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20일 수요일

된장녀와 알파걸


1. 한국의 가계부채와 스페인을 비교하는 기사가 요즘 자주 눈에 띈다. 전에도 한 차례 언급했듯이, 스페인의 위기는 유럽 문제의 원인이 복지과잉이 아님을 증명한다. 스페인 위기의 원인은 정부의 재정상황이 아닌 가계의 재정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스페인의 특징은 지금의 한국과 유사한 면이 많다.
 실제로 2011년 3분기 한국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는 154.9%로 스페인보다도 10-20%가량 높으며, OECD 평균의 4배에 해당한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특수한 전세제도로 인하여 발생하는 비금융부채를 포함하면 사실상 위의 수치는 230%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는 세계최고수준이다. 우리나라의 가계부채와 관련하여 이미 연초에 GS에서 보고서를 내놓은 바가 있었고, 이에 대한 프레시안의 반박기사도 있어서 과거 이 둘을 포스팅한 적이 있다.
 스페인보다 심각한 한국의 가계부채 상황이 당장 우리나라에 심각한 경제위기가 올 것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위 포스팅에서 언급되고 있듯이, 전세계적인 저금리 기조가 우리의 위기를 미봉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가 계속해서 가계부채라는 이름의 폭탄을 키워간다면, 어느 순간 세계 정세의 격변기가 닥쳐올 것이고 우리나라는 폭탄이 폭발할 시점과 그 강도를 조절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이리도 심각해졌는가? 세 가지 원인을 들 수 있을 것이다. 1) 부동산 거품 2) 낮은 생산성의 자영업 3) 심화된 소득양극화
 이 원인들은 서로 복잡하게 상호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구조적 문제점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2. A와 B란 두 여성이 있다고 하자. 이중 A는 예쁜 된장녀이고, B는 현명한 알파걸이다. A는 잘나가는 중소기업 사장 C와 결혼을 했고, B는 평범한 직장인 D와 결혼을 했다. 중소기업 사장 C는 1년에 5억을 벌어들이고, 직장인 D는 1년에 5천만원을 벌어들인다.
 A의 가사일은 형편없고, 소비습관도 건전치 못했다. A는 C의 생산성에 10%밖에 기여하지 못했다. 반면 B는 가사일은 물론, D를 훌륭히 내조했다. B는 D의 생산성에 무려 80%의 기여를 했다.
 그렇다면 A와 B 중 누가 더 훌륭한 아내일까? 우리의 전통적 가치관은 물론 B를 더 훌륭한 아내라 말한다. 하지만 위 질문을 경제학적으로 바꿔보자. A와 B 중 누구의 생산성이 더욱 높을까? A는 C의 생산성에 10%의 기여를 했다. 즉, 5천만원/1년의 생산성을 가진다. 반면 B는 D의 생산성에 80%나 기여를 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4천만원/1년에 해당한다. 즉, 경제학적으로 A는 B보다 더 우수한 생산성을 가진다. 현실이 이상을 배신하는 사례 중 하나인 것이다.

 세상은 고립되어 있지않고, 제조업의 생산성은 무궁무진하게 향상되는 반면, 서비스업의 생산성은 그 발전이 더디다. 그렇기에 국가는 무엇보다 뛰어난 생산성의 제조업(C)을 갖추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서비스업(A)도 높은 연봉을 받을 수가 있다. 우리보다 더 짧은 시간 설렁설렁 일하는데도 불구하고 더 높은 임금을 받는 선진국의 서비스업 종사자들은 모두 예쁜 된장녀 A와 같은 셈이다.
 그럼에도 서비스업이 시대가 바뀔수록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뛰어난 고용효과 때문이다. 제조업의 보다 많은 부분은 자동화되고 있지만, 아이들의 교육은, 환자의 진찰은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도 인간이 맡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의 고용구조는 경직되어 있고, 이것이 수많은 사회문제의 원인이 되어왔다. 왜 의사가 최고의 인기직종이 되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캠브릿지 경제학과 장하준 교수는 고용의 불안정성이 지나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구체적으로 그는 IMF 이후에 주주의 힘이 강력해지면서 단기적 유동자금의 압박때문에 기업들이 단기 소득을 높이고자 고용을 줄이고, 비정규직을 늘리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 외에도 노동시장의 비유연성을 함께 이야기해야만 할 것같다. 회사를 그만두면 재취업의 길이 없기 때문에 모두들 울며 겨자먹기로 자영업을 할 수 밖에 없고 이는 결국 유래없이 엄청난 자영업자의 수, 이들의 낮은 생산성, 가계부채의 악화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경제민주화'라는 화두는 분명 재벌개혁 이상의 것이다. 이는 재취업 교육,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같은 복지정책 뿐만 아니라, 기업이 장기이익을 추구하기에 알맞게끔 금융자본을 효과적으로 개혁하는 것도 포함하는 것이다. 높은 고용률을 이룩하지 않고서 낙수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선 공약으로 이미 충분히 높은 근로소득세를 건드리려 하지말고, 금융세, 상속세 등의 다른 조세정책을 가다듬는 것이 우선하였으면 좋겠구나.
 그러고보면, 요즘 부동산정책도 금융정책과 따로간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정부의 각 부처 간 입장 차이가 낳은 비효율성의 예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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