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14일 수요일

유익한 블로그들과 통일세



1. 최근 우리나라 세제의 문제점에 대해서 파워블로거이자 트위터리안인 indiz님의 아주 좋은 포스팅이 있었다. 링크하자.
 개인적으로 요즘의 정치, 경제 현황이나 다양한 이슈에 대해서 가장 큰 도움을 얻고있는 블로거를 두 명 꼽자면 Hubris님과 indiz님 두 분을 꼽을 수 있다. 외국에는 유료로 운영되는 블로그도 있다고 들었는데, 이 정도의 글들을 공짜로 접할 수 있는 건 큰 행운이다.
 두 분을 굳이 비교하자면, Hubris님은 좀 더 다듬어지고 논리정연한 글들이 많고, indiz님은 굉장히 재기발랄하고 신선한 시각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두 분 모두 글들이 읽기에 부담스럽지 않고 아주 재미있다.

 두 분 중 Hubris님의 블로그를 더 먼저 접했다. 주소는 www.seoul.blogspot.com
 그 때가 2년 전 병원선에서 근무할 때였다. 내가 이제 막 경제관련 서적들을 읽어나가던 시기였는데, 그간 몰랐던 새로운 시각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다. 병원선에서 하루종일 블로그 글들을 역주행했던 기억이 난다. 금융회사에서 일하는 트레이더이신데, 요즘은 전보다 금융권 이슈에 대한 포스팅이 늘었지만 다른 주제에 관해서도 재미있는 글들이 많다. 개인적으로 Hubris님은 삶의 수양적인 측면이랄까, 생각과 행동을 통제하고 환경에 대응하는 면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Hubris님의 시각 전반에 공감하는 편이지만, 생각이 조금 달랐던 지점도 있다. 두 가지 정도가 지금 기억이 나는데, 1) 하나는 면접을 보는 인턴사원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였고, 2) 다른 하나는 책에 실렸던 교육 제도에 관한 생각이다.
 음.. 그렇지만 1)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2)도 블로그에서 여러 번 밝힌 바 있어서 또 언급할 필요는 없어보이네. 패스!
 indiz님은 좀 더 나중에 알게 되었다. 주소는 www.blog.naver.com/indizio
 아마도 estima님의 트위터를 통해 처음 알게 된 것 같은데, 블로그에 재미있는 글들이 너무 많았다. 경제부 기자이신 거 같은데, 사회와 경제 전반에 대해 신선한 시각이 많다. 통통 튀는듯한 재기발랄함이 있다. Hubris님의 글들은 searching이 힘든데, 이분은 그렇지 않으니 링크를 조금 하련다.
 나는 특히 기부공제 제도의 부당함에 대한 지적, 출산율 저하에 대한 입장, 어린이도 투표권이 필요하다는 주장, 주주자본주의 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글 등에 가장 공감했던 것 같다.
 이 분은 워낙에 논쟁적인 주장도 거침없이 하는 편이라, 위 글들의 경우는 상당히 공감했지만 가끔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화두를 던지는 능력이 참 대단한 거 같다.


2. 문득 기억이 나는데, indiz님의 글 가운데 통일세에 대한 글은 개인적으로 생각이 달랐던 것 같다. 우선 링크한다. 이건 좀 길게 이야기를 해보자.
 음, 이명박 정부 말에 통일세를 걷자는 주장이 불거져 나온 적이 있다. 이와 관련된 indiz님의 주장을 허락없이 조금만 옮겨오려고 한다.

 만일 정부가 통일세로 100조 원을 전국민들로부터 미리 걷는다고 가정하자. 언뜻보면 국민들의 재산이 100조 원 어치 줄어들었다거나 혹은 우리나라 경제가 100조 원만큼 쭈그러들었다고 생각되겠지만, 사실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돈이 줄어들어도 우리나라가 생산하는 상품이나 서비스의 양에는 변화가 없다. 단지, 100조 원 만큼의 돈이 장부상 정부로 흡수되어진 것 뿐이다. 즉 우리나라에 유통되는 통화가 100조 원만큼 줄어든 것에 불과하다. 100조 원만큼의 디플레이션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마찬가지로, 그 모아둔 100조 원을 풀기 시작한다고 해서 그 만큼의 없던 가치(시멘트, 인부의 노동)가 생겨나지는 않는다. 다만 100조 원 만큼의 통화가 장부상 생겨날 뿐이고 이는 곧 100조 원만큼의 인플레이션과 마찬가지다.
 즉, 굳이 통일세를 걷는 수고를 하지 않고, 그냥 나중에 통일이 되었을 때 한국은행 인쇄소에서 돈을 찍어다가 뿌려도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 어떤 방법이던 어차피 인플레이션은 불가피하다. 사실 통념과는 다르게 통일세를 걷었다가 푸는 것 보다, 그냥 한국은행에서 돈을 찍어내서 뿌리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또다른 포스팅에는 이런 글도 있다.

