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23일 화요일

착함이냐 운이냐



(스포일러 있습니다)
 영화 매치 포인트(match point)는 2005년도 작품이지만 Woody Allen에게 꽂혀있는 요즘에야 비로소 보게 되었다. 무엇보다 도입부가 인상깊었는데, 테니스의 매치 포인트 장면을 보여주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화자인 주인공은 말한다.

 "누군가 착함(good)보다는 운(lucky)이라 말한다면 인생을 깊이 통찰한 사람이다. 사람들은 인생의 대부분이 운에 좌우된다는 사실을 직면하길 두려워한다. 그런 생각에 골몰하면 미쳐버릴 지경이 된다. 시합에서 공이 네트를 건드리는 찰나 공은 넘어갈 수도 그냥 떨어질 수도 있다. 운만 좋으면 공은 넘어가고 당신이 이긴다. 그렇지 않으면 패배한다."

 주인공 크리스는 위 사실을 깨달은 사람이다. 그는 테니스를 했지만 실패의 위험이 큰 선수의 길을 택하지 않는다. 대신 테니스 강사가 되어 부유층 자제 톰을 가르치게 되고, 그와 매우 친한 사이가 된다. 톰의 여동생 클로에를 만나고, 동시에 톰의 약혼자 노라를 본 크리스는 강렬한 두 욕망을 마주한다. 클로에를 통해 보이는 신분상승에의 길, 그리고 노라에게 느끼는 강렬한 사랑이 그것이다. 그리고 물론, 크리스는 클로에를 택하고 둘은 결혼에 이른다.

 Woody Allen은 그의 작품들을 통해 세상의 부조리에 상처받는 개인을 말한다. 세상의 벽은 너무 높고 단단해, 개인은 소외된다. 크리스는 날 때부터 신분이 정해지는 사회구조를 깨달았다. 착함(good)이 운(lucky)을 갈음하지 못하는 세상은 답답하고, 불공평한 것이다. 바라는 만큼의 운을 타고나지 못한 크리스가 선수의 길보다 테니스 강사를 택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리고 노라보다 클로에를 택하는 것도 그러하다. 강렬한 사랑은 유혹적이지만, 사랑이 무언가를 보장해주던가? 사랑은 강렬한 만큼 위태롭다.

 클로에와 결혼한 이후, 성공가도를 달리던 크리스는 톰과 헤어진 노라를 다시 만나고, 또다시 강렬한 감정을 느낀다. 그리고 노라와 불륜을 시작하면서 크리스의 삶을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시작한다. 노라와의 불륜은 달콤했지만 관계가 깊어질수록 크리스의 삶은 위험해지고, 노라가 임신을 하면서 그는 결국 선택을 해야만 했다. 물론 그는 착함보다는 운에 자기의 삶을 맡긴다.

 클로에를 선택한 뒤 노라를 향한 욕망을 깨끗히 포기했다면 크리스의 삶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거다. 하지만 그는 자기의 욕망을 포기하지 못한다. 법, 도덕, 결혼의 책임감과 같은 사회적 울타리가 그의 욕망을 제어하는데 실패하는 이유는, 그가 애초에 사회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착함과 악함이라는 도덕률을 지시하는 것도 사회인데, 그것이 날 때부터 나에게 불공정하다면 내가 그에 헌신할 이유가 있겠나. 결국 홀로 고립된 크리스는 그래서 그리도 이기적이고 잔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동기들에게 자주하는 이야기가 있다. 언뜻 의사들은 돈도 잘 벌고, 물질적인 욕망에서 자유로울 것 같지만, 사실은 보통 사람들보다도 더 세속적인 욕망에 사로잡히기 쉽다. 왜냐하면 그들 대부분은 막상 젊은 날엔 부도 권력도 없지만, 가까운 곳에서 부와 권력을 목격하고, 맛보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이란 멀리 떨어진 막연한 것보다, 가까이서 목격한 구체적인 대상을 욕망하는 법이다. 그리고 그 부와 권력은 불합리하게 분배되는 듯 보인다.
 때문에 나는 주인공 크리스의 생각에 깊이 공감한다. 어쩌면 주인공 크리스도 테니스 강사를 하면서 숱하게 부와 권력을 지닌 이들을 목격했을 거다. 부조리를 느꼈을 것이고, 저들을 욕망했겠지.
  실제로 나는 크리스처럼 사는 이들을 꽤나 목격했다. 욕망을 일부 포기하면서 결혼을 했다는 점에서 현실적이고, 배가 부른 뒤 예술을 찾듯, 나중에야 불륜을 저지른다는 점에서 욕심이 많다. 크리스의 이기심은 도를 넘었다. 그의 소외된 자아는 자기의 작은 욕망에 머물러 세상을 향해 뻗어나가지 못했다. 오죽하면 사랑하는 노라와 자기의 아이, 죄없는 목격자마저도 자기 안위를 위해 무참히 살해할 수 있겠는가. 내가 착함보다 운을 앞세우면 이를 비난할 수 있겠나? 선하게 사는 것은 여전히 나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영화를 보고, 깊이 공감하면서, 나의 사회관계가 나에게 가지는 의미를 떠올린다. 너무나 크다.

