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8일 화요일

김광진

 김광진은 더클래식 시절부터 팬이었다. 마법의 성도 좋았지만, 그 앨범에선 '송가', 다음 앨범에선 '여우야'가 너무 좋았다. 그 어린 나이에도 '여우야'가 10위권에도 들지 못하는 당시 가요톱10의 순위가 말도 안된다고 믿었던걸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조금 놀랍다. 나이를 먹어가며 TV 가요프로를 불신하고, 라디오를 들으며 음반판매순위 등 좀 더 신뢰할 수 있는 차트를 찾던 기억이 난다. 더클래식도 이런 생각의 형성에 조금은 기여를 했겠지. 어쨌든 그 시절 가요톱10에서 '여우야'보다 높은 순위에 랭크되었던 많은 곡들은 지금 잊혀졌고, '여우야'는 여전히 대중에게 사랑받고 있다.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더 듣는 음악이 다양해지고, 폭도 깊어졌다. 그러면서 어릴 적만큼 좋아하지 않게 된 뮤지션도 많았지만, 어린 시절보다 더욱 좋아하게 된 뮤지션도 많았다. 더클래식과 김광진은 후자였다. 어릴 적 느낌에도 한동준, 이승환, 이소라, 더클래식, 김광진 솔로앨범 등에 수록된 그의 곡들은 아주 예쁘고, 또 어딘가 앳된 동화같았다. 김광진의 동요스런 가창도 이런 느낌에 한몫을 했겠지만 곡에 깃든 맑고 건강한 감수성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금은 생각한다.

 이런 순수한 곡을 쓰는 김광진과 펀드매니저 김광진은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나이를 더 먹고 알게 된 김광진은, MBA 유학을 다녀온 1세대 금융전문가 중 한명이고 투자전문가로 상당한 성공을 이룬 인물이다. 80년대 후반에 MBA 유학을 다녀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선견지명도, 열정도 있었기에 가능한 선택이다. 아마 그 시절에 MBA는 아직 덜 알려졌고, 유학을 갈 기회는 좀 더 적었을 것이다. 반면, 유학 후 성공할 가능성은 좀 더 많았겠지. 그렇지만 단지 그것만으로 아무나 성공을 이룰 수는 없다. 최고의 명문을 나온 것도 아니고, 직장을 잡은 뒤로 철저히 자신의 실력으로 성공을 이룬 것이다.

 얼마 전에 김광진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고, 헷지펀드 회사를 차리고, 음반 작업도 병행하겠다고 말하는 인터뷰를 읽었다. 그런데 요즘 경제상황이 불확실하다보니 당장은 회사창업보다는 음반 작업 위주로 노선을 수정했다더라. 그리고 얼마전 시골의사 박경철 씨 후임으로 경제포커스 라디오프로의 DJ가 되었다.
 요즘 나에게 비중있는 sub로서 배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경제'분야의 좋은 프로그램이라 며칠 전부터 즐겨듣고 있다.

 흥미로운 이야기 하나. 투자분야는 확실한 전문성이 필요하지만 작곡은 노력하면 되는 것 같다는 인터뷰를 읽은 바가 있다. 음악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없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이리 말한 것 같은데, 범인들에게 희망이 되는 말이긴 하다.

마지막으로 김광진 1집의 안 알려진 곡. 故 유재하를 추모하는 곡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PCh6yEsE05Q&feature=fvst

너를 위로할 수가 없어
- 김광진

우리 만나진 못했지만 너의 음악을 들을 땐
마치 투명한 수채화를 보는 것만 같았어
어쩌면 이 세상은 너의 음악을 이해하기엔
너무나 어리거나 무딘지도 몰라
이렇게 티없는 하늘엔 너의 노래가 한없이 어울리는데
너의 아름다운 말은 내가 느끼는 그런 모습이야
내가 외로움에 싸여 있을 때
너의 노래는 나를 위로했지
이제 나의 노래를 부를 때가 되어도
나는 너를 위로할 수가 없어

댓글 3개:

익명 :

어쩌다 보니 유입되었는데 김광진씨에 대해 잘 모르시는것이 있는것 같아서 댓글 남깁니다.

물론 어떤 집안환경이 있더라도 80년대 후반에 유학을 가는것은 쉽지 않을 일이였을테고 그 후에 펀드를 잘 운용해서 수익율 1위에 몇년간 상위권을 유지하는 실적을 낸건 본인의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라 할 수 있겠지만 원래부터 김광진씨의 집안은 인천에서 알아주는 부자입니다. 지방유지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아버지는 인천에서 가장 유명한 소아과인 지성소아과 원장으로 평양의전을 나오신 분이고 김광진씨의 형제들도 모두 학벌이 좋고 두분은 의사로 그중 한분이 지금 지성소아과를 운영하십니다.

고등학교다닐때 다들 야간자습하는데 유일하게 김광진씨만 과외를 이유로 정규수업만 받고 귀가하는 특혜를 받기도 했고 원래 모의고사보면 전국1등이라 서울대는 당연하고 전국1등을 할 줄 알았는데 학력고사에서 수학을 망쳐서 연대에 가게 된거고요. 김광진씨를 폄하하고 싶은건 아닌데 출발점이 평균적인 사람과는 좀 다르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Spiritz :

익명/ 안녕하세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소수의 지인들만 들락거리는, 개인적인 블로그라 더욱 댓글에 감사하네요. 김광진 씨의 개인적인 삶에 대해서는 사실 많이 알지 못해요. 그렇지만 사실 잘 사는 분들 참 많고, 음악도 투자도 집안의 후광으로 성공할 수 있는 분야는 아니라, 훌륭한 뮤지션이자 투자가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다시 한 번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서정인 :

댓글을 보고 감동을 받은 적은 처음입니다. 의도하지 않으셨겠지만 댓글을 보고 많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이 댓글은 제가 찾고있던 감성, 따뜻한 겨울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