 통일세, 그러니까 한국정부가 발행하는 돈을 한국정부가 모아놓아서 미래의 지출을 대비하자는 것은, 엔씨소프트 김택진 사장이 "앞으로 리니지 확장판 나오면 아덴이 많이 필요할테니 지금부터 게이머들에게 세금을 부과하자"라고 하는 것과 똑같은 발상입니다.

 indiz님의 주장은 결국 '화폐란 국가의 신용일 뿐 가치창출의 수단이 아니다. 정부가 얼마든지 화폐량을 조절할 수 있으므로 통일 전에 저장하는 행위는 의미가 없다.'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내 생각에 화폐란 '국가'의 신용이기에, 마음대로 늘리고 줄일 수 없다. 우리는 20세기에 버트런드 러셀이 꿈꾸던 '세계 정부' 속에 살고 있지 않다. 제대로 된 의미의 '세계은행'도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에는 수없이 많은 나라들이 각기 다른 정부를 구성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는 엔씨소프트가 아니고 원화도 아덴이 아닌 것이다. 또한 엔씨소프트는 정부와 은행이 한 몸인 일체형이지만, 우리 자본주의는 그렇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한국정부와 한국은행은 엄밀히 다르다. 정부는 은행처럼 무한정 돈을 찍어낼 수 없다.

 국가가 시장에 참여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재정정책, 다른 하나는 통화정책이다.
 이 중 한국은행이 통화를 늘리는 방법은 공개시장조작, 법정지불준비율 정책, 재할인율 정책 등이 있다. 이 가운데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은 사실상 장부상의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는다.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 같은 화폐가치가 통화정책의 효과로 발생할 뿐이다.
 반면 정부의 재정정책은 조세와 재정지출로 나뉘는데, 둘 모두 화폐가치의 변화 뿐만 아니라 장부상의 변화를 일으킨다. 가령 재정지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 정부의 적자가 쌓이게 되고 정부는 신용을 의심받는다.
 정부는 자국 돈이라고 해서 함부로 사용해 빚을 지면 곤란해진다. 정부의 국채를 자국민들만 사는 것도 아니고, 자국민이라고 해서 국채를 마음대로 탕감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경제란 '신용'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신용이란 게  참 애매해서, 어쩔 때는 기괴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가령 유럽위기 당시의 그리스는 빚 따위는 디폴트(default)해버리겠다고 주변국들을 협박하기도 했다. 별 문제없던 나라를 외국인들이 갑자기 의심해서 경제위기로 몰아넣기도 한다. 97년도에 우리나라도 그런 식으로 금융위기를 겪기도 했다.

 통일이 이루어지면 아마도 외국인의 자본 이탈과 한은의 팽창정책이 동시에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것이다. 팽창정책은 앞서 언급한 여러가지 통화정책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아마도 정부는 재정지출을 대폭 확대하여 아주 공격적으로 다양한 사업에 참여하고, 경기부양에 나설 것이다.
 통화정책은 일반적으로 느리게 반영되고, 예측불가능성이 크다. 반면 정부의 재정정책은 일단 계획이 수립되면 즉각적이고, 보다 통제가능하다.
 정부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이북 사람들에게 복지를 제공하기도 하고, 특별 고용을 유도하여 이들을 자본주의에 걸맞게 재교육시키고, 이북에 기반시설을 확충해야만 한다. 이러한 통제된 지출은 정부의 주도없이 한국은행의 통화정책만으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 결과 정부는 막대한 적자를 짊어지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통일세는 필요하다. 이것이 과거 독일의 경우처럼 통일이 이루어진 이후에 이뤄져도 되는지, 미리부터 통일 예산을 배정해서 축적해야 하는지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행과 정부는 분명히 다르고, 정부의 적자는 대단히 특수한 경우 외에는 결국 갚아야만 한다.

 내 생각에 indiz님은 국가 간의 신용, 정부/은행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 실수를 한 것 같다. 음. 아무튼 내 생각은 이렇다.


3. 매일 꿀을 빠는(?) 공중보건의 생활도 벌써 끝이 보인다. 내년 4월까지니까 8개월이 남았구나. 초기에는 지긋지긋하던 병원에서 해방되서, 마음껏 내 삶을 설계하리라 다짐했었다. 그러다가 나도 알고보니 자기통제력이 부족하구나 깨닫기도 하고, 좋은 시스템에 속했을 때 삶이 더 효율적일 수도 있다는 점을 배우기도 했다. 첫 해에는 병원선을 탔고, 나머지 두 해는 경기도 가평에서 보내고 있다. 시간이 많을 때 할 수 있는 것을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회가 될 때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눠보려 했다.
 Hubris님이 책을 출간했을 때는 강연회에 참석했다. 뒤풀이 때 치킨도 얻어먹었다. 직접 본 Hubris님은 날씬하고 단단해보이는, 글에서 느껴지는 그대로의 분이었다. indiz님도 직접 보고 싶었는데 아직은 인연이 없었다. 이따금 블로그에 '번개 모집'이란 글이 올라오던데 계속 타이밍이 안맞더라. 다른 좋은 블로그도 많다. 전에 언급한 적이 있는 역술인 블로그도 있고(이 분도 실제로 만나봤다), 요리 블로그도, 최근에 발견한 변호사님 블로그도 재미있다. 요즘에는 대학 후배가 신혼생활과 각종 여행일기를 블로그에 올려서 네이버 메인에 뜨기도 하더라. 아, 고등학교 동창 여자애는 트위터 등에서 꽤나 유명인사가 되어 있더라. 나랑 같은 써클이었는데.. 아무튼 재미난 세상이다. 내 블로그는 점점 사양의 길로.. 흑..