2013년 4월 17일 수요일

현실과 낭만 사이

(스포일러 있습니다)

 Woody Allen의 영화를 좋아한다. 그의 영화는 주제가 뚜렷하고, 군더더기없이 이를 다룬다. 재기발랄함과 따뜻한 시선이 있다. 거대한 서사시보다는 유쾌한 단편집을 한토막 읽는 기분과 비슷한 것 같다. 내 취향이다.

1.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Vicky Cristina Barcelona)는 사랑이라는 주제를 현실과 낭만을 대비하며 다룬다.
 현실적인 성격의 비키와 낭만적인 성격의 크리스티나는 바르셀로나에 여행을 가서 매력적인 화가 후안 안토니오를 만난다. 비키는 안토니오의 매력에 마음을 빼앗기고, 여행을 마친 뒤에도 온전히 현실로 돌아오지 못한다. 크리스티나는 안토니오, 그의 전처 마리아와 동거를 하는 과정에서 사진작가로서 성장하게 된다. 하지만 낭만의 시간은 짧고, 크리스티나는 현실로 돌아올 때임을 깨닫는다. 비키 역시 안토니오를 잊지 못하고 그를 찾아가지만, 안토니오와 마리아의 다툼을 목격하곤 두려움에 압도되어 달아나버린다.

 감정은 요동친다. 격해졌다가 이내 가라앉기도 한다. 하나의 감정이 다른 감정으로 번지기도 한다. 사랑을 감정이라 한다면, 사랑은 지속되기 힘든 촛불과 같은 것이다. 가끔은 활활 타올라 모든 것을 불살라버릴 때도 있지만, 그럴수록 결국엔 한줌 재로만 남아 사그라질 따름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적인 성격의 비키는 말할 것도 없고, 낭만적인 성격의 크리스티나마저 결국은 제자리로 돌아오고 마는 것이다.

 그들이 돌아온 현실은 무엇일까. 그것은 각박한 스케쥴, 고층 빌딩, 빼곡한 일거리가 쌓여있는 미국의 도시일 것이고, 돈을 잘벌지만, 성적매력이 없는 비키의 남편일 것이다.
 긍정적인 측면을 보자. 미국의 도시는 그들이 바르셀로나로 휴가를 떠날 수 있는 수입과 삶의 터전을 제공했다. 비키의 남편은 능력있고 다정하다. 그와 함께면 감정의 들썩임은 덜할지라도, 따뜻한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


2.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에서 약혼녀 가족과 파리로 여행을 온 소설가 길은 현실과 낭만 사이에서 내적인 갈등을 한다.

 길은 미국에서 꽤 팔리는 시나리오 작가다. 예쁘고 부유한 약혼녀도 두고 있다. 하지만 길과 약혼녀의 관계는 다소 피상적이고, 그는 상업작품을 접고 순수문학을 하고 싶다. 그는 1920년대 파리를 황금시대로 여기는 몽상가이다.
 어느날 그는 파리의 밤거리를 산책하다가 환상적인 여행을 통해 1920년대 파리에 도착하고, 헤밍웨이, 피카소, 스캇, 달리 등과 교류한다. 그리고 헤밍웨이와 피카소의 연인인 아드리아나와 만나 사랑에 빠진다.
 둘은 또다시 환상적인 여행을 떠나서 아드리아나가 생각하는 황금시대인 1890년대로 도착한다. 아드리아나는 그곳에서 로트레크, 고갱 등을 만나고 다시 현실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통해 길은 낭만적인 과거는 불만족스런 현실로 인한 도피처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현실로 돌아온 길은 약혼녀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파리에 머무르며 새로운 삶과 사랑을 찾는다.


3. 지난 주에 얼마전 결혼한 친구와 부산 해운대로 1박 2일 여행을 다녀왔다. 아침에 리조트 창 밖에 보이는 바다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씨앗호떡, 스시, 아구찜, 슈크림 빵도 맛있었다. 늘 그렇듯 친구와 이성문제,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재미난 일화가 생각난다. 친구는 해운대의 집값이 서울보다 싸니까, 집을 마련해서 미녀를 꼬시기 서울보다 쉽다고 주장했다. 나는 해운대가 서울보다 집을 마련하기 3배 쉽더라도, 부산 미녀의 수가 서울의 1/3에 불과하므로 기대값은 3*1/3=1 동일하다고 응수했다. 친구는 정말 나다운 사고방식이라고 말하더라.

