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9일 토요일

알면 알수록



1. 나는 지인들 사이에서는 뭔가 당연히 '알 법한' 것들을 잘 모르기로 조금 명성이 높다. 가령 작년에야 비로소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가 무엇인지 알았고, 청와대가 광화문 근처에 있다는걸 알았다. (전에는 국회의사당 근처에 있겠거니 했다) 레 미제라블의 내용도 장발장이 빵을 훔쳐서 감옥에 간다는 것밖에 몰랐다. 그 밖에 도서관 에티켓을 전혀 모른다거나 아무튼 여러가지 몰랐던 것들이 많지만, 최근에 새로이 알게 된 것들 중 가장 흥미로운 게 바로 패션이다.
 이십대 후반이 되도록 중고등학교 시절에 산 옷이나, 형이 산 옷을 같이 입고 살았다. 그런데 지인들이 패션에 워낙 관심이 많아서 최근 백화점을 자주 드나들며, 이런저런 훈육(?)을 받아서 많이 배웠다. 적당한 소비습관만 뒷받침된다면 이런 관심사도 삶을 재미있게 만들 수 있는 것 같다. 위 드라마같은 경우에도, 오랫만에 틀어보니 전에는 안 보이던 배우들의 패션이 눈에 확 들어오더라. 다들 참 옷을 잘도 입는다.

 옷에 전보다 관심을 가지게 되니 길거리를 걸으며 사람들을 보아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사람들의 새로운 면모, 감춰진 개성을 발견하게 된다. 어떤 옷은 그 사람에 대해 풍부한 정보를 주기도 한다. Malcolm Gladwell도 저서 '블링크'에서 비슷한 말을 하더라. 때로는 어떤 사람을 알려면 일주일에 2번씩 가지는 식사보다, 30분 간 그 사람의 방을 엿보는게 더 효과적이라고. 방에 온통 아웃도어 브랜드의 옷들이 널부러져 있다면? 그 사람은 아마 활동적인 취미를 가지고 있으며, 정리정돈은 서툰 사람일거다. 마찬가지로 어떤 이의 바지 끝단과 소매 끝단이 아주 잘 맞고, 구두가 늘 깨끗이 닦여있다면? 그 사람을 알아채는데 의례적인 대화보다 몇 배는 정확한 정보가 아닌가.
 문득 미술이나 건축에 대한 조예가 깊은 친구를 사귀고 싶다. 주변에 없고, 나 자신도 그다지 아는 바가 없는데, 아마 내가 모르는 정보와 새로운 시각을 많이 제공해주지 않을까?

2. 아는만큼 보인다. 패션이야 요즘에 조금 배웠지만, 음악은 전부터 남보다 풍부하게 즐겨온 분야이다. 많은 음악을 듣기도 했지만, 밴드활동을 했었기 때문에 또 다른 관점과 시야를 가질 수 있다. 우선 악기의 소리를 구별할 수 있고, 연주에 대해서도 조금은 이해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앙상블을 듣는 감각이 있다. 이건 어느 한 악기만 홀로 연주해온, 합주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결코 가질 수 없는 감각이다. 아무튼 이런 드문 경험이 음악을 보다 입체적으로, 생생히 들을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듣는 취향이 밴드구성의 음악에 쏠리는 건 단점같기도 하네.

 어쨌든 스타벅스는 Steely Dan과 Donald Fagen의 재즈록을 주구장창 틀어대고, 얼마 전 삼성동 현대백화점에선 Lee Ritenour의 Bahia Funk가 들리더라. 엊그제 한 카페에선 Bill Withers의 Lovely Day가 흘러나왔다. 아, 그리고 방송에서 소개하는 음악들을 보면 김구라는 진정한 메탈빠임이 틀림없다.

 이런 소소한 것들도 분명 내가 음악을 들어온 덕분에 알아채고, 즐길 수 있는 것들이다. 이십대를 돌이켜보면, 밴드활동에 퍼부은 시간만큼 쓸데없이 낭비한 시간도 없는 것 같다. 참, 뭔 짓을 그리 했나 싶다. 스물세살 때였던 거 같은데, 덧없다는 느낌에 대한 고민을 늘어놓았더니
한 선배가 '쓸데없이 낭비하는 시간이 인생에서 가장 값진거야.'라는 말을 해줬었다. 참 맞는 말이다. 시간 낭비를 더 마음껏 하려고 고생도 하며 사는 거 아니겠어. 그 선배는 대학을 졸업하고 버클리 음대로 유학을 갔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뭐할까 문득 궁금하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용기있는 사람이다 싶네.

 이번 포스팅도 별로 쓸모가 없으니, 좋은 음악이라도 담자. Steely Dan의 재즈록 넘버 'Kid Charlemag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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