p.s : 사진은 아띠제의 브런치 메뉴. 아띠제가 의외로 요리들도 괜찮다. 브런치보다는 샌드위치가 가격 대 성능비가 좋은 것 같더라.

(본글에 indiz님이 답변을 달아주셨다. 음, 독일처럼 통일 후에 통일세를 추가로 걷고 팽창정책을 쓰는 방법이 가장 효율적이지 않나 생각되네. 재정건전성도 중요하지만, 통일 자체가 예측불가능한 것인데 이를 굳이 세금으로 대비할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도 든다.)

2013년 8월 13일 화요일

짧은 글 토막


 날씨가 굉장히 무덥다. 햇빛도 강렬한데 무엇보다 습해서 숨이 막힐 정도다. 난 더위를 굉장히 많이 타고, 땀도 많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자주 걷던 예전에는 여름엔 하루 이상 옷을 입을 수가 없었다. 매일같이 옷이 땀에 흠뻑 젖었기 때문에.. 자동차 덕분에 그래도 전보다 편안하게 다니는 것 같다. 차가 있어서 너무 다행이다.

1. 정치권에 여러가지 문제가 많았고, 무엇보다 최근 세제개편안으로 시끄럽다. 하지만 그 전에도 중요한 사건이 비교적 조용하게 지나갔으니, 그게 바로 일감몰아주기 규제법 개정안이다. 6월 중순에 나왔던 관련 기사 중 하나를 링크한다.
 본래의 일감몰아주기 규제법이 대폭 축소되었다. 본래 재벌이 하는 모든 계열사와의 거래에 있어서 적용되었던 법이, 재계와 여당 몇몇 의원들의 반발로 인해 총수 일가나 총수 일가가 일정 이상의 지분을 가진 계열사가 포함된 경우에만 해당되게끔 바뀐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친인척 명의로 총수가 계열사를 만들거나 하면 규제에서 빠져나갈 수 있으며, 일정 이상의 지분이라는 것도 제대로 된 기준을 설정하기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그 뿐이 아니라, 몇몇 예외 조항까지 만들어졌다. 효율성, 긴급성, 보완성 등 회사에 상당한 이익이 되는 경우를 예외로 인정하겠다는데, 대체 효율성, 긴급성, 보완성을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모호해 보인다. 결과적으로 재계가 책임을 피해가기 아주 쉬워진게 아닐까.

2. 외국자본에 취약한 우리나라의 금융시장 구조에 대해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외환시장은 그 규모가 작아서 거래가 몰릴 경우에는 거래처리가 굉장히 지연된다고 한다. 그래서 원화를 팔려고 기다리던 중에 이미 원화가격이 추가로 하락하여 손해를 보는 경우도 많다고. 결과적으로 외국인들이 늦으면 손해를 본다는 인식이 있어서 외국인의 수급이 오버슈팅(overshooting)되는 경향이 생긴다.
 시장의 규모나 개방성 등은 조정이 쉽지 않을거다. 외환시장을 좀 더 효율화해서 우리나라의 금융시장이 가진 문제점을 개선할 수는 없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교양 수준의 경제학 지식을 쌓아왔고, 요즘은 시간나는 틈틈히 수식과 그래프로 이루어진 내용도 공부하려고 한다. 살면서 나름대로 이것저것 다양한 분야의 경험을 쌓아왔다. 하지만 각 분야의 종사자들만큼 전문성을 가지기는 힘든 것 같다. 어떤 분야는 타고난 재능이 모라자고, 어떤 분야는 투자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또 어떤 분야는 그 현장성때문에 관련종사자가 아니고선 따라갈 수가 없다.

 일감몰아주기 규제법의 경우에도 그 큰 그림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법으로 짜여져 적용이 될 때 어떤 결과를 낳을지, 세세한 항목에 있어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기 참 어렵다. 최근의 개정안 역시 '후퇴'로 보는 시선 못지않게, '현실화'로 지지하는 의견도 만만찮다.
 외환시장의 규모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다. 내가 직접 외환시장에 종사하지 않고서 저러한 디테일한 사실을 깨닫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사람의 직업이 중요하다고들 하나보다. 내 직업은 나의 경험에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직업이 내가 경험할 수 있는 세계를 규정짓고, 이후의 나를 형성해갈 것이다. 점점 내 직업이 가진 경험의 한계에 갇혀버릴 것 같아서 조금 걱정이 될 때가 있다. 아직은 벗어나려고 바둥거리고 있는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p.s : 사진은 학동사거리에 있는 베트남식 음식점 '라우라우'의 월남쌈. 지금껏 먹어본 월남쌈 중에 최고였다. 가격도 저렴하고, 양도 많고, 맛도 있고. 경험하지 않고선 이 맛을 알 수 없겠지..