 사랑은 일종의 개시제(initiator)이며, 촉매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아무나 클레오파트라가, 양귀비가 될 수는 없다. 사랑하지 않고서 현실적인 계산만으로 맺어진 관계는 시작될 수도, 지속될 수도 없다. 하지만 낭만적인 감정을 현실보다 앞세워서도 안된다. 감정의 거품이 걷어지면 참담한 현실만이 남는다.
 그렇다면 현실과 낭만 사이 어디쯤에서 균형점을 잡아야만 할까. 영어를 잘하는 여자에 대한 환상을 내가 어느 지점에서 포기해야 할까? 예술을 하는 여자에 대한 환상은? 키가 큰 여자에 대한 선호를 굳이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 패션 센스에 대한 선호는 또 어떠한가?
 어디서도 답을 구할 수는 없는 것 같다. 그 우유부단한 몽상가 길도 황금시대로부터 현실로 돌아와, 약혼녀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선택을 해냈다. 길은 어떻게 그런 과감한 선택을 했을까? 또다시 답이 없는 고민에 빠진다.

2013년 3월 27일 수요일

버클리 주교와 정신적인 나무



 어떤 젊은이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신은 무척 신기하게 여기리라. 뜰 안에 아무도 없을 때, 거기 전과 다름없이 나무가 그냥 서 있는 것을 보고." 버클리가 대답하기를 "친애하는 선생이여. 당신이 놀라는 것이 이상하구려. 나는 언제나 이 뜰 안에 있어요. 그리고 이 나무는 계속해서 존재하겠지. 당신의 충성스러운 신이 언제나 이 나무를 보고 있으므로." - 버트런드 러셀, '서양철학사'

 철저한 관념론자는 우리가 느끼고 보는 모든 것들이 단지 우리의 정신 안에서만 존재한다고 한다. 저기 어느 언덕 위에 나무가 한 그루 있다고 하자. 우리는 이 나무를 바라볼 수 있고, 그 때 나무는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가 이 나무를 바라보지 않는다면 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에 반대하는 이들은 몇 가지 재미있는 예를 드는데, 가령 그들에 의하면 관념론자는 정거장에 있을 때엔 기차의 바퀴를 볼 수 있지만, 기차 속에 들어가 앉은 다음엔 기차의 바퀴를 볼 수가 없다. 물론 우리의 상식은 승객들이 바퀴를 볼 때에 기차가 갑자기 나타나고, 보고 있지 않으면 갑자기 없어진다는 것을 인정치 않는다.

 버클리 주교는 관념론자이지만, 우리가 보지 않을 때에도 사물은 존재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 근거는 어디까지나 신이 모든 것을 지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이 존재하기에 사물은 존재한다. 그는 신을 바탕으로 물질의 존재를 부정하는 자신의 견해를 상식과 조화시키려 한다.

 이러한 그의 주장을 담은 저서가 '힐라스와 필로누스의 대화'이다. 여기서 힐라스는 상식을 대표하고, 필로누스는 버클리 자신이다. 저서에서 힐라스와 필로누스는 오감(五感)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과정에서 필로누스가 예시와 논증을 두루 사용하여 끝내 물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고 있다.
 힐라스와 필로누스는 감각 그 자체에 대해 의견이 일치된다. 우리가 느끼는 감각을 부정하면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아무 것도 남지 않는 법이다. 하지만 감각은 그 너머에 있는 실재 그 자체는 아니다. 내가 사과를 바라보고, 냄새를 맡고, 맛을 볼 수 있지만 그렇게 포착된 감각의 연합이 그 너머의 존재를 암시할 뿐, 사실상 우리가 느끼는 모든 것들은 정신 안에 있다. 필로누스는 말한다. "무엇이든지 직접 지각되는 것은 하나의 관념이다. 그런데 관념이 정신을 떠나서 존재할 수 있는가?" 그는 주장한다. "감각의 어떤 직접적인 대상이 비사고적인 실체 속에 있어야 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정신 밖에 있어야 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우리가 사물을 지각할 때, 사실은 사물 그 자체를 지각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감각만을 지각한다는 주장은 참이다. 하지만 버클리는 더 나아가 증명할 수 없는 것을 이미 증명한 것으로 간주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버클리의 주장은 '관념들은 정신 속에 있다.'와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은 근본적으로 단지 항진명제(恒眞命題)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가령 "모든 총각은 결혼하지 않은 남자이다."라는 명제를 보면, 이는 어느 면에서 보아도 참이지만 그 안에는 어떠한 새로운 사실도 담겨있지 않다. 동어반복과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버클리가 물질의 존재를 부정하는데 성공했다고 착각한 것은, '관념'이란 낱말에 대한 그의 실수 탓이다.
 버클리는 '감각하는 작용'과 '감각의 재료'를 구분하지 않는 오류를  범했다. 둘 모두를 '관념'으로 보았기에, 관념을 벗어난 사물의 존재를 부정한 것이다. 하지만 사실상 둘은 다르다. 감각하는 작용은 관념이라고 볼 수 있으나, 감각의 재료는 관념 밖에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가령 우리는 사과를 보고 붉은 빛깔을 느낄 수 있는데, 붉은 빛깔에 대한 감각이 우리의 마음 속에 일어났다고 해서 그 붉은 빛깔을 일으키는 재료가 우리 마음 속에 있다고 할 수는 없다. 그 재료는 분명히 우리 마음의 밖에서 일어날 수 있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어떤 사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결코 인식할수 없다."라는 명제를 보자. 이 명제도 흔히 생각해볼 수 있는 것으로, 우리의 판단을 혼란에 빠뜨리곤 한다. 이 명제는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반박하기 쉽지 않다. 이 명제를 엄밀히 분석하면, 여기서 첫 번째 사용된 '인식'이란 낱말이 두 번째 사용된 '인식'이란 낱말과 다른 의미로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이 명제를 해결하는 핵심이 된다. 첫 번째 '인식'은 지각을 의미하고, 두 번째 '인식'은 판단을 의미하는 것이다. 두 동음이의어를 인식하면 이 명제가 거짓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버클리가 '관념'이란 낱말을 사용할 때 '감각하는 작용'과 '감각의 재료'를 구분하지 않았던 것과 같은 오류이다.

