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28일 월요일

체리의 가격

 1. 아래글의 논의로부터 정서가 이데올로기에 영향을 미치고, 그것이 또 사회과학과 결합되어가는 과정이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반대로 선도적인 지성이 이데올로기에 영향을 미치고, 다시 일반 정서의 공감을 얻는 역과정도 있겠지. 간혹 인간사를 인간의 합리성과 비합리성 간의 경쟁 구도로 해석하기도 한다. 18세기에 제레미 벤담은 개개인의 행복 추구가 사회 전체의 공리를 증대시킨다고 주장했다. 18세기에 애덤 스미스는 개개인의 이윤 추구가 보이지 않는 손을 거쳐 사회 전체의 후생을 증대시킨다고 말했다. 이 둘이 같은 시기에 등장한 것이 우연일까? 아니면 인간사 가운데 합리적인 인간성이 주목받던 시대가 낳은 산물이 아닐까?

2. 나꼼수 30화에서 20초 가량 FTA의 경제적 분석(?)이 나왔다. 9900원하는 체리가 한미FTA 이후 관세철폐의 효과로 7900원이 될거라는 정부의 주장을 비웃는 내용이었는데, 이에 대해 한EU FTA발표 뒤 명품 루이비통의 가격인하가 있었느냐며 반박했다.
 자, 합리적으로 생각해보자. 사치품의 경우 가격에 따른 수요의 흐름이 비상식적이므로 관세철폐의 과실을 공급자가 가져갈 수 있었다. 하지만 체리는 식품이자 기호품으로 그 특성이 전혀 다르다. 일반적으로 같은 가격에서 국산을 미국산이 이길 수 없으므로 관세철폐의 과실은 분명 소비자에게 일정부분 이상 돌아갈 것이다. 적어도 단기적으로(그리고 내 생각에 장기적으로도) 체리에 대한 수요는 가격에 탄력적으로 반응할 것이다.(체리 가격은 인하될 것이다.)

3. 경제에 관해 많이 알지도 못하면서, 블로그에 경제관련 이야기만 읊게 되는게 조금 부끄럽다. 지금의 내 관심사를 투영하기에 어쩔 수가 없다. 아마 앞으로도 한동안은 경제 이야기만 하게 될 것 같다. 조만간 투자 이야기로 옮겨갈수도.

비이성적 확신



 공보의 생활을 하면서 평일 중에는 병원선 동료들과 자주 어울린다. 의사 형이 둘 있고, 한의사 친구가 한명 있는데, 다들 너무 좋은 사람들이라 내 행운에 감사한다. 통영의 영화관은 두 군데가 있는데 둘다 평일 중에는 사람이 거의 없다. 오죽하면 최신 개봉작을 보러가도 우리 4명만이 관객으로 입장할 때도 많다. 덕분에 발을 뻗거나 누워서 영화를 볼 수 있는 전용관으로 잘 이용하고 있다.

 지난 주에는 '특수본'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액션 위주의 형사물인데, 정경관계의 유착과 비리에 맞서는 내용이었다. 재미 자체는 그저 그랬다. 착취당하는 노동자와 빚더미에 앉은 서민들의 시위, 그들을 공권력으로 억누르는 사회지도층의 모습이 아주 전형적으로 다뤄지는데, 문득 사람들이 이 사회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영화가 잘 투영하고 있구나 싶더라. 이 영화는 (그 흥행 여부와는 별도로) 분명 우리의 '분노'를 잘 대변하고 있었다.
 요즘 자주 버트런드 러셀 作 <우리는 합리적 사고를 포기했는가>에서의  '합리적 회의'와 '비이성적 확신'의 대비가 떠오른다. '분노'는 냉정한 판단에 필수적인 절제와는 거리가 멀다. 19세기에 노동계급을 착취하는 자본가에 대한 분노는 파시즘이라는 이름의 기형아를 잉태했고, 사회주의라는 이상도 분노를 기반으로 했기에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항거로서 표현될 수 밖에 없었다. 러셀이 추천하는 '합리적 회의'란 아주 상식적인 것이다. 모든 주장을 근거를 바탕으로 판단하되, 확신을 경계하고 회의적인 태도를 견지하라는 것이다.

 인간의 감정은 이데올로기로 승화되고, 이는 너무나 쉽게 우리를 '비이성적 확신'의 늪에 빠뜨린다. 신자유주의는 경제학 기조이다. 하지만 이는 자유주의 사상과 결합하여, 정치사회적으로 시장만능주의의 바탕이 되었다. 금융위기를 거쳐 유럽위기를 겪으며, 또 이명박 정권을 겪으며, 요즈음 신자유주의를 옹호할라치면 큰일이라도 당할 것 같다. 미국에서도 보수적 경제학자인 맨큐의 수업을 하버드 학생들이 거부해서 화제더라.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11108017009
 하지만 신자유주의를 둘러싼 이데올로기의 거품을 제거하고 이를 경제학 자체로 바라보면, 우리가 손쉽게 '이건 틀렸어!'라 말하기 어려운 강력한 논리를 그 안에서 발견하게 된다. 펠드스타인과 서머스가 이야기하는 경제가 그들이 대표하는 보수, 진보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감정만큼 크게 다를까?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나처럼 펠드스타인보다 서머스를, 맨큐보다 크루그먼을 좋아할 수는 있지만 합리적 입장을 견지한다면, 성급한 판단을 보류하고 신자유주의 또한 이해하려 노력해야 옳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미국식 자본주의 모델을 비판하고 대안적 경제 모델을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비주류는 주류가 아니기에, 주류를 성급히 비난하고 강한 자기확신과 결합하는 경향이 있음을 또한 알아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FTA 관련 논쟁들을 접하며, 많은 이들이 '비이성적 확신'에 빠져듦을 목격했다.  정부가 주장하는 FTA의 경제 효과 못지않게, FTA에 대한 반대 역시 확신에 찬 목소리로 주장되고 있다. 멕시코의 경제위기를 미국의 음모로 규정하지만, 이는 미국이 의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멕시코에 수백억 달러의 원조를 제공한 사실은 조금도 설명하지 못한다.
 나는 현 정권과 여당이 심판을 받는 것이 시대의 흐름에 걸맞는 결과라고 생각한다. 나는 야권 통합을 지지하고 이에 한표를 행사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은 야당이 계속해서 FTA폐지를 당론으로 들고 나올 경우 강하게 시험받을거다. 난 FTA에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를 판단할 능력이 없다. 그러나 이미 체결된 FTA를 다시 폐지하는 것은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이미지를 훼손한다고 생각한다. 한미 동맹에도 좋지 않다.
 우리나라의 좌파가 국민의 '분노'를 조장하기 보다는, 이를 현명하게 다스려주었으면 좋겠다.