2013년 7월 17일 수요일

상처입은 장기말


1. 'Sympathy for the Luddites'는 Paul Krugman의 칼럼 중 최근 가장 마음에 들어온 글이다. 내가 이 칼럼을 페이스북에 링크한지 얼마되지 않아 NewsPeppermint에서도 이 글을 번역했더라. 역시 링크한다.
 경제학에 대해서 제반 지식을 쌓아가면서 리카도의 무역 이론을 처음 접했을 때 의아했던 기억이 있다. 노동자가 장기의 장기말처럼, 바둑의 바둑알처럼 저리 쉽게 한 산업에서 다른 산업으로 옮겨갈 수 있을까.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받는 고통은 왜 경제학 이론에서 거론되지 않는 것일까.
 마찬가지로 혁신은 인류를 진보하게 하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개인은 상처입는다. 그 상처는 개인의 삶에서 영영 치유되지 못할만큼 깊을 때도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이 상처입은 것은 그들의 탓이 아니다.

 뭐 그렇다. 결국 이전 포스팅과 같은 맥락의 이야기를 하게 된다. 성공도, 실패도, 온전히 내 탓이 아님을 깨닫게 될 때 결국 진보주의로 머리와 가슴이 향한다.
 정치가 참으로 중요한데, 오늘은 별안간 국가기록원에 대화록이 없다니 대체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

2. 오늘 읽은 칼럼 중에는 'Defining Prosperity Down'이 좋았다. Paul Krugman이 10년 전 저서 '기대감소의 시대'에서 한 이야기와 같은 맥락인데, 오늘날의 우리나라 현실도 너무나 잘 반영하는 이야기가 아닌가 한다.
 칼럼에서 지적했듯, 선거의 결과는 결국 '변화의 정도'에 좌우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지금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더' 기대할 줄 모른다는 뜻이다.
 냉소주의가 만연한 사회가 싫다. 더러운 정치는 원래 그런 것이고, 궁핍한 경제환경도 원래 그런 것이 되는 사회가 싫다. 원래 그런 것이 되는 순간, 당연한 권리를 빼앗긴다. '덜' 기대하고 살아가게 되버린다.

 관사의 밤은 포근하다. 오랫만에 운동을 격렬히 했다. 내일은 조금 쉬엄쉬엄 보내는 것도 좋겠다.

2013년 7월 13일 토요일

제비뽑기와 분배의 정의 2



 오늘 절친한 친구의 결혼식 축가를 했다. 이번 달에만 두 번째 축가였다. 친구의 소중한 기억의 일부로 기억된다는 건 참 보람있는 일이다. 가사를 새겨듣는 친구의 표정이 기억에 남는다. 행복하기를 바란다.

 어제 블로그에 포스팅한 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다지 새로운 내용도 아니면서, 다양한 생각의 줄기를 정돈하지 못하고 산만하게 늘어놓았다. 그래도 조회수가 몇 십이 나오는데, 형편없는 글로 오시는 분들 시간을 뺏는 것 같아서 부끄럽다.
 어제의 글을 지우고 새로 쓸까도 생각해보았지만, 그보다는 생각을 정돈하여 추가로 글을 작성하는 것이 나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어제 이야기한 교육 이야기는 내가 블로그에서 여러번 이야기한 주제이다. 이전 포스팅들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로스쿨 제도는 실패했나? 2) 문재인의 고용정책과 교육정책

1. SAT는 학업 성취도와 상관관계를 가진다. 그러나 절대적인 기준이 되기엔 표준 편차가 크다. 특히 SAT만을 기준으로 학생을 선발한다면, 작은 점수 차이로 많은 학생들이 갈리기 때문에 더 나은 학생이 기회를 잃을 수 있다. 그러나 1) 다른 복잡한 선발 방식을 도입하면 기득권층이 더 유리해지는 경향이 있다. 애초에 SAT가 도입된 배경이 그것이다. 한편, 2) SAT로 인한 학업 성취도를 인정하더라도, 그마저도 기득권층이 유리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유전적, 환경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논의는 유전적인 불평등과 환경적인 불평등을 각각 어디까지 인정하는 사회가 바람직한가 하는 주제로 확장될 수 있다. Michael Sandel 교수는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John Rawls의 '무지의 장막'을 근거로, 환경적인 불평등은 축소하고, 유전적인 불평등 역시 그것이 사회의 전체적인 행복을 증진시키는 데에 한하여 인정하자는 주장을 소개한 바 있다. 나도 이 점에 동의한다.)