 오늘 3월 27일은 나의 생일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시간이 점점 빨라져 가는데, 나의 '감각하는 작용'이 점점 빨라지는 탓인지, '감각의 재료'가 변하기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2013년 3월 24일 일요일

사랑의 민낯




 너무 오랜만의 포스팅이다. 두 가지 변명거리가 있는데, 우선 치과공부에 집중하면서 다른 서적이나 뉴스를 거의 읽지 않다보니 블로그에 할 말이 줄었고, 또한 보건소의 새 사업이 시작되면서 다른 시기보다 바쁘기도 했다. 물론 둘 다 핑계이다.
 특단의 조치로 한 달에 최소 3회 포스팅을 하기로 스스로에게 약속을 하려고 한다. 그러니까 이 글이 3월의 첫 포스팅이다.

 개인적으로 즐겨다니는 블로그가 몇 개 있는데 그 중 가장 독특한 블로그는 왠 역술인이 하는 블로그이다. 무려 6년 동안 거의 매일같이 새로운 글을 포스팅하는데, 자주 방문해서 아주 재미있게 읽고 있다.
 나는 역술을 믿지 않지만 역술인은 믿는다. 그 역술인이 긴 세월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상담하며 쌓은 막대한 경험을 믿는다는 말이다. 역술인들은 매일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을 듣고, 어떤 방식이든 해법을 제시해준다. 그리고 충실한 상담인들은 자주 재방문하여 그 예후를 추적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대단한 임상경험이고, 근본적으로 나같은 의사들이 매일같이 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물론 과학적인 근거가 전혀 없는 역술이 의학처럼 믿음직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를 토대로 해석을 하는 역술인 역시 그만큼 덜 신뢰해야 옳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의사는 병을 치료해주는 사람이고 의학적 지식이 꼭 필요하지만, 역술인은 삶에 대해 충고를 해주는 사람이다. 어쩌면 역술이라는 건 단지 부차적인 것이고, 그 사람의 특징과 문제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해법을 제시해주는 게 역술인이 하는 일이다. 역술인에게 필요한 능력은 근본적으로 훌륭한 멘토에게 필요한 능력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역술인이 막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을만큼 충분히 지혜롭다면, 그의 조언은 훌륭한 멘토의 조언과 마찬가지로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그 블로그의 역술인은 밤업소에 다니는 여성을 많이 상담한다더라. 당연히 다양한 남녀문제를 접하고 상담해온 모양이다. 남녀문제에 관한 한, 나름대로 상당한 전문가인 셈이다. 작년에는 친한 친구가 결혼을 고민할 무렵, 친구와 더불어 직접 그 사람을 방문한 적도 있다. 아주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서론이 길었다. 최근 그 블로그에서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한 아주 좋은 글을 읽었다. 허락없이 조금 옮겨볼까 한다.

 사랑은 시한부다. 아주 당연히 시간이 가면 마음이 달라진다. 마음이 달라진다고 해서 미안해하거나 욕하지 말거라.
 사랑은 조건부다. 조건없는 사랑을 하는 인간은 정신질환이 있다.
 사랑은 당연히 변한다. 변치않는 사랑은 집착이다. 사랑할 때 좋은 추억을 많이 쌓아야 한다. 나중에 파토나면 그래도 추억이라도 남는다.
 사랑과 미움은 손바닥과 같다. 사랑은 많이하고 자주하되, 변하면 깨끗이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미리 포기해도 좋다. 
 사랑은 팔자다. 달리 말하면 사랑도 체질이 있는 것이다. 사랑을 전혀 안하는 사람도 많다. 사랑은 아무에게나 오는 것이 절대 아니다.