2011년 11월 22일 화요일

의료민영화


 이번 한미FTA로 인해서 의료산업분야는 어떻게 될 것인가? 웹상에 떠도는 루머와는 달리, 전면적인 의료산업의 민영화와 이번 FTA타결은 거리가 멀다. 허나, 그 가능성이 보다 커진 것은 사실이다.
 나는 적어도 치과의사의 입장에서는 의료산업의 민영화에 대한 결론은 어느정도 유추해낸 편이다.
 논의를 단순히 하고자,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와 민간보험 이야기는 제외하겠다.

 영리병원은 외부 자본의 투자를 받아서 운영되는 병원이다. 영리병원은 당연히 지금의 법인 병원 규모의 대형 병원의 형태를 띨 것이다. 지금까지는 개인병원은 의사 면허를 가진 이만이 오너가 될 수 있었고, 대형 병원들은 잉여 자본은 반드시 재투자를 하게끔 되어있다. 허나 영리병원은 외부 자본을 도입해서 병원을 설립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얻어낸 수익을 외부로 가져가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수익을 향한 강한 인센티브가 구축될 것이다.

 가령 100의 비용이 투자된다고 가정하면, 110의 이익을 얻어내야만 투자의 과실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즉, 투자 대비 수익을 얻을 수 있어야 투자 병원이 굴러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는 두 가지 결과를 낳을 수 있을 것이다. 1) 총수요의 증가 2) 동일진료의 비용 증가
 그러므로 이러한 면에서 의료산업의 민영화가 (적어도 초기에)국민의 의료비용지출을 증가시키리라는 점은 거의 확실하다.
 그렇다면 이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장점은 없을까? 이는 역시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의료서비스의 질적 향상 2) 의료서비스산업의 수출
 많은 이들이 막연히 의료비용지출의 증가라는 말을 불쾌해 하겠지만, 핸드폰 이용료로 인해 IT산업을 반대할 이는 없을 것이다. 결국 1)은 의료민영화가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고, 이 효용에 의해 의료민영화도 국민에게 좋은 것이 될 수 있다는거다. 더군다나 만약에 '의료서비스산업의 수출'이 성공을 거둔다면, 국가에 부를 안겨줄 수 있는 효자가 될지도 모른다.

 이제 내 주관을 밝혀보자면, 개인적으로 치과 분야에 한해서는 의료민영화가 득보다 실이 많다는 의견이다.
 그 이유는 '총수요의 증가'와 '의료서비스의 질적 향상' 두 부분에 의문을 가지기 때문이다. 치과 분야는 수요제한적인 산업이다. 무슨 말이냐면 쉽게 말해서 '썩은 치아는 정해져있다.'는 거다. 환자의 구강병소를 치료하는 것을 치과의사의 주목적으로 보았을 때, 치료의 수요는 투자탄력적이지 않다. 수요의 증가를 이끌 수 있는 분야는 미용관련(교정, 양악수술, 심미치료 등) 분야에 국한되어 있다고 여겨지며, 이 수요가 충분히 탄력적으로 증가된다고 해도, 국민 전체에게 큰 이득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개인적인 가치관이 좀 보수적이라 그리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또한 치과 분야는 의료서비스의 질적 향상이 많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단적인 예로, 우리나라의 치과의사들은 미국의 일류 치과의사들과 비교해도 진료의 수준이 떨어지지 않는다. 미국이 보다 감염관리에 철저하다는 장점도 존재하지만, 오히려 손기술의 차이로 우리의 수준이 더 높다는 평도 많다. 또한 분야의 특성상, 치과 치료는 많은 부분에서 도재식 방식을 고수하고 있고 진료 방식의 획기적인 진보가 이루어지기 아직은 요원해보인다.
 위 두 가지 사실을 고려하면, 우리가 치과 산업의 민영화를 통해 이득을 얻으려면 '의료서비스산업의 수출' 외엔 그 방법이 없는데 이것만으로 치과 산업을 민영화하기에는 그 불확실성과 가능한 피해가 더 많아보인다.

 하지만 치과 분야 외 의료 분야는 이와 다를 수 있다. 병원선에서 같이 근무하는 의사형님께 짧게 물어봤을 뿐이지만 다른 의료 분야의 경우, 미국의 영리병원이 풍부한 자본을 바탕으로 다양한 검사법 및 치료법을 도입해서 실제로 좋은 outcome을 거두는 부분도 많다고 한다. 또한 예방 분야는 차세대 의료 산업 분야로 각광받고 있으며, 미용관련 분야와 더불어 아마 가장 투자탄력적인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의료산업의 민영화 역시 그 장단점을 쉽게 판단하고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미국식 의료제도의 문제점이 아주 유명하지만, 반대편 극단에 있는 영국식 의료제도 역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결국은 또다시 정치적인 방식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어지고, 손쉽게 결론내려지는 것이 아닐지 걱정이 되는구먼.

한미 FTA


1. 어차피 FTA비준처리를 이제와서 전부 철회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정부가 미국과 재협상을 한 뒤, 미국 의회에서 비준안이 처리되는 순간부터 배는 떠나갔다고 봐야 옳다. 뒤늦게 결사항쟁을 부르짖어 야당 통합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 끌고, 이명박과 여당에게 선(先) 비준 후(後) ISD 재협상 카드(비록 실효성은 의문이었으나)까지 받아냈을 때 합의를 봤으면 그래도 나았을 것이다.