 수능의 경우, 우리나라의 입시에서 SAT보다 더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므로 부작용도 더 크다. 한 두 문제의 실수 때문에 입학이 가능한 대학이 확 달라지게 되는 것은 그다지 공정해보이지 않는다. 다른 다양한 선발 방식이 도입되는 것을 일부 인정하게 되는 이유이다. 그러나 미국의 사례와 마찬가지의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을 경계해야만 한다.
 사법고시와 같은 전문 시험마저도, (수능보다는 낫더라도) 법조인으로서 요구되는 모든 능력을 제대로 평가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결국 선발을 하는 당사자의 입장에서 보면,
1) 나중에 성공할 사람을 뽑거나, 2) 현재의 능력을 더 정확히 가늠하는 수 밖에 없는데, 1)을 중시하면 기득권에 더욱 유리하다. 좋은 배경만큼 막강한 성공요인은 없기 때문이다. 2)를 중시하면 앞서 언급했듯이 현재의 능력을 정확히 가늠하기 어렵다는 문제에 봉착한다.

 결국 선발 제도의 목적을 1) 우수 인재 선발에만 두게 되면, 한계가 명확하다. 더 나아가 2) 계층 간 이동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확대해야만 한다.
 SAT나 수능, 사법고시와 같은 다양한 선발 제도를 위 1),2) 두 기준으로 평가하면, 보다 다양한 계층의 우수한 인재들이 좋은 학교에 진학하고 좋은 인재로 성장하여 사회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2. 공교육의 부실이 사교육 시장을 키운 것은 아니다. 사교육은 시험 제도가 존재하면 형성되는 특성이 있다. 사교육은 학생 집단을 '솎아낼 때' 발생한다. 입시에서의 경쟁이 사교육의 발생원인이고, 이는 근본적으로 제로섬 게임이므로 공교육이 강화된다고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공교육에서 교육의 효율성을 위해 특목고 제도와 같은 차등 교육을 실시하고 있기에 발생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공교육의 효율성 추구가 사교육이 성장할 토양을 제공한 것이다.
 그러므로 공교육의 부실이 사교육 시장을 키운 것이 아니라, 사교육 시장이 팽창해서 오늘날 공교육이 소외되었다는 것이 원인과 결과를 맞게 분석한 것이다.

 이 주제는 내 수준에서 이 정도면 되었다. 이제 다른 주제로. 사진은 경리단길의 샌드위치 집 '뽀르게따'의 사진. 개인적으로 요즘 경리단길이 참 매력적인 거 같다. 다른 블로그에서 긁어 편집한 사진이라 죄송하다. 블로그에 올릴 사진을 직접 찍고 다녀야하나..

2013년 7월 12일 금요일

제비뽑기와 분배의 정의



1. 지난 주말에 대형로펌에 근무하는 변호사 분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김앤장을 창업한 두 명의 변호사 중에 장 변호사는 은퇴했지만, 김 변호사는 아직도 근무를 한다고 한다. 그는 70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일을 할 때면 번쩍이는 천재성을 보여준다고.
 그런데 그 김 변호사의 아들도 사법고시를 패스하지는 못해서, 여러번 낙방한 끝에 지금은 미국에서 로스쿨을 졸업하고 법조인이 되었다고 한다. 김앤장 창업자의 아들도 사법고시를 패스하지 못하면 김앤장을 물려받을 수 없는 것이다. 사법고시 제도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사례로 동료들 사이에서 회자된다고.

 과거 로스쿨 제도와 사법고시 제도에 대해 지인들과 의견을 나누고 블로그에 포스팅을 하기도 했다. 과거에는 로스쿨 제도를 옹호하는 입장에 가까웠지만, 요즘은 비판하는 쪽으로 입장이 바뀌었다.

2. 흔히들 수능이나 사법고시 같은 시험 제도를 옹호하는 이들은 미국에서 SAT가 도입된 역사적 배경을 짚는다. SAT가 도입되기 이전에는 각 학교의 GPA를 동일하게 비교할 수가 없었고, 학생들의 성적을 표준화할 수 없었기에 각종 부정을 통해 기득권층이 상류 대학에 합격하기가 유리했다. 때문에 보다 단순하고 표준화된 기준을 가지고 학생들을 평가하기 위해서 도입된 시험이 SAT이다. 결국 SAT는 학생들의 성취도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하지만 실제로 SAT점수가 학생의 성취도에 대한 참된 기준이 될 수 있을지는 많은 의심을 받아왔다. 객관식20% 주관식80%의 시험과 객관식80% 주관식20%의 시험은 그 결과가 아주 다를 수 있다. 시험이 서술형이라면 또 어떨까? SAT가 표준화는 시킬 수 있을지언정 공정한 평가라는 근거는 어디있는가?

