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6일 금요일

책을 읽더니 잡담


 Paul Krugman의 저서 '지금 당장 이 불황을 끝내라!'는 미국에서 작년에 발매된 책이다. Krugman이 자신의 블로그에서 이 책을 집필했다며 소개하던 게 기억이 난다. 책 내용의 시의성을 고려할 때, 너무 늦게 번역된 감이 있다. 또 나처럼 그의 블로그를 꾸준히 읽는 사람에게는 그다지 새로운 내용이 없다. 그럼에도 한 권의 책으로 읽는다는 건 의미가 있다. 큰 흐름 안에서 방향성을 가지고 독서할 수 있고, 내용을 종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경제공부 삼아서 지난 포스팅에서 소개했던 Hubris님, indiz님, 그리고 Paul Krugman의트위터와 블로그를 읽는다. 뉴스 페퍼민트도 도움이 된다. 그 외에는 '김광진의 경제포커스'를 들었었는데, 프로그램이 폐지된 뒤론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를 듣는다.  이만큼도 장기적으로 계속 하려면 큰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버클리 김 사장 같이 Mankiw처럼 Krugman과 다른 시각을 가진 경제학자의 블로그도 함께 읽는 이가 있다. 링크한다. 나에게 권해주기도 했는데, 결론적으로는 읽지 않을 생각.
 결국 시간과 효용의 문제다. 나는 영어를 못해서, 읽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Krugman이 블로그에서 자주 인용하고 추천하는 Mark Thoma의 블로그가 있다. 역시 링크한다.  한 때 함께 읽으려고 했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서 무리라고 판단했다.

 경제란 데이터의 수집과 해석의 학문이다. 데이터의 수집은 아무나 할 수 없으나, 해석은 누구나 가능하다. 하지만 알고보면 수집 못지않게 해석도 아주 전문적인 것이라서, 전문가가 아니라면 올바른 시야를 가지기 어렵다. 그래서 Krugman이 나의 고정관념을 깨뜨려줄 때 특히 고맙다.

 나같이 진보적인 경제관을 가진 사람은 흔히들 국가가 개입해서 고부가가치의 제조업을 육성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경제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입장을 가지게 된다. 장하준 교수님도 저서나 인터뷰 등에서 자주 이를 언급한다. 그런데 Krugman은 저서 '기대감소의 시대'에서 최근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국가주도의 제조업 육성이 국제무역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기대감소의 시대'는 1997년도에 쓰여진 책이다. 그러므로 장하준 교수님의 이야기가 최근의 학계 입장을 더 정확히 반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Krugman은 '지금 당장 이 불황을 끝내라!'에서 고소득층 증세안에 대한 전통적인 진보측 논리를 비판한다. 우리는 흔히들 '낙수효과'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근거로, 고소득층은 소득에 합당한 수준의 소비를 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고소득층은 지나치게 저축하고, 중산층 이하 저소득층의 소득이 더욱 궁핍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 그러므로 양극화는 사회전반의 소비를 위축시켜서 경제의 성장을 억제한다는게 흔히 접하는 진보측 논리이다.
 하지만 Krugman에 의하면, 최근의 연구는 이를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우리의 상식과는 반대로 양극화는 소비를 촉진한다는 게 더 진실에 가깝다고 한다.
 경제위기 이전에 미국의 고소득층은 양극화가 진행되면서 증가하는 소득에 걸맞게 소비하고 저축했다. 문제는 중산층 이하 저소득층이었다. 이들은 양극화가 진행될수록 오히려 저축률이 떨어지고 소비가 증가했다. 맞다. 생각해보면 미국의 경제위기는 지나친 소비로 인해 발생했고, 소비의 위축은 그 결과이다. 양극화는 경제위기를 일으켰지만, 우리가 생각했던 그러한 방식은 아니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부를 추종하는 문화가 만연하여 지나친 소비를 부추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 온전히 사치를 좇는 군중심리의 탓으로 돌리긴 힘들다. 가령 양극화가 좋은 학교에 자녀를 진학시키기 위한 경쟁을 심화시켜서 교육비 지출을 늘렸고, 위험한 부동산 투자 열풍을 불러와 부동산 거품을 부추겼다는 분석이 있다.

 위와 같은 연구결과가 고소득층 증세안을 부정한다 보기는 힘들다. 1) 경제상황에 따라 계층 간 소비패턴이 다를 수 있다. 과거 활황기에 과소비를 부추긴 양극화가 경기가 위축된 요즘은 소비를 위축하는 원인일 수도 있다. 2) 고소득층 증세안은 사회적 정의의 실현이기도 하다. 양극화는 더 교육받은 계층에, 더 사회적 기여가 큰 계층에 부가 분배된 결과가 아니다. 0.1%의 소득은 전통적인 수요 공급의 시장경제 원리가 아니라, 아주 정치적인 방식에 따라서 결정된다.

 진보측 경제학자가 진보측의 전통적인 논리를 비판하면 아무래도 더 믿음이 가게 된다. 베블런의 '과시적 소비'가 떠오르는데, 사실 요즘의 내가 그러하다. 가만보면 나처럼 중산층에 속한 사람일수록 돈을 조금 만지게 되면 더 과시적 소비를 하게 된다. 원래 잘 살던 애들은 패션에 관심이 많은 경우가 아니라면 오히려 검소한 듯.
 아무튼 최근에는 신발에 꽂혀서 이것저것 샀다. 사진의 샌들도 무지 비싸게 샀는데, 신고 조금만 걸어도 발이 진짜 아프다. 같은 브랜드의 스니커즈도 가지고 있는데 역시 착화감이 좋지는 않더라. 친한 동기 누나의 명언이 있는데, '비싼 구두는 걸으라고 만들어진 게 아니다.'라더라. 신고 '보여주기' 위한 거라고. 하하.
 그렇다면 저 샌들도 미적 형태를 튼튼히 보존하고자 저리 딱딱하게 만들어진 모양이다. 그게 아니고선 저리 비싼게 저리 불편하다는 게 도저히 납득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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