 덧붙이고 싶은 말이 조금 있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2013년 2월 24일 일요일

예술에 대한 잡담



 어제는 도산공원 쪽 에르메스 매장에 있는 아뜰리에 에르메스에 가서 김영일 작가의 <귀한 사람들>전을 관람하고, 가야금 공연을 감상했다. 친한 누나가 김영일 작가의 팬이었고, 나로선 그 덕에 좋은 문화생활을 한 셈이다.
 김영일 작가는 본래 초상사진을 전문으로 하는 분으로, 잘은 모르지만 이 분야에서 대단한 분인가 보더라. 사진작가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다가, 20여년 전부터 우리 전통 음악에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 뒤로 카메라 외에 녹음기도 함께 들고 다니며, 우리 소리를 기록하고 널리 알리려 애써왔다고. 현재까지 70여종의 국악음반을 제작했고, 그 중에 정가악회 3집 '여창가곡'이라는 음반이 2011년 제 54회 미국 그래미 어워드에 국내음반 역사상 최초로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니 대단하다.

 에르메스 매장에 들어가 본 것도 처음이었고, 사진전도, 국악도 나에게 생소해서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개인적으로 사진이나 미술과 같은 예술분야에 대해서 꽤 전부터 품어온 의문이 몇 가지 있었다. 사진과 공연을 관람한 뒤에 매장을 나서니 다시금 의문이 피어올랐는데, 우연히도 어제 저녁에는 미술관 큐레이터를 하는 분과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있었다. 운 좋게도 그 분께 관련된 질문도 하고, 대화도 나누며, 의문을 조금은 해소할 수 있었네.

 이번 기회에 내가 가져왔던 의문들을 블로그에 풀고 해답을 찾아볼까 한다.


1. 나는 늘 뭐가 예술이고, 뭐가 좋은 그림인지, 좋은 사진인지 알 수가 없었다. 똑같은 붓자국도 피카소가 하면 예술이 되고, 내가 하면 장난이 되는 것처럼 여겨졌고, 그래서 지나치게 추상적이거나 상징적인 미술은 허영으로 생각되기도 했다.
 큐레이터 분은 이런 내 질문에 대해서, 미술가로서 피카소가 보낸 삶과 나의 삶이 다르고, 붓자국 하나에 담은 의미가 다르기 때문에 피카소의 붓자국은 예술이 될 수 있다고 답했다.
"피카소는 아주 어려운 그림도 그릴 수 있지만, 절제된 붓자국 하나를 그려낸 거에요. 보통 사람이 똑같은 붓자국을 그릴 수 있다고 해도, 그 둘을 같다고 말할 순 없죠."
 수긍이 가는 답이지만, 반박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지나온 삶이나, 담긴 의미같은 것은 눈에 보여지지도, 귀에 들리지도 않는 막연한 것이다. 나라고 아주 예술적인 의미를 붓자국에 담아내지 못하리라는 법이 어디있는가?
 그림 그 자체로(혹은 사진 그 자체로) 포착할 수 없다면, 왜곡되기도 쉽고, 객관성을 획득하기 힘든 것이다.

 나는 아주 복잡한 연주를 해낼 수 있는 프로연주자들이 들려주는 깔끔하고 절제된 연주에 깊은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확실히 더 복잡한 연주만이 음악의 정수는 아니다. 더 간단한 연주가 더 감동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차이란 관(람)객이 포착할 수 있어야만 할 것 같다. Steve Gadd이 쳤다는 이유만으로 특징없는 드럼연주가 명연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가만있자.. 그렇지만 과연 꼭 관(람)객이 포착할 수 있어야만 할까?


2. 내가 마지막으로 활동했던 밴드는 주로 카피곡을 연습했지만, 자작곡도 조금 썼다. 한 번은 스튜디오를 빌려서 밤새 자작곡을 녹음한 적이 있다. 녹음은 보통 리듬파트를 가장 먼저하고, 그 다음에 멜로디파트, 마지막으로 보컬 녹음을 한다. 녹음은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힘든 작업이다. 왜냐하면 악보대로 '정확히' 연주하는 것 자체가 대단히 힘든 것이기 때문이다. 좋은 연주자도 녹음을 하다보면 조금씩 리듬이나 음정이 엇나간다. 연주자에게 스튜디오 녹음은 음악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를 표현하는, 가장 숭고한 과정이다.

 지금도 기억나는 장면은, 처음에 드럼 연주를 녹음할 때였던 것 같다. 중간에 필인(feel-in) 연주를 녹음했는데, 연주가 정확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무식한) 나는 대체 어디가 틀렸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만큼 비 전공자에게는, 아니 전공자라고 해도 그 파트만 세심하게 귀기울여 듣지 않으면 틀렸는지 알 수 없는 연주였다. 그럼에도 드럼 연주를 녹음하던 친구는 연주를 다시 녹음하고 싶어했고, 신경이 온통 곤두서서는 두세 차례 반복해서 연주한 끝에 그 부분의 녹음을 끝낼 수 있었다.