 아마도 SAT는 일반적인 지적 능력과 어느 정도의 상관관계를 가질 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을 가늠할 기준은 될 수 없다. 수능도 그런 점에서는 SAT와 비슷한 장점과 한계를 가질 것이다.
 보다 전문적이라곤 해도 사법고시 역시 비슷한 문제점을 가진다. 어쩌면 사법고시 점수와 법률적 지식은 높은 상관관계를 가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후의 성취는 또 어떠한가. 사법고시 점수가 고시생들의 미래 가능성까지 평가할 수 있을까? 사법고시 점수와 법조인으로서의 성취를 분석해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우리는 결코 다른 이를 정확히 평가할 수 없고, 그들의 미래 가능성은 더더욱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3. 미국의 대학들은 차츰 SAT의 비중을 줄였다. 위에 언급한 SAT의 한계가 많든 적든 이의 근거가 되었다. 조기 입학 제도 등의 다른 전형이 도입됐다. 미국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소수 집단 우대정책 등이 도입되었고, 이 역시 SAT의 권위를 약화했다. 여러가지 전형들은 대학 입시에 각기 다른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전체적으로 종합해 본 결과는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여전히 기득권층이 명문대에 입학하기 쉬웠다. 2010년도에 나온 관련 기사를 링크한다.

 요약하자면, 각 대학들은 조기 입학 제도와 같은 방법으로 SAT의 비중을 줄여 더 많은 부유층을 합격시키고 있으며, SAT 자체마저도 사실은 빈부격차와 강한 상관관계를 갖는다는 것이다. 2010년도 SAT 성적을 따져보면 최저 소득 계층과 최상류층 간격은 SAT 논술(critical reasoning)에서 130점, 수학에서 80점, 에세이에서 70점씩 차이가 났다. 아마도 유전적인 요인과 환경적인 요인이 아울러져 이러한 결과를 나타내는 것 같다.

4. 선발 제도의 목적을 우수 인재 선발에만 두는 건 사실상 교육의 양극화를 용인하고 묵인하는 것이다. 어느 학생의 능력이 보다 우수한지 분명히 골라내기가  어렵다면? 당연히 더 배경이 좋은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 대학의 입장에선 유리하다. 배경만큼 학생의 성공가능성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척도란 없는 것이다. 그들은 대학에 많은 기부금을 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방식이 좋아보이지 않는다.

 선발 제도의 목적을 1) 우수 인재 선발과 함께 2) 계층 간 이동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확대하면 어떨까. 지금껏 우리 사회는 늘 우수 학생을 선별하는 것만이 입학 제도의 본래 목적이라 생각해왔다. 하지만 다양한 방식의 입학 제도는 사실상 기득권층에게 유리하고, 단순화된 시험 제도마저도 학생들을 올바르게 평가하지는 못한다.
 우리가 우수한 이를 가릴만한 도구를 가지고 있지 않음을 인정한다면, 선발 제도는 제비뽑기와 같은 성격을 지녔음을 인정하고, 오히려 기회의 분배에 좀 더 방점을 두는게 좋지 않을까?


5. 오랫만에 긴 글을 쓰려니 힘이 든다. 다양한 사례들이 머리 속에 떠오른다. 형이 MBA를 준비할 때 나에게 해 준 이야기인데, essay가 아주 중요한데, 이를 대신 써주는 업체가 있다고 한다. 글로벌한 업체인데 우리 돈으로 1500만원인가 든다고. 재미있게도 정말 그 업체에 essay를 맡기면 합격률이 상승한다고 한다. 기가 막힌 일이다.
 요즘 운전하면서 '나는 꼽사리다.'를 뒤늦게 듣는다. 어제는 사교육 편을 들었다. 인상깊었던 몇 가지.
 1) 공교육의 부실이 사교육을 키운 것은 아니다. 사교육 시장은 하위50%가 아닌, 상위50% 학생들에 집중되어 있다. 그들은 '더' 잘하기 위해 경쟁한다. 사교육 시장이 팽창해서 공교육은 소외되었다. 결국 사교육이 공교육 부실의 원인이다.
 2) 시험 제도가 존재하면 사교육 시장은 형성된다. 우리나라에 비해 사교육 시장이 훨씬 작은 미국도 SAT나 각종 전문 시험은 사교육 시장이 존재한다.

6. 오늘의 내용을 통하여 삶의 규율을 세우자면 아마 다음과 같을 것이다.
 시험에 합격했다고 너무 기뻐할 일도 아니고, 떨어졌다고 너무 좌절할 일도 아니다. 물론 합격했으면 자랑스러워 할 만하고, 떨어졌다면 반성해야만 한다.
 시험 제도에 대해 합리적으로 고민한 끝에 나오는 도덕적 결론이 아주 건전하고 실용적이라 좋은 것 같다. 아, 사진은 내 방이다.