 오늘의 강행 처리로 야당은 총선 승리의 가능성을 높였다 좋아할지도 모르겠지만, 나같이 그들이 한나라당의 대안이 될 수 있을지 회의감을 느낀 사람도 조금은 있을거다. 재당선에 적색 신호가 켜진 오바마와 이 정도 결과 밖에 이끌어내지 못한 이명박도 무능하지만, 의회 민주주의를 저버리면서도 막상 FTA 관련하여 아무런 이득도 건져내지 못한 야당도 한심한 족속들이다.

2. FTA가 과연 해당국에 득이 되는가, 해가 되는가 하는 문제는 지금도 전세계적인 논쟁거리이다. 미국에서도 여전히 주류 경제학계조차 공통의 컨센서스를 가지지 못한 안에 대해서 분명한 결론을 도출해내는 것은 녹록치 않은 일이다.
 다만, 대한민국은 수출중심의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이미 수많은 국가들과 FTA를 체결해왔다. 이미 미국 못지않은 거대시장인 EU와 FTA가 체결되었고 내년 초에는 중국과 FTA가 본격적으로 논의될 것이다. 중국과 우리나라의 교역규모는 미국의 두배에 달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어차피 미국과의 FTA는 빠르든 늦든 체결될 사안이었다.

 일반적으로 생각해보면 무역을 통해 이득을 보는 소비자들은 세력화 되어있지 않은 반면, 손해를 보는 판매자들은 특정 산업과 연관되어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그렇기에 자연히 반대여론이 긍정여론보다 강렬하기 마련이다. 또한 아직까지 국민들이 경제문제에 대해 상당히 무지하다. 수출기업은 이득, 내수기업은 손해라는 발상은 지나치게 일차원적으로 무역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하지만 유독 미국과의 FTA에 대해서는 국민들의 반응이 지나치게 맹렬하다. 왜 한미 FTA에 대해서만 거품을 무는 사람들이 넘쳐나는걸까? 나는 왜곡된 정보를 퍼뜨리고 비생산적인 갈등을 조장하는 세력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감히 생각한다.
 가령 레칫 조항을 예로 들어보자. 이는 한마디로 '한번 개방하면 쉽게 못닫는다.'라는 조항이다. 그런데 한번 열고 쉽게 닫을 수 있으면 제대로 개방이 되겠나? 서로 자국에 유리한 시장만 개방하고, 불리한 시장은 닫으려할테니 제대로 된 무역효과를 누릴 수 없을 것이다. 이에 관해 웹상에 나도는 만화 등을 다시 한 번 바라보면 얼마나 잘못된 정보가 양산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각 조항은 이중의 함의를 가지고 있다. 가령 ISD는 우리 기업을 위해 이용될 수도 있으나, 미국 기업을 위해 이용될 수도 있다. 실제로 미국은 ISD 소송을 국제적으로 가장 많이 제기하는 국가이다. 허나 그렇다면 이 조항이 독소조항일까? 확실한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는게 내가 내릴 수 있는 수준의 결론일 것이다. 미국이 국제재판소에 소송을 건 사례가 가장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패소한 사례가 가장 많기도 하기 때문이다.

 허나 론스타 사건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는 세계화에 대한 대비가 아직은 부족하다. ISD 조항을 제외시키지 못한 지금은 국제법과 자국의 법규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 또 어떻게 하면 외국자본의 투자를 원활히 유치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지킬 수 있을지 고민해야만 한다.
 무엇보다도 농업, 제약업이 가장 걱정이다.

2011년 11월 20일 일요일

월요일

1. 김 간호사님이 오늘은 아침에 떡국을 끓여주셨다. 그간 볶음밥을 계속 해주셔서 다들 송구스런 마음이었는데 친절한 호의를 멈추지 않으시니 무슨 선물로 이를 갚을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된다. 사람이 호의에 감동하는건 그것이 대가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그렇게 보이기 때문이다.) 대가를 바라는 선의는 감동을 주지 않는다. 참, 강력한 일반론이다. 그럼에도 실천이 쉽지 않은 경우는, 의식의 바닥이든, 무의식이든 사실은 대가를 원하게 되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름 장기적 안목으로 바라봐도 편익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호의를 접는다. 참 많이 겪은 내 마음의 변화. 그렇다면 부모님이 내게, 연인이 내게, 친구가 내게 보이는 호의는 어떤 대가를 바라는 것일까? 더욱 장기적인 안목이라고 답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인간은 호모 이코노미쿠스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 어쩌면, 그것이 기쁘기 때문에 호의를 베푸는지도 모른다.

2. UFC139는 굉장했다. 좋아하는 선수의 시합을 볼 때 가슴이 두근거린다. 나는 나 스스로의 정신을 과신하는 버릇이 있다. 나도 한 사람의 인간이고, 예민한 마음의 등락을 가진 사람임을 자주 잊는다. 그냥 좋아하는 스포츠의 좋아하는 선수 경기를 바라보는 것도 떨림과 망설임이 이렇게나 있다니 원, 좀 심한 거 아닌가?

3. "세상에는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하는 건 잘 참지만 하기 싫어하는 일을 억지로 하는 걸 못 참는 사람이 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하고 싶은 일은 꼭 해야 하지만, 하기 싫은 일도 꽤 잘 참는 사람들이다. 妻의 분석에 의하면 전자는 절제에 능한 사람이고, 후자는 인내심이 강한 사람들이다. 절제란 정도에 넘지 않도록 알맞게 조절하는 것이고, 스스로 알아서 실천해야 한다. 인내는 괴로움이나 어려움을 참고 견디는 것인데, 외부의 억압이나 강요 혹은 고통을 잘 견뎌내는 것이다."
 참 재미있고, 일리있는 말. 나는 절제에 능하고 인내심이 없는 사람이 맞지.
 Hubris님의 blog 'Economics of almost everything'에서 퍼옴.

