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25일 목요일

블로그를 만든지 1년


1. 세월이 너무 빠르다. 블로그를 만든지 오늘로 1년이 되었다. 블로그를 만드는 목적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 중에 나로서는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다른 이와 소통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가장 컸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이 블로그는 아직까지 실패하고 있다고 봐야겠지. 하지만 여러번 밝혔듯, 보다 개인적이고 편안하게 블로그에 나의 생각과 삶을 털어놓을 수 있다면 여전히 이 블로그는 가치있다고 생각한다. 더 솔직해지는게 중요할듯!

2. 공중보건의 생활을 하는 동안, (아마도) 인생에서 가장 심각하게 삶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 작년에는 주로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만 할까 하는 점을 고민했다면, 올해는 좀 더 구체적으로 결혼과 연애에 대한 고민이 주를 이루고 있다.

3-1. 복지는 참 어려운 문제이다.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무료틀니사업이 있다. 어느날 한 할머니가 이 사업으로 만든 틀니가 불편하다며 보건소에 찾아오셨는데, 알고보니 작년에 만든 멀쩡한 틀니를 가지고 계신 분이었다. 게다가 그 틀니에 만족하고 계셨기 때문에 사실상 새 틀니가 필요하지 않은 분이었다. 그럼에도 어떻게 가능했는지 무료틀니를 신청해서 새 틀니를 만드신 것이다. 기존의 틀니에 잘 적응하고 계신 분을 새로 틀니를 만들어서 만족시키기는 대단히 어렵다. 게다가 악골 상태도 좋지 않아서 아주 까다로운 환자분이었다. 결국 작년에 만든 틀니를 잘 쓰시는 게 맞는 길이라고 설명하고 돌려보냈는데, 어제 여사님께 들으니 할머니가 말씀을 안 들으시고, 새 틀니를 만든 치과에 가서 소란을 한바탕 피우신 모양이다. 새 틀니를 제작했던 치과의사로서는 답답한 노릇이다.

 이 무료틀니사업이라는게 보건소에서 혜택을 받을 환자분을 선택하면 환자분이 원하는 치과를 선택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담당 치과의사로서는 피할 수 없는 폭탄을 떠안은 것과 같다. 할머니는 무료라는 이점을 누리고자 불필요한 틀니를 원하셨다. 그로 인해 다른 저소득층 환자가 받아야할 복지의 혜택이 감소되었다. 복지 정책이 야기한 도덕적 해이의 전형이다.

3-2. 올 7월부터 75세 이상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레진상 완전틀니가 건강보험이 적용되었다. 향후 임플란트까지도 보험적용하겠다고 하니, 치과 진료도 이제 보험의 보장을 받게 되는 영역이 점점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치과 영역까지 보장성이 확대되는 것은 큰 방향으로서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보험의 부작용도 많다. 가령 7월부터 적용된 위 보험의 경우에, 1) 나이든 노인분이 75세가 되기 전에는 틀니가 건강상 필요하여도 틀니를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또한 더 나아가서 2) 75세가 된 노인분이 부분틀니가 가능해도 멀쩡한 이를 발치하고 더 저렴한 완전틀니를 제작하려고 한다. 이것은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아무쪼록 치과 영역의 보험적용이 과학적으로 잘 짜여졌으면 좋겠다.

4. 서울대병원 일류 교수진이 3억이 넘는 연봉을 받는다며 도마위에 올랐다. 이럴 때 내가 진보를 지지하는 것이 옳은가 회의에 빠지곤 한다. 대체 이것이 말이나 되는 일인가. 이런 기사가 나올 때마다 거론되는 '환자를 위해 봉사해야만 하는 의사가 환자를 이용해서 배를 불리고 있다.'라는 주장은 잔인하고, 저속하다. 다른 이가 마땅히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앗아간다는 점에서 잔인하고, 사람들의 마음 속에 질투심을 깃들게 한다는 점에서 저속하다. 과연 서울대병원의 일류 교수진이 3억의 연봉을 받기에 모자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분야의 일류도 그 정도, 혹은 그 이상의 연봉을 받고있다. 또한 서울대병원만 선택진료를 제한하면 그 수요는 사라지는가? 선택진료를 받으러 삼성, 아산, 세브란스 병원으로 가면 그만이다.

5. 보수는 킹카병에 걸리면 안된다. 진보는 열등감에 빠지면 안된다. 조금 더 유식하게 허영과 질투로 하자. 허영에 사로잡힌 보수주의자들은 흔히 자신들이 누리는 많은 것들이 순전히 스스로의 뛰어남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틀린 생각이다. 질투에 사로잡힌 진보주의자들은 흔히 다른 이가 가진 것을 빼앗으면 무너진 자존심이 회복되리라 믿는다. 틀린 생각이다. 이 두 감정을 경계해야만 더 좋은 보수가, 더 좋은 진보가 될 수 있다.

댓글 2개:

익명 :

연대 의대 교수가 연봉 3억을 받으면 저라면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서울대 의대 교수가 연봉 3억을 받는 것에는 어쩔 수 없는 거부감이 듭니다.

그것은 서울대가 아직은 공공의 영역에 발을 걸친 특수한 지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서울대 병원도 영리적 행위를 하고 있으나 재정적으로 공공의 자금과 영리수익에 의한 예산이 완전히 구별되는지는 의문이 남습니다.

공공의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이 시장 임금(시장에서는 정당하다고 여겨지기도 하는)을 받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드는것은 공공 부문에 일하는 것은 경제적 동기 말고도 다른 내외적 보상이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논리가 공공 부문은 턱도 없이 적은 임금을 감내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절대적 기준에서 생활과 품위 유지에 충분한 보상을 받는다면 그 정도로 충분하지, 반드시 시장 임금 수준과 비슷해야 한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진보, 보수와는 별 관계 없는 사안인 것 같습니다.
- lafite

Spiritz :

lafite/사실 좀 감정적으로 쓴 글입니다. 링크한 기사를 읽으면서 시스템적인 문제를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포함해서) 의사들의 도덕성 문제로 호도하는 듯한 느낌에 거부감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질투심에 호소하는 저질 기사라고 바라본 것입니다. 질투심에 호소하는 진보는 꼴보기 싫습니다. 질투심이 커질수록 진보는 비뚤어진다고 생각해요.

사실 제가 치과대학 교수들을 굉장히 싫어하는데(ㅋㅋ) 의과대학에는 좀 관대해지네요. 잘 모르다보니.. 서울대도 치과랑 의과는 다르고 두 병원도 분리되어 있어서, 저는 의과병원의 구조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그렇다보니 논리적으로 제 입장을 변호하기가 솔직히 힘이 드네요.

하지만 저는 의사의 연봉이야말로 능력과 업무강도에 비례해야만 공공의 이익에도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어려운 암수술을 해낼 수 있는 국내 몇 안되는 외과교수라면 저는 저 연봉은 오히려 적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저런 능력을 갖춘 최고의 의사는 정말 극소수입니다.) 그리고 어쨌든 선택진료로 3억을 벌어들일 정도의 교수진은 서울대병원에서도 소수이고, 그들은 정말 그 분야의 권위자일 것입니다. (사실 추측입니다. 의과의 실상에 대해 잘 몰라요..)
개원가에 비보험 위주로 진료하는 의사들 중에 연 30억 넘게 버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물론 미용진료도 가치있습니다. 어쨌든 저는 더 의사다운 사람이 더 많이 버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정도면 제가 느낀 감정적인 분노는 이해해주시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