2013년 7월 11일 목요일

근황




 하바코시나(Habacocina)는 스페인어로 빙수라는 뜻이라고 한다. 최근 신사역 근처에 생긴 빙수전문 카페의 이름이다.  사장님이 대학원 동기, 고교 선배의 절친이라니 나랑 알게 모르게 인연(?)이 깊다. 지난 주에 처음 방문했는데, 팥빙수가 아주 맛있었고, 인테리어도 좋았다. 무엇보다 카페의 시그니처가 참 매력적이더라. 흑인의 감성이 느껴지는 그림인데, 스페인어 이름과도 멋지게 어울린다.
 완연한 여름이다. 여름은 빙수의 계절이다. 빙수는 우유 얼음에 통팥이 역시 제일이다.


 블로그를 쉰 지난 한 달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우선 집이 경기도 용인으로 이사를 갔다. 10년 간 성북구에 살았고, 20년 이상 강북에서 살았다. 박원순 시장님의 품을 떠나, 김문수 도지사님의 통치를 받게 되었네.
 새로 지어진 단지라서 건물도 새 것이고, 공원도 잘 되어있고 무척 좋다. 서울과 멀어진 게 흠이라면 흠이지만, 부모님 두 분이서 노년을 보내시기에는 이만한 곳이 없을듯. 내 방도 마음에 든다 하하.

 우리나라도 지난 한 달간 너무나 박진감 넘치게 돌아갔고, 지금도 정치권은 연일 홈런이다. 매일이 놀라움의 연속인 것 같아.

 '가을방학 - 근황' 아름다운 곡이다.

2013년 6월 17일 월요일

정제되지 않은 잡담



1. '디어 클라우드'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밴드다. 이 팀이 처음 알려질 당시, 서울예전 출신들이 모여서 브릿팝 스타일의 록음악을 한다고 해서 화제였다. 서울예전 출신들은 펑크나 퓨전재즈를 연주하는게 보통이라 테크니컬한 연주와는 거리가 있는 브릿팝을 한다는 게 신선하게 느껴졌다.
 당시 한 지인은 이 팀의 1집을 '그냥 가요'라며 폄하했었다. 하지만 난 이 팀의 곡들을 아주 좋아했다. 보컬이 대단히 매력적이었고, 곡도 아름다웠다. 벌써 3집까지 앨범을 내고, 최근에 두 번째 EP앨범이 나온 모양이다. 유튜브를 통해서 전곡을 들어보았다. 지난 3집 때 팀의 음악이 무르익었다고 느꼈는데, 이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게 느껴진다.
 요즘 라디오 방송 출연도 활발한 것 같고, 보컬은 황금시간대에 공중파 방송을 타기도 하더라. 좀 더 알려지고, 좀 더 성공했으면.



2. 어릴 때는 서태지를 좋아했다. 서태지가 은퇴한 뒤론 패닉의 이적이 두 번째 영웅이었다. 패닉 2집 '밑'을 소풍날 버스에서 틀고는, 노래가 괴상하다고 항의하는 친구들을 속으로 비웃기도 했었다. 언젠가부터 TV 가요프로의 순위를 믿지않았다. 더클래식의 여우야도, 패닉의 UFO도 10위 권에 들지 못했다. 내가 생각하는 '진짜'들은 이상하게 가요프로에서 과소평가되는 것 같았다. 밴드음악에 빠진 뒤로는 악기 연주소리가 작게 믹싱된 가요앨범들은 모두 싸구려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예전에 '아소토 유니온'의 리더였던 김반장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한국 대중음악사의 100대 명반에 든 그들의 명반을 내기까지, 김반장과 멤버들은 늘 흑인음악이 최고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뿐이 아니라, 다른 음악은 모두 쓰레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나는 지금껏 모범생스러운 커리어를 쌓아왔지만, 그 안에서 늘 스스로를 반항아로 규정지었다. 제멋대로 행동하면서도 당당해서, 방종을 합리화하려 궤변을 짜내기도 했다. 철이 들은건지, 귀가 열린건지 요즘은 편견이 많이 줄었다. 이제 나에게 '그냥 가요'란 폄하가 아니라, 색깔이 되었다. 요즘은 사람들에게 반듯하다거나 어른들이 좋아할 스타일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대학원 동기들이 들으면 재미있어할 이야기다. 내가 반듯하다니.
 세월이 흐른만큼, 나도 변한다. 다시 스무살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하는건 너무 이른걸까.