4. 지난주 독일과 영국의 회담 결과는 유로존이 안고 있는 정치적인 문제가 얼마나 난제인가 새삼 보여주었다. 사실 통화정책이 한계에 다다른 미국과는 달리, 지금의 유럽이 강력한 통화정책이 필요하리라는 사실은 분명해보인다. EFSF 기금은 규모가 너무 작고, 가능한  정책이 제한되어 있으며, 속도도 너무 더디다. ECB의 개입은 요원하고, 독일은 여전히 스스로를 피해자로 여기고 있다. 이것도 일종의 게임이론일까? 감정이란 변수를 포함시키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미국의 재정적자와 유럽의 재정적자를 단순 비교해서 미국의 경제상황이 더 열악하다는 시선보다는 유럽이 안고있는 정치적인 문제는 사태 해결을 미국보다 훨씬 더디고, 고통스럽게 할 것이라는 시선에 더 믿음이 간다. 유럽이 유로존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루비니는 부정적이다. 미국 경기 지표는 날이 갈수록 호전되고 있는데, 유럽의 불확실성이 발목을 붙잡는다. 연준이 출구전략을 사용하는 타이밍은 언제가 될까? 내년 중반쯤? 궁금하다.

2011년 11월 13일 일요일

속좁은 여학생

 몇년 전 toma라는 인터넷 만화작가를 좋아했다. 엄밀히 순정만화 작가인데 당시 대표작은 '크래커'. 제목처럼 크래커를 잘근잘근 씹어먹으며 팬시하게 즐길 수 있는 그림체와 내용이었다. 좋아했던 '크래커' 이후, 유료만화로 '속좁은 여학생'이란 만화를 연재했는데 기가 막힌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여자에게 붙은 '속좁은'이라는 수식은 남자입장에선 맞아,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싶어지면서 동시에 퍽 매력적이다.

 연인사이에 소소한 다툼이 잦을 날 없는 요즘이다. 나는 문제의 원인을 속좁은 여자친구 탓으로 은연중 정의하고 있지만, 얘는 아마 나를 속좁은 남동생 쯤으로 여기는 듯도 하다. 오늘 있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 내가 식사 중에 코피가 났는데 눈하나 까딱 안하더니, 슥 하고 휴지를 말아서 주더라. 휴지야 내가 말면 되지 여자애가 놀라거나 걱정하는 기색이 없으니 이거 뭐랄까, 아들키우는 어머니 내공쯤 되어 보였다.

결혼


 아버님 생신에 형이 여자친구를 데려왔다. 양가 상견례도 마쳤고, 둘이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 형 여자친구가 온다고 하니, 유난히 어머니가 화장하랴 요리하랴 바쁘셨다. 덕분에 식사도 맛있게 하고, 웨딩촬영 이야기와 연관되어 어릴적 사진들이 담긴 앨범도 다 함께 보았다.

 평생을 함께 살아간다는 건 굉장한 일이다. 더구나 부부관계란 대단히 특별해서, 성인의 인생에서 형제나 부모보다 삶에 복잡한 영향을 주고 받는다. 어떤 이는 결혼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선택 중 하나로 꼽는다. '대학, 직장, 결혼'이 그 세 가지라고 하는데 일리가 있는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가장 즐겨찾는 blogger인 Hubris님은 많은 면에서 논리적이고 깊이있는 견해를 보여주시지만, '결혼에선 의외로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견해에는 개인적으로 의문을 가진다. 이런 남자(여자)가 저런 여자(남자)를 만나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지만, 그것이 두 남녀의 가치가 등가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는 결코 두 남녀의 '가치'를 정량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의 다양한 가치(재력, 외모, 성격 등)를 무의식 중에 평가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지만, 이는 가치판단의 영역으로서, 정량(quantitative)보다는 정성(qualitative) 과정에 가깝다. 게다가 관계가 쌓여감에 따라 형성되는 둘 만의 스토리, 감정의 공유와 삶의 공유는 다른 외적 가치보다 남녀사이에 미치는 영향력이 결코 작지 않다.
 그렇기에 나는 남녀간의 결혼에는 수많은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한 사람의 인생에서 세 가지 선택 가운데 가장 인간적인 영역으로서, 그의 삶을 신비롭게 변화시키는 선택이 바로 결혼이 아닐까.

2011년 11월 11일 금요일

어제와 오늘

어제.
사무관의 쪼심에 의해 9월 한달 실적향상을 위해 매진한 결과, 이후의 뱃생활은 확실히 더 한가하다. 다행히 무기력증은 다소 회복됨. 어제는 드물게 검진을 원하는 환자분들이 많았다. 사무관을 몹시 두려워하는 김 여사님이 폴리덴트를 새로운 it 아이템으로 준비하셨던데 드디어 한 할머니께 제공!! 복도에 무심히 서 계시던 다른 할머니 눈에서 불꽃이 튀는 것을 본 것 같다. 바로 다음에 들어오셔서는 남편이 틀니라며 달라고 요구하셨으나, 직접 오신 분만 드린다고 정중히 거절했다. 환자가 적은 섬이라 다행이긴한데, 나중에 마도나 읍포에서 폴리덴트를 드리는 순간 큰일이 날 것 같다. 마도 유 할머니가 어르신들 십여명을 끌고 오실 모습이 눈에 선하다..

2. 흔하게 있는 일이다. 한 할머니께서 발치를 요구하심. 막연하게 불편하고 뽑고싶다고 하시는데 막상 질문을 해보니 식사 중에도, 평소에도 별 증상은 없다. 게다가 나중에는 이를 다 뽑고 틀니를 하고싶다 원하시더라. 뽑을 이가 아니라고 설명드리니 그래도 뽑아달라고 답하신다. 이런 환자분은 잘못된 상식을 가지고 계시고, 생각을 바꾸기 무척 힘들다. 대화시도를 진료거부로 받아들이고 본인의 요구만을 관철하려는 분을 잘 다루려면 어떻게 해야만 할까. 이것은 서술형 문제이다.


오늘.
아이튠스를 잘 애용하고 있다. 경제포커스서 인상깊었던 내용.

1. 독일인의 소비습관을 보면, 카드사용시 신용카드를 쓰는 경우가 10%밖에 안된다고 한다. 반면 우리나라의 신용카드 이용도는 무척 높다. 이를 loss aversion를 파고든 카드사의 마케팅 덕이라고 해석하던데 동의한다.

