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4일 토요일

사랑의 기술

 책의 영어 제목은 'the art of loving'인 반면, 우리말 제목은 '사랑의 기술'이다. 물론 저자는 책의 도입부터 사랑이란 '사건'이 아니라 배우고 노력해야만 하는  '기술'이라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내용을 보니 이 제목은 오해의 소지가 조금 있어보인다. 내 마음대로 바꾸자면, '사랑의 이해'가 더 나은 제목이 아닐까? 혹은 기술을 technic 즉 技術이 아닌, description 혹은 記述로 표현해야만 보다 내용에 걸맞을 것 같다.
 책의 저자 에리히 프롬은 독일에서 사회학, 심리학, 철학을 공부하고 미국에서 강의를 한 학자인데, 다양한 학문적 기반이 실제로 책의 내용을 풍부하게 해주는 것 같다. 저자는 통념과는 달리, 사랑은 방법을 배우고 익혀야 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그리고 사랑의 뿌리가 인간의 근본적인 분리감에 있다고 말한다. 맞는 말 같다.
 분리감의 극복을 위해 인간은 몇 가지 방법을 취한다. 과거에는 성애가 결합된 집단 의식을 통해 이를 극복했다. (지금도 종교나 단체 운동, 공연 등에 이 전통이 남아있다) 이는 강렬하지만 너무 짧다.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사람간에 인간 관계를 이루고, 집단 생활을 해나가는 것이다. 이는 지속적이지만 충분치 못할 때가 많다. 그 외 창조적인 활동이 있는데, 이는 모두가 누리기 힘들고 사람 간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이에 반해, 사랑은 충분히 강력하면서 육체와 정신이 함께 연관되어 있고 지속적인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스피노자는 '행동'과 '격정'을 구별해서 전자는 능동적 활동으로, 후자는 수동적 활동으로 정의한다. 능동적 활동에서 인간은 자유롭지만, 수동적 활동에서 인간은 쫓기는 노예상태가 된다. 저자는 사랑은 능동적 활동이 되어야만 하고, 이로부터 '받는 사랑'에서 '주는 사랑'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이 처음 태어나면 어머니로 대표되는 '받는 사랑'에 열중한다. 차츰 성장하면서 인간은 타인을 배우고, 남에게 애정을 구하는 단계를 거쳐서, '주는 사랑'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성장 단계를 고찰해보아도 '주는 사랑'은 '받는 사랑'보다 성숙한 경지이고, 보다 가치있는 것이다.
 이후로 저자는 어머니의 사랑을 무조건적 사랑, 아버지의 사랑을 조건적 사랑으로 정의하고, 인간은 성장하면서 두 가지를 차례로 경험하며, 성숙한 사람은 외부에 있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으로부터 해방되어 내면에 그 모습을 간직한 사람이라 말한다. 저자는 이를 바탕으로 본인의 각종 정신병에 대한 임상적인 경험을 해석하고 있다.

 글쎄, 나는 저자가 여기서 부모의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한 것 같다. 아버지의 사랑이 저 정도로 어머니의 사랑과 대조된다고 생각하지 않고, 다만 이후로 보다 확대된 인간관계에서 맺어지는 조건적 사랑과 어머니의 사랑을 연결하는 역할 정도를 하지 않나 싶다.
 또 저자는 양성의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동성애는 근본적인 실패라고 단정하고 있지만, 동성애자들의 뇌 구조에 대한 최근의 연구결과를 보면 저들의 사랑이 근본적인 실패라고까지 평가받을 건 아닌 거 같다. 그 밖에도 수치심에 대한 분석 등에 의아한 점이 있으나 이만 패스..

 하지만 인간이 가지는 분리감이 모든 인간활동의 씨앗이 된다는 분석은 참 적절한 것 같다. 또 사랑의 능동적 요소로 보호, 책임, 존경, 지식을 드는 것도 그렇고, '받는 사랑'에서 '주는 사랑'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사랑의 성숙과정을 해석하는 것도 깊이 공감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선과 악, 옳음과 그름, 좋은 것과 나쁜 것은 형이상학적으로 증명될 수 없고, 인간이 자신을 벗어나 타인과 관계를 형성하면서 만들어지는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사회 관계에서 그 내용이 결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점에서도 '받는 사랑'보다 '주는 사랑'이 높은 수준의 가치라는 설명은 타당한 것 같다.
 그리고 '주는 사랑'을 통해서 '받는 사랑'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그것은 실패한 것이라고 말하는데, 아주 냉정하지만 참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몽상이 아니라 현실에 뿌리내려야 하고 치열히 달성해야만 하는 것이다.

 나 스스로를 비롯하여, 주위를 돌아보면 '받는 사랑'을 추구하는 것에 머물러서 자신을 더 이상 발전시키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인간의 생물학적 본능이다. 인간의 동물적 본능은 '받는 사랑'을 추구하기 쉽게 되어있다. 하지만 성숙한 사회생활에 요구되는 '주는 사랑'은 인간의 본능을 넘어서는 것이다.

 꽤 긴 시간동안 내가 안고 있는 고민이 있다. 여성이 남녀간의 사랑에 있어서 남성보다 낮은 단계에 머무르기 쉽지 않나 하는 생각인데, 이번 독서도 이 고민을 해소해주지는 못했다. 생물학적인 분석에 의하면 여성이 남성보다 개인적이고, 보수적인 경향이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또한 사회적으로 여전히 남성의 경제력이 우세한 상황에서, 결혼이 삶에 미치는 큰 영향력은 여성의 성숙을 방해한다. 여전히 많은 여성들은 부양받는 존재이고, 어린아이와 어른의 중간 단계에 머무르고 마는 것이다. 남자가 구애하고 여자가 받아들이는 문화적 전통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문제가 나에게 여성을 충분히 존중하기 어렵게 만들 때가 있다. 사회적 발달을 높이 평가하는 철학이 남성중심적인 건지도 모르지. 그러고보면 태어난 아기에게 여성이 느끼는 일체감과 무조건적인 사랑은 남성이 도달할 수 없는 어떤 경지이기도 하다. 삶의 진리는 나에게 여전히 쉽게 통찰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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