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15일 일요일

대기만성형 예술가




1. 요즈음 정치이야기에 빠져있다. 기가 막히기도 하고, 울분에 차기도 하고, 가끔은 통쾌하고 속이 시원하기도 하다. 하지만 정치가 재미에 비해서 남는 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왜일까? 물론 정치의 밑바탕엔 사회와 국가에 대한 해석, 경제원리의 이해,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과 삶에 대한 통찰이 담겨있다. 하지만 그것이 정치행위로 실천되는 과정은 지켜볼 게 못되는 것 같다. 왠지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아마 무력감 때문이 아닐까. 권력을 가진 사람들도, 이 나라의 많고 많은 국민들도 내 마음과 같지 않다. 내가 그들을 설득할 수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선거 때마다 내 한 표를 행사하는 것뿐이다.


2. 얼마 전에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를 다 읽고는, 엉뚱하게 바로 직전에 읽은 Malcolm Gladwell의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What The Dog Saw)'가 떠올랐다. 정확히는 책 안의 챕터 '대기만성형 예술가들(Late Bloomers)'.
 작가에 의하면 피카소의 경우 20대 중반에 그린 작품들이 60대에 그린 작품들보다 평균적으로 4배 비쌌다고 한다. 반면 세잔의 경우 60대 중반에 그린 작품들이 젊은 시절에 그린 작품들보다 최대 15배 비쌌다. 세잔은 대기만성형 예술가였다.
 우리는 흔히들 천재성과 창조성은 젊은 날부터 빛을 발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작가에 의하면 이는 대기만성형 예술가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이다.
 미국의 작가 벤 파운튼은 변호사로 일하다가 30세가 되어서야 소설가로 전향했다. 그리고 ‘체 게바라와의 짧은 만남’이라는 작품으로 촉망받는 신진작가의 명성을 얻는다. 하지만 그 작품은 그가 30번 이상 출판사로부터 퇴짜를 맞고, 발표도 못한 장편을 4년 간 쓰는 등의 ‘어둠의 시기’를 견뎌낸 이후에 비로소 완성된 것이었다. 그는 48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첫 출세작을 내놓았던 것이다.
 갈렌슨의 ‘늙은 대가와 젊은 천재들’에 의하면 벤 파운튼이나 세잔과 같은 대기만성형 예술가는 아주 실험적으로 창작 작업을 한다. 그들은 목표가 분명하지 않고, 과정이 아주 점진적이다. 그들은 천천히 자신의 길을 찾고, 갈고닦는 완벽주의자이다. 
벤 파운튼은 ‘체 게바라와의 짧은 만남’의 배경이 된 아이티를 30번 이상 방문했다. 세잔은 비평가 귀스타브 제프루아의 초상화를 그릴 때 3개월간 80번 넘게 작업을 해야했다. 마크 트웨인은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수십 번 뜯어 고치고, 포기한 끝에 거의 10년 만에 겨우 완성했다.
 갈렌슨에 의하면 젊은 천재들은 막연한 탐험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들은 개념적으로 창작 작업을 한다. 명확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작업을 시작한다는 말이다. 그들은 ‘조사’나 ‘실험’보다는 ‘깨달음’을 강조한다.

 천재성과 창조성은 늘 젊은 날부터 빛을 발하는게 아니다. 대기만성형 예술가는 자기 분야를 늦게 찾은 것이 아니다. 세잔은 피카소만큼이나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그렸다. 그들의 재능이 늦게 발견된 것도 아니다. 세잔의 초기 작품은 그의 비전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다. 수준이 떨어졌다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대기만성형 예술가는 환경의 도움을 받아 '길러진다.' 벤 파운튼은 긴 인고의 세월동안 아내의 든든한 지지를 받았다. 세잔은 에밀 졸라, 피사로, 앙브로와즈 볼라르, 루이 오귀스트 등의 후견인들로부터 막대한 도움을 받았다.

 유시민이 타고난 천재인지, 만들어진 천재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경제학 전공자임에도 정치철학에 상당한 식견을 가지고 있더라. 대한민국의 민주화 과정을 몸소 체험했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사상들을 공부하고 자기 것으로 녹여내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글도 참 잘 쓴다.
 이 사람은 끊임없이 공부하고, 경험하고, 글짓기를 해왔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 자극이 되었다.


3. Malcolm Gladwell의 이 책은 그의 다른 히트작들에 비하면 확실히 떨어진다. '아웃라이어', '블링크', '티핑포인트'를 모두 읽었다면 한 번쯤 구입해 읽어볼만한 수준. 우선 작가가 잡지에 기고한 칼럼들을 골라서 엮은 책이라서, 책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성이 부족하다. 칼럼들의 수준도 들쑥날쑥한 면이 있다. 특별한 인상을 주지 못한 챕터도 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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