2. 재미있는 예. 2만원짜리 청바지를 사려다 몇 블럭 옆 매장에 1만원 저렴한 청바지를 판다는 소식을 들으면 옆 매장을 찾아간다. 허나, 100만원짜리 가방을 사려다 몇 블럭 옆 매장에 1만원 저렴한 99만원짜리 가방을 판다는 소식을 들어도 큰 차이가 안난다며 100만원짜리를 그냥 산다. '마음속 회계장부'가 저지르는 대표적인 오류.

3. 행동경제학은 희극을 관람하는듯한 재미가 있다. 희극속 우스꽝스러운 주인공이 사실은 나를 투영한다는 점에서 그 안에 숨은 비극을 발견할 수 있다. 머리로는 이론을 이해하고 있지만 행동으론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의사형들에게 파스를 강탈해서 집에 차곡차곡 적립하시는 섬마을 어르신들은 loss aversion에 강하게 지배받고 계신 것 같아. 역으로 생각하면 이곳보다 잘 교육된 도시의 환자분들은 보다 합리적이지 않을까라며 스스로를 다독여본다.

4. 남유럽 국가들은 재정적자 뿐 아니라 경상적자도 심하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가 있다는 강연내용. 결국 쌍둥이적자 이야기인데, 유럽은 미국과 다르다. 경상적자가 자본흑자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점이 진짜 문제.

2011년 11월 9일 수요일

드라마와 현실

1. 미국드라마 'How I Met Your Mother'에 빠져있다. 이제 시즌 6 절반 가량 보았구나. 현재 미국에서 시즌 7 방영중.
 'Friends'와 유사한 미국식 시트콤인데, 김병욱 감독의 하이킥 시리즈와 비교하자면, 더 캐쥬얼하고 전개가 빠르다. 대전에 있던 대학시절 'Friends'를 처음 보았을 때는 미국 문화가 우리와 참 다르구나 했었다. 그 뒤 본 'Gossip Girl' 등은 그보다 더 충격적이었고. 하지만 실제로 미국에 가서 본 미국 아이들은 'Gossip Girl'의 소녀들보다 훨씬 건전했고, 된장기도 없었다. 드라마는 드라마.
 지금은 서울에 살면서 요즘 세대를 좀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고나 할까(대전의 K모 대학 애들은 요즘 세대같지 않았다;;) 요즘은 전처럼 미드의 인물들이 우리나라 사람들과 크게 다르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가 많이 서구화된 것도 이유겠지.

 시트콤의 매력은 역시 인물에 있다. 이 시트콤의 주인공들은 모두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는데, 주인공 Ted는 자기 짝을 못찾았다는 컴플렉스가 강한 architectural nerd고, Robin은 Canadian 이방인에 남성에 대한 컴플렉스로 자립심이 강한 여자다. Barney는 생부를 모르고 자란 불우한 어린시절의 컴플렉스를 화려한 여성편력으로 푸는 인물이다. Marshall은 변호사인데 환경보호를 꿈꿨지만 투자은행 GNB에 취직했고 어릴 적 꿈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한다. Lilly는 유치원선생으로 절제없는 shopaholic에 시달린다;; 어딘가 부족하고 결핍된 인간군상이 보다 많은 공감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은 세계 어디서나 공통되겠지.

2. 'How I Met Your Mother'에는 매력적인 에피소드가 무척 많지만, 오늘은 시즌6 7편이 재밌었다.
 evil, destructive, money making corporation로 묘사되는 투자은행 GNB에서 대중홍보용 광고영상을 촬영하는데, Marshall이 'I care about making dreams come true.'란 멘트를 오글거려하면서 거절하는 장면이 있다. Marshall은 광고영상 속 멘트에 대해 'that line makes me sound like a hooker.'라고 말하는데 빵 터졌다. 정말 그렇다!!
 개인적으로 압구정, 강남 일대의 대중교통을 이용하다보면 숱하게 들리고, 보여지는 각종 성형외과, 치과의 광고에 솔직히 눈살이 찌푸려지곤 한다. 광고문구가 더 잘 기획되고 현란할수록 더욱 그렇다. 이는 광고가 지닌 속성(자본논리 외 다른 가치를 깡그리 무시하는)때문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론 솔직히 남일 같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개업을 생각하는 치과의사는 광고와 영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아무튼 나중에 개원을 해도 품위를 지키면서 어느정도의 성공도 이룰 수 있었으면 한다.
뭐, 사실 이미 내 hooker같은 프로필 사진이 학원 홈페이지에 올라있고, 팜플렛으로 배포되고 있다. 어쩌겠어. 현실과 이상 사이의 타협이지. 그래도 강의는 품위있게 할거다. 잘 될 수 있을까??

3. 강용석이 의원직 상실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진작에 제명되었어야 하는 인물이다. 성희롱 발언 이후의 행보가 더욱 어처구니가 없는데, 개인적으로 정신병이 없이 저런 언행을 하면서 얼굴을 들고 살 수 있나 의심스럽다. 처음에 서울 법대 학사, 하버드 법대 석사라는 근사한 학력과 도저히 매치가 안된다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나도 막상 내 주위에서 저 수준의 정신상태를 가진 사람을 드물지 않게 보아오긴 했다. 좀 우습다, 나도 저 학력에 선입견을 가지니 일반 사람들은 오죽하겠나. 학력과 사람의 수준이 놀랍도록 불일치할 수도 있다는 걸 모두들 기억해야만 한다.
 어찌보면 소크라테스나 아리스토텔레스가 무색한 샘인데, 뭐 학력은 배움의 피상(皮相)에 불과하니까.

하버드 경제학과 양극화

하버드 경제학
- 천진(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 연구원) 지음/최지희 옮김

 지난주에 결국 11월 강의도 개설이 되지 않으면서 학원 강의가 미뤄졌다. 교재 집필에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점점 집중력이 떨어지고, 반대급부로 생산적인 일에 대한 욕구가 커졌다. 공부 말이다. 그래서 12월까지는 독서를 열심히 해보기로 결심했다.

