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9일 금요일

게임의 법칙

 얼마전 아는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교정을 받고 싶은데 물어볼게 있다며 급속 교정이랑 보통 교정이랑 어느게 더 좋냐고 물었다. 처음에는 급속 교정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다가, 이내 라미네이트 시술을 의미하는 것임을 기억해냈다. 치과 술식 가운데 학술적으로 사용되는 명칭이 개원가에서 다르게 바뀌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도 같은 경우이다.

 치의학은 분명 나름의 이론적인 논리체계를 구축하고, 실제 적용된 결과로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 학문이다. 허나 치과의사가 실천해야 하는 진료의 영역은 치의학과 다른 일종의 간극, 사각지대를 포함하고 있다. 이에는 두 가지 변수가 영향을 미치는데, 하나는 환자의 사회적 위치, 가치관, 요구와 같은 전인격적 요소, 다른 하나는 진료의의 경제적 동기이다. 이 둘은 치의학에서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다.

 치의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라미네이트 술식은 꽤 명확하다. 이는 유지가 좋지못한 수복 방법이다. 그러나 대신 치질삭제가 적고, 간편하며, 심미적이다. 치의학은 '치료'라는 목적을 근거로 유지의 불충분함을 중요하게 고려한다. 그러므로 이 술식은 제한적으로 권해진다. 허나 개원가에서 실제로 이 술식은 널리 행해지고 있다. '미용'이라는 목적과 '이윤'이라는 목적에서 이의 장점이 중요하게 고려된 탓이다.
 어떤 환자에게 라미네이트 술식을 하는 것이 좋을까. 치의학적 명확함과는 달리, 진료의 영역에서 이는 불명확해진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환자의 직업, 가치관, 요구가 영향을 미치고, 진료의의 경제적 동기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진료실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일종의 거래로 보고, 그 경제학적 함의를 생각해보면 재미있다. 치과의사와 환자는 서로 입장이 다를 뿐 아니라, 철저히 비대칭적인 정보를 가지고 있다. 치과의사가 환자에게 '레몬'을 고르게 만들기는 너무나 쉽다.
 진료 술식의 결정에 경제적 동기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상당부분 다른 개원의와의 경쟁 때문이기도 하다. 나도 곧 경쟁에 참여하겠지. 개원가의 치과의사들 모두 게임의 법칙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죄수의 딜레마'라는 게 있다. 두 죄수 모두 범죄를 부인하면 둘다 풀려날 수 있지만 서로를 신뢰할 수 없기에 결국 둘다 범행을 자백하게 된다는 경제이론이다. 개인의 인센티브로 짜여진 경쟁구도가 가져올 수 있는 파괴적인 결과. 작금의 치과계랑 잘 들어맞는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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