 김영일 작가의 사진전에서 한편에는 필름으로 촬영된 초상사진이 걸려있었고, 다른 한편에는 디지털로 촬영된 초상사진이 걸려있었다. 작가는 필름 사진들을 찍기 위해 촬영된 국악인들과 인연을 맺고, 사진을 찍기까지 20여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반면, 디지털 사진을 찍기 위해 촬영된 국악인들은 페이스북으로 인연을 맺었고, 사진을 찍는데 불과 몇 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이러한 설명이 사진감상에 대한 새로운 흥미를 더해준 것은 맞다. 하지만 설명을 듣고 사진들을 바라봐도, 나는 전혀 필름 사진과 디지털 사진의 차이를 구별해낼 수 없었다. 솔직히 내가 구별하지 못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나는 왜 김영일 작가가 초상사진에 있어서 독보적인 위치에 올라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고, 아니 애초에 잘 찍은 사진이라는게 뭔지도 잘 모르겠더라.

 전에 음악에는 내재된 '가치'가 존재하고, 그것은 더 높은 소양을 갖추어야만 향유할 수 있다는 내용의 포스팅을 한 적이 있다.
 그렇다. 사진이나 미술도 그것을 풍부히 즐기려면 소양을 갖추어야만 한다. 어쩌면 내가 미술작품, 사진을 이해하지 못하고,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나 자신의 소양이 부족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삐딱하게 생각할게 아니라, 교양을 더 쌓아야 했던 것이다!
 또한 아무도 못 알아챌 수도 있는 작은 실수를 교정하고자 반복해서 연주를 녹음했던 드럼 연주자 친구가 그랬듯이, 예술에는 관(람)객이 포착하지 못한 것마저도 온전히 하려는 자기 수양의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예술은 자기 스스로를 담금질하는 미덕을 칭송한다. 예술이란 때로는 아주 사적인 것이다. 간혹 공감도 안되고, 허영과도 결합하는게 예술이다.


3. 가끔은 사진이나 미술은 부자들의 돈 놀음, 허영과 과시로 배를 불리는 예술이 아닌가 싶다. 음악은 좋은 곡이 만들어지면 그것을 기록하고 복사할 수 있고, 대중들이 쉽게 접할 수 있다. 복사품이라고 해도 음질만 좋으면 충분히 곡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합법적인 절차만 밟았다면) 명곡은 수없이 복사되어도 동일한 가치를 지니는 것 같다.
 그런데 미술이나 사진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누군가 고흐의 작품을 완벽하게 복제해도, 그 그림은 헐값에 팔린다. 반면, 고흐가 그린 원작은 상상할 수도 없는 거액에 팔린다. 내가 보기엔 복제품이라고 해도 충분히 작품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대체 왜 가격은 그렇게도 차이가 난단 말인가.
 원작에 붙는 막대한 프리미엄은 그것이 더 예술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희귀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나로선 명망있는 사진이나 미술은 사치품으로 생각되고, 정서적인 거부감이 드는 것이다.

 미술관 큐레이터는 나의 질문에 이렇게 답하더라. 배가 불러야 예술을 찾는 법이고, 예술은 당연히 옛날부터 권력과 돈을 좇아 왔다고. 음악도 희귀 음반 수집과 같은 사치시장이 존재한다고. 맞는 말이다. 아이돌 상품을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수출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국민인 내가, 음악이 사진이나 미술보다 자본에 덜 종속적이라고 주장하기는 힘들겠다.

 김영일 작가의 사진전이 하필 명품 중의 명품 에르메스의 매장에서 열린 것도, 실리적으론 좋은 선택이다. 사진전도, 국악음악도 부유층을 통해 전파되었을 때 그 파급력도 클 수 있고, 보통 사람들 사이의 평판도 좋아지는 법이다.


4. 공연은 가야금 연주였는데, '성금연류 긴 산조'라는 것이다. 김영일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산조 연주는 연주자가 평생에 딱 한 곡만 완성하게끔 되어있다. 또 서양음악과는 달리 반복되는 중심테마가 없는 것이 특징. 성금연류란 성금연이라는 선배 연주자의 유파(流派)라는 의미라고 한다. 제자가 선배를 선택하게 되어있어서, 제자가 선배의 음악을 존중할 수 없으면 그 이름을 물려받지 않는다고. 후대에 냉정하게 평가받는 음악이라니 살벌하기도 하고, 음악을 대하는 장인정신이 느껴졌다.
 국악연주를 집중해서 들은게 얼마만인가 싶다. 불협화음처럼 들리는 멜로디 진행이 자주 들려서 신기했고, 박자도 자주 바뀌는 변화무쌍한 곡이더라. 반복되는 테마도 발견하기 힘들고, 흐름을 알 수 없다보니 즉흥연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오랫만에 들어도 역시나 잘 모르겠고 어려웠지만 재미있게 감상했다.