 대학원 생활 대부분을 철학 저서와 함께 했지만, 요즘의 관심사는 역시 경제와 금융이다. 제대로 된 경제 독서는 로버트 하일브로너의 '세속의 철학자들'과 네이버 캐스트 교양경제학이 전부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사실 상당히 많은 소득이 있었다.
 11월에는 저명한 경제학자들의 대표저서를 골라 읽어보고 싶었다. 일단 크루그먼의 '불황의 경제학'과 루비니의 '위기의 경제학', 그리고 이 책을 구입했다. 사실은 스티글리츠의 저서 중에 고르고 싶었는데 조금 충동적인 구매였고 1/3가량 읽은 지금, 결정에 대단히 만족한다.

 책은 하버드의 경제학과 교수인 맨큐, 서먼스, 팰드스타인 등의 경제학강의를 정리하고 재구성한 것이다. 위에 언급한 저서들 가운데 이미 읽은 크루그먼의 것과 비교하자면, 이 책은 보다 폭넓은 내용을 다루는 대신, 여러 주제로 엮인만큼 조금은 피상적이다. 크루그먼의 것은 일반대중도 성인이라면 어느정도 이해하기 쉬운 것에 반해 이것은 좀 더 어렵다. 무엇보다 이 책의 큰 매력은 다양한 이슈에 대한 대가들의 각기 다른 견해를 한꺼번에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2011년에 집필된 만큼, 최근의 다변하는 세계경제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포함된 점도 장점이다. 개인적으로 '불황의 경제학'은 2008년도 금융위기의 발발시점까지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었다.

 맨큐의 '경제학원론' 강의를 보면 얼마전 포스팅한 '버핏세'와 관련하여 이해를 풍부히 해줄 내용이 있다. 최근의 미국은 투자와 소비가 감소하여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많았는데, 이로 인해 공급주의 경제정책이 양극화를 심화시켰다는 비판이 있어왔다. 이는 신자유주의 전반에 걸친 비판으로 확산되었고, 우리나라도 이 영향 하에 이번에 소득세에 대한 논의가 고개를 든 것이다.
 여기서 맨큐는 양극화의 심화에 대해 네 가지의 원인을 들고 있다.
1) 산업화로 인해 일반노동자보다 기술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여 임금격차가 심화
2) 여성의 사회 참여가 늘면서 고소득 부부의 가계 소득이 큰 폭으로 증가함
3)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의 증가
4) 세계화로 인한 슈퍼스타 독점 효과 증가
 또한 소득세율의 인상이 생산성 저하로 실제 세수는 오히려 감소시킬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소득세율과 노동시간의 역(逆) 상관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제시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소득세율과 노동시간의 관계는 의구심을 가진다. 이보다 환경, 문화, 사회적 영향을 보다 크게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또한 노동시장의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해야하고, 충분한 대체재(더 짧은 노동시간의 고용 기업)가 존재해야만 할텐데 이 점도 의문이다. 가령 베트남은 개발도상국이지만 무더운 날씨로 인해 점심식사 시간을 2시간 가진다. 또 실제로 근무시간은 강력한 노조가 없는 한, 증가하는 것이 감소하는 것보다 쉽다.

 나는 서울에 강남/강북이라는 경계가 점점 선명해지는 과정 속에서 성장했다. 어린 시절에는 상상도 못할 차이를 요즈음 발견하며 신기하다. 특히 의식주 가운데 주(住)야말로 양극화의 꽃;;인데, 내가 돈을 잘 번다고 해도 혼자만의 힘으로 강남에 속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 진짜 심각한 문제점이다. 여기에는 계급의 고착과 중산층 이하의 좌절, 그리고 시한폭탄과 같은 가계부채가 있다.

 아무튼 오랫동안 우리나라의 소득세 구간은 바뀌지 않았고, 변화에 맞추어 재정비할 필요가 있어보이는데 이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 쉽지는 않은 것 같다.
 그리고 주식 좀 잘되었으면 좋겠군!!

2011년 11월 8일 화요일

김광진

 김광진은 더클래식 시절부터 팬이었다. 마법의 성도 좋았지만, 그 앨범에선 '송가', 다음 앨범에선 '여우야'가 너무 좋았다. 그 어린 나이에도 '여우야'가 10위권에도 들지 못하는 당시 가요톱10의 순위가 말도 안된다고 믿었던걸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조금 놀랍다. 나이를 먹어가며 TV 가요프로를 불신하고, 라디오를 들으며 음반판매순위 등 좀 더 신뢰할 수 있는 차트를 찾던 기억이 난다. 더클래식도 이런 생각의 형성에 조금은 기여를 했겠지. 어쨌든 그 시절 가요톱10에서 '여우야'보다 높은 순위에 랭크되었던 많은 곡들은 지금 잊혀졌고, '여우야'는 여전히 대중에게 사랑받고 있다.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더 듣는 음악이 다양해지고, 폭도 깊어졌다. 그러면서 어릴 적만큼 좋아하지 않게 된 뮤지션도 많았지만, 어린 시절보다 더욱 좋아하게 된 뮤지션도 많았다. 더클래식과 김광진은 후자였다. 어릴 적 느낌에도 한동준, 이승환, 이소라, 더클래식, 김광진 솔로앨범 등에 수록된 그의 곡들은 아주 예쁘고, 또 어딘가 앳된 동화같았다. 김광진의 동요스런 가창도 이런 느낌에 한몫을 했겠지만 곡에 깃든 맑고 건강한 감수성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금은 생각한다.

 이런 순수한 곡을 쓰는 김광진과 펀드매니저 김광진은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나이를 더 먹고 알게 된 김광진은, MBA 유학을 다녀온 1세대 금융전문가 중 한명이고 투자전문가로 상당한 성공을 이룬 인물이다. 80년대 후반에 MBA 유학을 다녀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선견지명도, 열정도 있었기에 가능한 선택이다. 아마 그 시절에 MBA는 아직 덜 알려졌고, 유학을 갈 기회는 좀 더 적었을 것이다. 반면, 유학 후 성공할 가능성은 좀 더 많았겠지. 그렇지만 단지 그것만으로 아무나 성공을 이룰 수는 없다. 최고의 명문을 나온 것도 아니고, 직장을 잡은 뒤로 철저히 자신의 실력으로 성공을 이룬 것이다.

