각들 가운데 '고상한 사람들(nice people)'이라는게 있다. 내용이 특별하다기보단 고상한 사람들을 '고상하게' 조롱하는 그 방법이 통쾌하기 때문이다.
 러셀의 시대에 존재했던 고상한 사람들은 어떤 이들이었을까. 마지막 문단에서 러셀은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고상한 사람들의 본질은, 협력을 지향하는 경향들이나 아이들의 부산스러움 속에 담긴 삶, 특히 성에 담긴 삶에 대해, 강박관념에 가까운 생각을 가지고 증오하는 태도이다.'

 그 시대 고상한 사람들은 '보수주의'라는 이름 하에 권위적이고,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자신들의 기득권을 공고히 하고자 했다. 그런데 오늘날은 어떠할까. 오늘날엔 이런 '고상함'이 사라졌을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고상한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기득권을 손에 쥐고, 고상한 어법과 태도로 올바른 삶의 태도에 대해 설파하고 있다.

 가령 노동계의 운동에 대한 그들의 시각을 보자. 고상한 사람들은 노동계의 파업으로 피해를 보는 평범한 서민들을 가리키며 노동자들이 '일은 열심히 하지않고 공짜밥만 먹으려한다.'고 꾸짖는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기업의 사외이사로 부임한 고상한 사람들은 지난해 100대 기업의 이사회 상정 안건 2020건 가운데 단 1건을 반대로 부결시켰다. 그러면서도 봉급은 천문학적인 액수로 받는다니 사실은 얼마나 열심히 일을 했겠는가?
 반면 노동계는 허구헌날 파업 등의 최종수단을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지난 수년간 사회 양극화는 심화되고 있으니 이들이 얼마나 게을렀으면 일이 이 지경이 되었을까?

 중소기업 고용불안을 비판하는 고상한 사람들의 목소리도 또한 고상하다. 고상한 사람들은 젊은이들의 부족한 도전정신을 문제의 근본으로 짚는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지난 10년간 중소기업의 임금이 대기업의 70%에서 60%로 악화되었다니 말이다. 이는 지난 10년간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이 올바른 전략이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러니 손해를 보더라도 중소기업에 뛰어들지 못한 젊은이들은 얼마나 도전정신이 부족한가!

 사실 고상한 사람들은 고상하다기 보다는 아주 전략적인 사람들이다. 기득권을 공고히하는데 고상한 태도는 지극히 도움이 된다. 가령 칼을 들고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전혀  '고상하지 못한' 방법이다. 고상한 사람들은 직접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컴퓨터 자판이나 서류를 끄적여서, 스스로 강물에 뛰어들게 만들 따름이다.
 고상한 사람들은 얼굴도 예쁘고, 옷도 멋지고, 말투도 젊잖으며, 예의도 바르다. 또 아주 논리정연해 보이기도 한다. 막상 서민들은 실제로 보면, 옷도 지저분하고, 예의도 모르고, 말투도 천박하기 짝이 없다. 이런 점에서 고상한 사람들의 전략적 태도는 배울 점이 많다.
 고상한 사람들에게서 배울만한 점은 그게 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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