3. 자주 만나는 지인이 모교 병원에서 수련을 받고 있는데, 얼마 전에 요즘 인턴생활을 하고있는 후배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 분이 간호사로 큰 병원에서 꽤 오랫동안 근무를 하다가 일을 그만두고, 전문대학원 시험에 응시해서 후배로 들어왔다고 하는 이야기였다. 비록 분야는 다르지만 간호사가 치과의사로 커리어를 바꾼 셈이라 놀랍게 생각되었다. 직장을 관두는 결정을 내리는 것도, 이후에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도, 교수님들과 면접을 치루는 과정도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간호사를 관두게 된 사연이 특히 재미있다. 한달인가를 꼬박 힘들게 일하던 시기가 있었다고 한다. 늦은 밤에 퇴근해서 잠이 너무 부족한 상태로 몽롱하게 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가는데
운전을 하면서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고속도로 중앙난간을 들이받아 차가 뒤집힐만큼 큰 사고가 났다고. 이런 큰 사고에도 후배는 이마만 조금 찢어지고 전혀 다치지 않았다. 당시 의사는 잠들어 버렸던 덕에 안 다친거라고 하더랜다. 어쨌든 그렇게 큰 사고를 당했으니 당연히 몸조리를 위해 며칠 쉬려고 했는데, 왠걸 병원에서는 네가 사고가 난 건 잘 알겠으니 내일부터 출근해라 뭐 이랬다고. 그래서 때려친다고 사직서를 내고 나와서 전문대학원 시험에 응시해서 지금 치과의사가 되었으니 그야말로 전화위복이라고 해야하나.
 참 요즘 갑을 관계가 사회적 이슈인데, 제대로 을의 경험담을 들은 셈이다.


4. 한동안 학원 강사도 했었고, 요즘도 짬짬이 수험생이나 대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공중보건의를 하면서 다양한 삶을 살아온 환자들을 대하는 즐거움을 조금이나마 배웠다면, 여러 사람들을 가르치는 경험도 스펙트럼은 다를지언정 비슷한 즐거움을 나에게 가르쳐줬다.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사업가 남편을 둔 아주머니도 가르쳐봤고, 큰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 아저씨, 학교 선생님을 때려치고 의사를 준비하는 아저씨도 있었다. 외국 대학을 다니는 유학생들도 꽤 가르쳤다. 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외국에 나가있고, 미국인이 되려고 애쓰는지 몰랐었다. 아무튼 대학생들도 과외받는게 요즘의 한국식 교육이다.

 문득 기억이 나는데, 2년 전이었나 치과기공사 출신의 수험생을 과외한 적이 있었다. 치과기공사가 치과의사가 되기위해 도전하다니 놀랍게 생각했다. 당시에 이야기를 나눈 기억으로는, 치과위생사 중에도 두 분인가 치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는데 성공한 분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의사와 치과의사 사이에선 전문대학원 '출신'을 폄하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다양한 반대 이유가 있는데, 그 중엔 논리적인 내용도 있고 감정적인 내용도 있다. 현재 전문대학원 제도는 대부분 폐지되기로 결정되어 있다. 내가 전문대학원 제도의 혜택을 누린 사람이지만, 이 제도에 반대하는 많은 의견에 또한 동의한다는 점을 우선 밝힌다. 하지만 '출신'을 운운하는 비판에 대해서는 코웃음을 치는 입장임도 같이 밝히고 싶다.
 내가 치의학대학원에 입학한 첫 해, 한 노교수님은 수업 첫 날에 같은 과 교수님들을 소개하셨다. 소개 멘트가 어땠냐면,
"이 교수는 서울대 출신이야. 저 교수는 서울대 출신이 아니야. 쟤는 서울대 출신이야. 그런데 저기 쟤는 서울대 출신이 아니야."였다.
 이거 실화다. 웃기고 섬뜩하다는 건 아마 이런 걸 보고 하는 말일 것이다.
 수업시간에 뜬금없이 이런 말을 한 전공의도 있었다.
"너희들은 모두 다 나보다 멍청한 애들이야."
 참고로 그 전공의는 과학고 출신이 아니다. 뻔하게 과학고 썼다가 떨어진 놈일테니, 이 전공의는 평생 나보다 멍청한 사람이다. 푸하하.

 내가 가르쳤던 그 치과기공사가 결국 합격을 했는지 여부는 아쉽게도 모른다. 그는 초중고교 과정 동안 쌓아야만 하는 기초가 많이 부족했다. 하지만 막대한 과외비까지 들여가며 최선을 다했다. 그는 자기가 부족한 걸 잘 알았기 때문에 아주 겸손했다. 반면에 조금 속물적인 가치관은 치과의사로서 좋지 않을 것 같았다.
 그와 같은 시기에 가르쳤던 다른 한 수험생은 명문대를 나왔고, 부모님과 일가 친척이 의사인 좋은 집안의 자제였다. 하지만 내가 가르쳐 본 수험생들 가운데 손꼽히게 머리가 나빴다. 문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모조리 다 암기하는 식으로 공부를 하더라. 이 수험생은 분명히 합격했고 지금 모 의대를 다니고 있다. 의대나 치대 출신들은 모두 다 알겠지만, 저렇게 모조리 다 외우는 사람이 막상 이쪽 전공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는 경우도 많다. 어쩌면 저 의대에서 우수한 학생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지는 않을까.

 저 둘 가운데 누가 더 의사로서, 치과의사로서 적합한 인재일까? 대답이 쉽지 않다는 걸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출신'운운하는 사고방식보다는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으리라.

 오늘은 왠지 정제되지 않은 잡담을 늘어놓고 싶었다. 어쨌든 을들의 반격을 보는 건 참 감동적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