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29일 수요일

현대판 마이더스 왕


 마이더스 왕은 고대 신화에 나오는 비극의 주인공이다. 그는 무엇이든 손만 대면 황금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얻은 뒤 처음엔 기뻐했지만, 자신의 사랑하는 딸 마저 황금으로 변해버리자 그 마법의 잔혹성을 깨닫는다. 고대 신화에서 마이더스 왕은 탐욕의 위험을 우리에게 알려주지만, 현대에선 그 교훈이 조금 다른 것 같다. 경제학에서 마이더스 왕은 금본위제의 어리석음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사실 '화폐전쟁'과 같은 베스트셀러 덕분에 금본위제는 나에게 퍽 흥미로운 소재였다. 나는 그 책의 내용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았는데, 최근 미국 내에서 공화당이 이 소재를 다시 들고 온 덕분에 나의 생각을 지지하는 좋은 데이터와 논의를 찾아볼 수 있었다.

 금본위제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화폐를 가치가 일정한 실물 자산에 연동시킴으로써 통화의 가격 변동을 줄일 수 있고, 이것이 경제를 안정시킨다고 주장한다.
 위 주장이 타당하려면 1) 금의 가치와 양이 실제로 일정해야만 하고, 2) 통화의 안정이 경제에 실제로 도움이 되어야만 한다.

1)에 대하여, Paul Krugman의 블로그를 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CPI에 대한 금의 가격을 본 그래프인데, 금의 가격 변동폭이 매우 크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또한 The Atlantic이라는 잡지의 편집자인 Matthew O'Brien가 쓴 칼럼을 보자. 금본위제 시절의 물가변동폭이 확장적 통화정책을 취하고 있는 2008년도 이후에 비해서 훨씬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선 Krugman이 보여준 금의 가격 변동폭은 두 가지 시장의 특성에 기인하는데, 상품 투자 시장과 각종 산업 시장이 그것이다. 상품 투자 시장에서 금은 경기가 침체되거나, 시장 금리가 인하되면 그 가격이 오른다. 또한 금은 공업, 의류, 치과(!) 등 다양한 산업 영역에서 이용되는 상품으로 각 산업의 수요측 압력을 받으며, 광산에서 채취되는 원자재로서 공급측 압력을 받아 그 가격이 변한다.
 Krugman은 오늘날과 같은 경기 침체 상황에서 통화 가치가 금과 연동되어 있다면 엄청난 디플레이션을 가져왔을거라고 말한다. 글쎄, 맞는 말이지만 부분적으로는 동의하지 않는다. 오늘날의 높은 금 가격은 금이 '안전 자산'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사람들이 손에 쥐고 있는 종이조각의 가치를 의심하게 되는 순간, 수요가 금에 몰리게 되는 것이다. 통화 가치가 금과 연동되어 있다면, 경기가 침체되거나 시장 금리가 인하된다고 금에 수요가 지금과 같이 몰리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지금까지 금의 가격 변동폭이 다른 원자재보다 유별났던 데에는 분명히 확장적 통화정책의 영향이 어느정도 있다. 그러므로 디플레이션이 온다는 것은 타당하지만, 지금의 가격을 산술적으로 적용하기는 무리가 있다.
 두 번째로 Matthew O'Brien은 금본위제 시절 물가변동폭이 더 컸던 것은 무역 수지와 금의 비축량이 직접적으로 물가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역시 금의 가격와 양이 실제로는 그다지 안정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저자는 확장적 통화정책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를 비판하는 공화당이, 이러한 증거 앞에서도 금본위제를 주장하는 것은 오류라고 지적하고 있다.

 자 그렇다면 2)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통화의 안정이 경제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가? 물론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얼마나? Krugman은 저서 '불황의 경제학'에서 한 국가가 채택할 수 있는 통화정책을 3가지로 나눈다. 변동환율제, 고정환율제, 자본규제시장이 그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3가지다. 통화재량권 획득, 환율의 안정, 자유로운 거래. 하지만 우리는 이들 중 2가지 이상을 결코 얻을 수 없다. 변동환율제는 환율의 안정을 포기한다. 고정환율제는 통화재량권을 포기한다. 자본규제시장은 자유로운 거래를 포기한다.

 이 중에 고정환율제의 대표적인 예로 지금의 유로존을 들 수 있다. 지금의 유로존이 채택한 고정환율제가 실패한 이유는 무엇일까? 거칠게 말해서 국소적인 수급의 불균형을 해소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세한 내용은 과거 포스팅을 링크한다.
 금본위제는 고정환율제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화폐전쟁'이 주장하듯, 유로존도 감당하지 못한 고정환율제를 전 세계로 확대한다? 끔찍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공화당이 주장하듯 미국이 금본위제를 채택하는 것은? 아니 대체 왜 미국이 금본위제를 채택해야만 하나? 우선 Krugman이 주장하듯, 금본위제를 채택하면 디플레이션이 올 것이다. 이는 지금의 경기 침체를 공황으로까지 악화시킬 수 있다. 또한 미국은 인플레이션 압력을 전세계에 전가할 수 있는 기축통화국이다. Matthew O'Brien의 칼럼이 보여주듯, 양적 완화 직후 안정적인 물가변동폭을 유지해온 미국이 금본위제를 채택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금본위제는 낡은 소재이다. Keynes가 말했듯 'barbarous relic'인 것이다.

 거시 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쓸 때는 시간이 무척 오래걸린다. 전문 분야가 아니고, 아직까지 생각의 깊이도 부족한가보다. 두 번째 태풍 덕에 날씨가 우중충하다. 이제 밖에 나가서 운동하고 책도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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