 얼마 전에 김광진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고, 헷지펀드 회사를 차리고, 음반 작업도 병행하겠다고 말하는 인터뷰를 읽었다. 그런데 요즘 경제상황이 불확실하다보니 당장은 회사창업보다는 음반 작업 위주로 노선을 수정했다더라. 그리고 얼마전 시골의사 박경철 씨 후임으로 경제포커스 라디오프로의 DJ가 되었다.
 요즘 나에게 비중있는 sub로서 배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경제'분야의 좋은 프로그램이라 며칠 전부터 즐겨듣고 있다.

 흥미로운 이야기 하나. 투자분야는 확실한 전문성이 필요하지만 작곡은 노력하면 되는 것 같다는 인터뷰를 읽은 바가 있다. 음악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없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이리 말한 것 같은데, 범인들에게 희망이 되는 말이긴 하다.

마지막으로 김광진 1집의 안 알려진 곡. 故 유재하를 추모하는 곡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PCh6yEsE05Q&feature=fvst

너를 위로할 수가 없어
- 김광진

우리 만나진 못했지만 너의 음악을 들을 땐
마치 투명한 수채화를 보는 것만 같았어
어쩌면 이 세상은 너의 음악을 이해하기엔
너무나 어리거나 무딘지도 몰라
이렇게 티없는 하늘엔 너의 노래가 한없이 어울리는데
너의 아름다운 말은 내가 느끼는 그런 모습이야
내가 외로움에 싸여 있을 때
너의 노래는 나를 위로했지
이제 나의 노래를 부를 때가 되어도
나는 너를 위로할 수가 없어

블로깅


 내게 있어서 블로그는
1. 나를 표현하는 창구로서 활용된다.
2. 여러가지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는 법을 익힐 수 있다.
3. 내 신분을 덜 드러내고 이야기할 수 있다.
와 같은 장점을 지닌다.
 이들 가운데 1,2의 경우가 보편타당한 이유라면 3은 좀 삐딱한데, 솔직히 이것이 블로깅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내가 누구인지 정확히 밝히고 이야기하기 힘든 이슈들에 관해서도 덜 가식적으로 타인에게 털어놓을 수 있다는 점은 인터넷의 강력한 매력이다.

 어쨌든 요즘의 나는 유유자적하다. 지금 나는 통영에 있고, 오늘도 병원선을 타고 섬들을 돌다가 날씨가 안좋아서 조금 일찍 항구로 돌아왔다. 퇴근 후 짧게 헬스를 하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 나가서 고기를 구워먹고, 다같이 노래방에 갔다. 신나게 놀고는 지금 돌아온 상황.
 다양한 이슈에 관심은 많고, 생각도 다양하게 뻗어는 가는데, 한 군데에 머무르지를 못하는 것 같다. 블로그에 매일 포스팅을 하려는 압박감을 굳이 느낄 필요는 없겠지. 다만, 가급적 신변잡기식의 글보다는 타인과 나눌 수 있는 이야기를 적어가고 싶다.
아무튼 오늘 노래는 오랫만에 실컷 했다.

2011년 11월 5일 토요일

버핏세

http://media.daum.net/politics/assembly/view.html?cateid=1018&newsid=20111106052104845&p=yonhap&t__nil_news=uptxt&nil_id=2

 이 관계자는 "일단 큰 틀에서 소득세의 최고구간과 최고세율을 하나 더 두고 과표를 만들 때 증권소득과 이자소득 등도 모두 합산토록 하는 방식을 고려하고 있다"면서 "일률적 소득합산 과세시 다른 구간의 피해가 있을 수 있는 만큼 종합부동산세처럼 새로 신설하는 최고 구간에 대해서만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치적인 면에서 성공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워렌 버핏의 '버핏세'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미국이 가진 힘이 이런거구나 싶다. 사실 재정위기가 여러가지 면에서 전세계적인 이슈이지만, 한국이나 미국이나 소득세율은 이미 충분하다고 본다. 현 상황에서 개별 소비주체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소득세 인상은 공정하지 않고, 무엇보다 생산적이지 않다.
 허나 소득 불균형과 잉여자본의 축적, 그로 인한 양극화는 이제 더 이상 자본주의의 성공이란 면죄부를 받지 못한다. 양극화는 경제구조의 탄력성을 저해하고, 이는 세계경제가 회생하지 못하는데 큰 원인이 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최고구간 신설은 대단히 이치에 맞다고 본다. 혹자는 최고구간 증세로 얻어지는 세수가 미미하다지만, 그것은 반대논거로는 부족하다. 더 큰 그림으로 공정사회를 생각해야하지 않을까.
 또한 무엇보다 투자금융시장의 개혁이 필요할텐데 주식소득, 이자소득에 대한 증세 방안은 굉장히 선진적이라고 본다. 특히 거대자본이 숏으로 무리하게 투기하여 오늘날의 금융위기를 자초했다는 면에서 볼 때, 새로 신설하는 최고 구간에 대해서만 주식소득, 이자소득을 적용하는 방침은 대단히 온건하다. 물론 그 구체적인 내용이 가장 중요하고 어렵겠지.

 아무튼 큰 그림에서 상당히 진보적이고, 무려 한나라당;;이 추진한다는게 놀랍다. 민주주의의 위대함을 증명할 것인가. 얼마나 진정성있는지 차분히 지켜볼 작정이다. 사주팔자의 달인 이 선생이 말했듯이, 선거가 다가오기는 하나보다.

백인선호사상

 한국에서 애플의 아이폰4S가 타국에 비해 더 비싸게 판매된다고 한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2D&sid1=105&sid2=227&oid=092&aid=0001989748

'32GB 기준으로 아이폰4S 출고가는 미국 AT&T가 749달러(약 83만2천900원), 일본 소프트뱅크 5만7천600엔(약 81만9천400원) 등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와 비교해 미국 13.5%, 일본 15.5% 정도가 저렴한 것.'

