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9일 목요일

두 개의 영화, 두 개의 이야기

1. 예술적 외설

 '내가 사는 피부'는 인공피부에 집착하는 성형외과의와 그의 저택에 감금되어 살아가는 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다.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연기한 로버트 박사는 죽은 아내와 딸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두 가지 방식으로 전이(轉移)한다. 불에 타지않는 인공피부를 만들고자 하는 욕망(아내는 심각한 화상을 입고 자결했다)과, 딸을 강간한 빈센트란 남자에 대한 직접적인 복수심이 바로 그것인데, 이 둘과 미에 대한 박사의 광적인 집착은 변태적인 결과를 낳는다. 로버트 박사는 빈센트를 납치한 뒤, 성전환 수술을 시킨다. 그리고 그는 아내의 얼굴로 성형되고, 인공피부의 실험대상이 되어 온 몸의 피부가 교체된다.  그 뒤 로버트 박사는 빈센트가 변한 이 베라라는 여인을 사랑하게 되지만 이는 '피부'로 상징되는 그의 외면일 뿐 내면은 아닐 것이다. 베라 역시 처음엔 박사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 같지만, 결국 빈센트라는 내면을 결코 잊지 못한다. 결국 베라는 로버트 박사를 죽이고 저택을 탈출한다.

 이 영화는 예술일까? 영화는 대단히 미적이었다. 사실 섬뜩할 정도로 그러했다. 뛰어난 영상과 음악, 완벽한 미장셴을 보여주었다. 또한 영화는 수많은 상징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하녀의 아들이 입은 호랑이 코스프레는 그의 내면(범죄자)을 감추는 도구이자, 그의 폭력성을 대변하는 상징이기도 했다. 아마 내 지식의 부족함으로 인지하지 못했을 뿐, 배경 음악이나 저택에 걸려있던 그림 모두 아주 상징적이었으리라.

 하지만 영화는 보편적인 관객들이 공감하기에 기괴하고, 뒤틀려있었다. 로버트 박사를 우연히 마주친다고해도 그와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을만큼 그와 그의 이야기는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성을 주제로 다룬 예술영화 중에는 (나로서는) 공감하기 힘든 성적 판타지가 담긴  경우도 많다. '욕망'이나 '자아'는 예술영화의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이고 '성'은 그 주제를 표현하기에 알맞다. 하지만 그것이 보편성을 획득하는데 실패하여, 단지 특정한 몇몇의 전유물로 머무를 뿐 평범한 관객을 몰입시킬 수 없다면 그 예술영화는 '예술적 외설'에 다름아닐 것이다.

 페드로 알모도바르라는 이름의 감독은 '그녀에게'와 같은 전작과 이 영화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성전환과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감독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고려할 때,  성전환되고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빈센트는 겉모습과는 다른 성 정체성을 간직한 성적 소수자들을 상징하는지도 모르겠다. 불에 탄 끔찍한 외모에 좌절하고 자살을 택한 로버트의 아내가 그러했듯, 성적 소수자들도 내면과 다른 겉모습에 좌절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적어도 '그들' 사이에서는 공감을 획득할 수 있었으리라. 그리고 어쩌면 나도 이 영화를 해석하는 와중에 소외받는 내면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겠지.

 예술 영화는 때로는 사회로부터 보편적으로 용인받지 못하는 정서나 의식을 표출하는 해방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2. 실패의 미학

 '머니볼'은 한 실패한 야구선수가 가난한 구단의 단장으로서 성공하는 과정을 담은 드라마다.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빌리 빈은 어릴 적 촉망받은 선수로 유명 구단에 화려하게 스카웃 되었지만, 프로 선수로서 처참한 실패를 맛보게 된다. 그 뒤로 가난한 야구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단장이 되었지만, 프로로서 실패했다는 자책감은 가슴 한 구석에 남아있다. 구단을 재편성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조나 힐이라는 스카우터를 영입하여 그의 인생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조나 힐은 예일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을 뿐, 야구 선수로서의 경력이 전혀 없는 새로운 스카우터였다. 그는 통계를 기반으로 선수의 스탯을 분석하고, 가격 대비 최선의 팀을 꾸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스카우터의 인간적인 '직관'아닌, 숫자로 구성된 딱딱한 수치만으로 선수를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빌리 빈은 그 '과학적 방법'을 받아들였고, 그 결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그 해 메이저리그 사상 전무후무한 20연승을 달성한다. 하지만 리그 우승 이후 챔피언 리그에서는 패배했는데, 그는 그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하기 위해 1천 2백만 달러라는 금액을 제시한 보스턴 레드삭스의 스카웃을 거절하고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 남는다. 하지만 2년 후, 우승을 이룬 팀은 그의 스카웃 방식을 모방한 보스턴 레드삭스였다.

 빌리 빈은 자신의 과거와, 자신을 뽑았던 스카우터들을 조소했지만, 어리고 꿈이 있던 그 시절을 완벽히 미워할 수는 없었다. 빌리 빈에게 제 2의 성공을 안겨준 바로 그 통계적 방법에 기반했을 때, 가난한 그의 구단이 부자 구단들을 계속해서 물리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 방법도 결국 가격 대비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을 뿐, 가격 그 자체를 뛰어넘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빌리 빈은 그 사실을 몰랐던 것일까? 아마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인정할 수 없었던 것 뿐이다.
 영화 후반부의 그는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마치 나 자신을(그리고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의 실패는 내가 지금껏 살면서 저지른 낭만적인 실패들과 겹쳐졌다. 아름다웠다.

 빌리 빈의 딸이 영화의 마지막에 들려주는 노래. 최고의 엔딩이었다.

http://www.youtube.com/watch?v=fkKCNXbtmcY&feature=related

I'm just a little bit caught in the middle
Life is a maze and love is a riddle
I don't know where to go, can't do it alone, I've tried
And I don't know why
I am just a little girl lost in the moment
I'm so scared but I don't show it
I can't figure it out it's bringing me down
I know I've got to let it go and just enjoy the show
Slow it down, make it stop or else my heart is going to pop
'Cause it's too much yeah, it's a lot to be something I'm not
I'm a fool, out of love and I just can't get enough
You're such a loser, Dad
You're such a loser, Dad
You're such a loser, Dad
Just enjoy the sh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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