5. 사진전에 온 부유층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남녀할 것없이 멋쟁이들뿐이더라. 개인적으로 남자가 패션모델처럼 잘입는 것은 '선을 넘은' 것처럼 생각되어서, 감상은 할 지언정 지향하지는 않는데, 다들 내 기준에서는 '선을 넘은' 멋쟁이들이었다. 양말까지도 범상치가 않더라.
 실내에서도 굳이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던 내 또래 관람객도 눈에 띄었는데, 이런 분들은 볼 때마다 신기하다.

2013년 2월 11일 월요일

자유주의자의 양심



 Paul Krugman의 뉴욕타임즈 칼럼 제목은 이 책의 원제와 같은 'the conscience of a liberal'이다. 이 책은 2007년도에 발행되었으나, 국내에는 2012년에 비로소 '새로운 미래를 말하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새로운 미래를 말하다'는 진보주의 정신이 가득한 책이다. 논리정연하게 미국의 경제, 정치, 사회가 겪어온 변화를 말하고,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분석한다.
 현재 미국 경제와 정치의 발전상을 기록하면 두 개의 그래프를 그릴 수 있다. 경제 그래프는 심했던 소득 격차가 어느 정도 줄었다가 다시 심하게 벌어짐을 보여준다. 정치 그래프는 공화당과 민주당의 양극화가 심해졌다가 초당적 제휴의 기미가 보이더니 다시 양극화가 초래된 모양새다. 결국 오늘날 미국은 1920년대 대공황(great depression)이전 만큼이나 정치, 경제적으로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이렇게 경제, 정치 그래프가 평행을 이루어 '춤'을 추는 원인은 무엇일까? 가능한 대답은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하나는 경제적 불평등이 춤을 주도한다는 것이다. 기술 발달과 세계화로 소득 격차가 자연히 심화되었고, 계층 간 격차의 확대가 정치적 양극화를 낳았다는 분석이다.
 다른 하나는 정치적 양극화가 주도한다는 것이다. 강력해진 우파 세력이 여러가지 방법으로 불평등을 심화했다.
 Krugman은 이 가운데 두 번째 대답이 정답이라고 말한다. 이의 근거로 4가지를 들고 있다.
1) 우선 불평등이 극심했던 도금 시대(gilded age)에서 비교적 평등한 제2차 세계 대전 전후 시대로의 변환은 결코 점진적이지 않았다. 계층 간 격차는 불과 몇 년 사이에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학자들은 이 시기를 대압착(great compression)이라고 부른다.
2) 최근 미국에서 불평등이 확대된 것은 1980년대부터인데, 1970년대부터 보수주의 운동이 일었고, 우파가 공화당을 차지했다. 즉, 정치적 양극화가 우선했고, 경제적 불평등이 그 뒤를 따랐다는 것이다.
3) 기술 발달이 고학력 노동자의 수요를 늘리고, 저학력 노동자의 수요를 줄여서 불평등을 초래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실제 고학력 미국인들 대부분의 수입은 증가하지 않았고, 극소수 엘리트 집단의 수입만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결국 제도와 규범, 정치적 환경이 시장의 힘보다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4) 기술 발달과 세계화가 원인었다면 모든 선진국에 영향을 주었어야 옳다. 그런데 미국만큼 불평등이 증가한 선진국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정치적으로도 선진국 가운데 미국만큼 우파로 돌아선 국가는 드문 것이다.

 Krugman은 더 나아가, 정치적 보수화의 가장 큰 원인으로 인종주의를 들고 있으며, 새로운 미래를 위해서 무엇보다 의료보험체계를 개혁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이후 obamacare로 어느정도 이 과제는 실현되어가고 있다)

 미국의 정치, 경제가 역사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왔는가 엿보는 것은 학창시절 역사 수업을 듣는 것처럼 재미있지만,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바라보며, 현재를 어떻게 살지 판단하는데에도 도움을 준다. 우리에게 인종차별과 냉전, 테러는 없지만, 대신 북한이 존재하고, 반미와 친일이 존재하며, 영남과 호남이라는 지역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시장이 불평등을 심화했고, 극소수 엘리트들은 능력에 걸맞는 부를 보상받았을 뿐이라는 말은, 책임은 회피하고, 영광과 혜택은 누리려는 거짓된 주장이다.
 합리적인 진보주의자로서 객관적인 증거와 논리적인 분석을 확보하려면 읽어볼만한 책이다.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역사를 굉장히 좋아하는 소년이었는데, 보편적인 고교과정을 밟지 않다보니,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내 지식은 굉장히 얕다. 좋은 한국 근현대사 저서를 추천해달라고 페이스북에 적었더니 강만길, 박태균, 강준만 등의 책이 추천되더라. 읽어봐야지 싶네.