 이만하면 큰 차이다. 한국에서 애플이 샤넬같은 대접을 받고 있는 모양이다.
 이를 애플이 한국 소비자를 우습게 안다고 비판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건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애플은 시장경제 원리 그대로 한국 소비자를 '고가전략'의 대상으로 규정한 것 뿐일거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다수의 명품들이 더욱 비싸고, 더욱 이기적으로 경영을 하는 것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가끔 나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외국(정확히는 서양)에 너무 경도되어 있는게 아닌가 싶다. 또한 외국 브랜드의 '고가전략'에 유난히 취약하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상류 계급에 대한 환상이 지나치게 강하다. 드라마를 보나, 명품시장을 보나.. 그리고 그만큼 하류 계급(주로 가난한 이, 못생긴 이, 동남아 등지의 이민자들이 하류로 규정된다)에 몰인정하다. 정말 꼴보기 싫다.

 과도한 경쟁과 재벌의 풍조, 거기다 저질 미디어의 결합이 이러한 현상을 생산해냈다고 본다. 소모적인 경쟁을 벌여도 계급 상승은 요원하고, 저 위에서 재벌들은 법과 제도를 발 밑에 두고 마음껏 부와 명예를 독점하는 현실이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었다. 재벌 경영과 CEO 경영의 장단점에 대하여 미국에서는 논란이라지만, 우리나라에선 글쎄.. 재벌 경영이 낳는 폐해는 눈에 보이는 기업의 실적만이 아니다. 부패하고 겸손하지 않은 재벌은 사회의 풍조에 큰 악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어쨌든 삼성은 엄청난 기업의 경쟁력과 해외에서의 위상에 비해, 우리나라에선 (적어도 평범한 사람들의 인식 속에선)다소 저평가받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삼성은 오늘날 가장 지독한 레드오션인 IT 분야에서 애플과 세계 최고를 겨루는 기업이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무한한 존경심을 받는데 반해, 이건희나 이재용은..OTL 그리고 이는 분명히 애플과 삼성의 브랜드 파워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에서 삼성은 일단 국산 기업이라는 점에서 이미 국내에서 애플에게 지고 들어간다. 애플vs삼성은 백인vs한국인으로 보여진다. 또 아마도 삼성과 그 '재벌' 경영진을 동일시하는 시선도 작용할거다. 애플vs삼성이 이번엔 애플vs재벌이 되는거다.

 어떤 점에선 재벌이 만든 사회 풍조에 의해서 그들의 기업이 (적어도 국내에서는)외국 기업에 비해 저평가를 받게 되는건 재미있는 아이러니같기도 하다.

2011년 11월 3일 목요일

낭만

버트런드 러셀은 낭만적인 이론가와 열정적 행동가의 면모를 모두 지니고 있다. 하지만 19세기에 태어나 20세기을 바라본 러셀의 삶을 고려하면 그가 낭만적인 학자에 가깝다는 걸 알 수 있다. 나는 이런 낭만적인 감성이 없었다면 러셀에게 그처럼 빠져들진 않았을거라고 생각한다. 크루그먼의 저서를 읽으며 러셀이 그리던 단일통화와 세계은행으로 구성된 국제사회주의 시대가 오늘날의 눈으로 바라봤을 때 얼마나 현실성없는 몽상인가 새삼 깨닫는다. 촘스키가 쓴 '러셀을 말하다.'라는 책을 서점에서 보았는데 이것도 이번 주에 사야지.

2011년 11월 2일 수요일

Scam

http://www.youtube.com/watch?v=N8ft3RUvZgE

 Jamiroquai의 앨범 가운데 The Return of The Space Cowboy는 최고다. 절정의 밀땅을 보여준다. Mr.Moon과 Scam을 들으며 베이스와 드럼 주자의 연주에 감화된다. 밴드에서 가장 멋있는 건 역시 리듬 파트같다. 보컬이 제일 멋이 없고.
 요즘 주식을 하는 재미에 빠져있다. 일희일비의 장이라 나같이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의 소일거리로 딱이네. 주식의 움직임을 바라보면 '인생은 한방'이라 생각하고 싶어진다. 시대의 변화에도 시간차, 온도차는 존재하는 법이니까 '인생은 타이밍' 정도의 정의는 되겠지.
 주식은 어쩌면 Scammer들의 놀이터다. 하지만 링크된 동영상은 Scam 이전 트랙인 Mr.Moon.

2011년 11월 1일 화요일

바나나케잌의 유혹

















1. 시대의 변화는 조용하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는새 곁으로 다가와 우리를 깜짝 놀래키곤 한다. 하지만 한편, 누구나 시대를 껴안고 살아가기에 아주 쉽게 느낄 수 있기도 한다.
 서점의 베스트셀러는 이미 시대의 변화를 말하고 있었다. 경제서적이 베스트셀러를 차지하는건 벌써 흔한 일이고 보다 통제된 금융, 고용률과 복지 및 후생이 주목받은 것도 서점에선 이미 꽤 된 일이다.

 정치권에서도 이제 이런 기사가 보수의 여왕 박근혜의 이름으로도 쓰여진다. 정치권이라도 반박자 차이일 뿐 결코 시대를 거스를 순 없다고 본다. 정치인은 결코 시대의 달콤한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보면, 여야할 것 없이 비슷한 토목정책을 들먹이며 경제성장을 부르짖던 과거 대선과 여야할 것 없이 고용과 복지, 상생을 부르짖을 차기 대선이 오버랩되면서 좀 재밌다.
 이렇게 보면 한나라당은 '경제성장'을 잘할 것이고 민주당은 '복지정책'을 잘할 것이라는 편견이 참 우스운데, 또 막상 나도 그런 사고방식에 무의식중에 많이 사로잡혀있다.

2. 오늘은 어머니 생신이다. 어린 시절에는 이런저런 귀여운 선물을 드렸던 기억이 있지만 최근에는 제대로 챙겨드린 적이 없었다. 올해는 예쁜 코트과 당근케잌을 사드렸다.
 나는 케잌을 무척 좋아한다. 나에게 케잌은 정말 달콤하고 기름져서 피할 수 없는 유혹이다. 당근케잌을 먹고나니 어제 고민했던 바나나케잌이 떠오른다. 다음에는 저걸 주문해볼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