2013년 2월 9일 토요일

알면 알수록



1. 나는 지인들 사이에서는 뭔가 당연히 '알 법한' 것들을 잘 모르기로 조금 명성이 높다. 가령 작년에야 비로소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가 무엇인지 알았고, 청와대가 광화문 근처에 있다는걸 알았다. (전에는 국회의사당 근처에 있겠거니 했다) 레 미제라블의 내용도 장발장이 빵을 훔쳐서 감옥에 간다는 것밖에 몰랐다. 그 밖에 도서관 에티켓을 전혀 모른다거나 아무튼 여러가지 몰랐던 것들이 많지만, 최근에 새로이 알게 된 것들 중 가장 흥미로운 게 바로 패션이다.
 이십대 후반이 되도록 중고등학교 시절에 산 옷이나, 형이 산 옷을 같이 입고 살았다. 그런데 지인들이 패션에 워낙 관심이 많아서 최근 백화점을 자주 드나들며, 이런저런 훈육(?)을 받아서 많이 배웠다. 적당한 소비습관만 뒷받침된다면 이런 관심사도 삶을 재미있게 만들 수 있는 것 같다. 위 드라마같은 경우에도, 오랫만에 틀어보니 전에는 안 보이던 배우들의 패션이 눈에 확 들어오더라. 다들 참 옷을 잘도 입는다.

 옷에 전보다 관심을 가지게 되니 길거리를 걸으며 사람들을 보아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사람들의 새로운 면모, 감춰진 개성을 발견하게 된다. 어떤 옷은 그 사람에 대해 풍부한 정보를 주기도 한다. Malcolm Gladwell도 저서 '블링크'에서 비슷한 말을 하더라. 때로는 어떤 사람을 알려면 일주일에 2번씩 가지는 식사보다, 30분 간 그 사람의 방을 엿보는게 더 효과적이라고. 방에 온통 아웃도어 브랜드의 옷들이 널부러져 있다면? 그 사람은 아마 활동적인 취미를 가지고 있으며, 정리정돈은 서툰 사람일거다. 마찬가지로 어떤 이의 바지 끝단과 소매 끝단이 아주 잘 맞고, 구두가 늘 깨끗이 닦여있다면? 그 사람을 알아채는데 의례적인 대화보다 몇 배는 정확한 정보가 아닌가.
 문득 미술이나 건축에 대한 조예가 깊은 친구를 사귀고 싶다. 주변에 없고, 나 자신도 그다지 아는 바가 없는데, 아마 내가 모르는 정보와 새로운 시각을 많이 제공해주지 않을까?

2. 아는만큼 보인다. 패션이야 요즘에 조금 배웠지만, 음악은 전부터 남보다 풍부하게 즐겨온 분야이다. 많은 음악을 듣기도 했지만, 밴드활동을 했었기 때문에 또 다른 관점과 시야를 가질 수 있다. 우선 악기의 소리를 구별할 수 있고, 연주에 대해서도 조금은 이해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앙상블을 듣는 감각이 있다. 이건 어느 한 악기만 홀로 연주해온, 합주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결코 가질 수 없는 감각이다. 아무튼 이런 드문 경험이 음악을 보다 입체적으로, 생생히 들을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듣는 취향이 밴드구성의 음악에 쏠리는 건 단점같기도 하네.

 어쨌든 스타벅스는 Steely Dan과 Donald Fagen의 재즈록을 주구장창 틀어대고, 얼마 전 삼성동 현대백화점에선 Lee Ritenour의 Bahia Funk가 들리더라. 엊그제 한 카페에선 Bill Withers의 Lovely Day가 흘러나왔다. 아, 그리고 방송에서 소개하는 음악들을 보면 김구라는 진정한 메탈빠임이 틀림없다.

 이런 소소한 것들도 분명 내가 음악을 들어온 덕분에 알아채고, 즐길 수 있는 것들이다. 이십대를 돌이켜보면, 밴드활동에 퍼부은 시간만큼 쓸데없이 낭비한 시간도 없는 것 같다. 참, 뭔 짓을 그리 했나 싶다. 스물세살 때였던 거 같은데, 덧없다는 느낌에 대한 고민을 늘어놓았더니
한 선배가 '쓸데없이 낭비하는 시간이 인생에서 가장 값진거야.'라는 말을 해줬었다. 참 맞는 말이다. 시간 낭비를 더 마음껏 하려고 고생도 하며 사는 거 아니겠어. 그 선배는 대학을 졸업하고 버클리 음대로 유학을 갔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뭐할까 문득 궁금하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용기있는 사람이다 싶네.

 이번 포스팅도 별로 쓸모가 없으니, 좋은 음악이라도 담자. Steely Dan의 재즈록 넘버 'Kid Charlemag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