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12일 금요일
제비뽑기와 분배의 정의
1. 지난 주말에 대형로펌에 근무하는 변호사 분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김앤장을 창업한 두 명의 변호사 중에 장 변호사는 은퇴했지만, 김 변호사는 아직도 근무를 한다고 한다. 그는 70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일을 할 때면 번쩍이는 천재성을 보여준다고.
그런데 그 김 변호사의 아들도 사법고시를 패스하지는 못해서, 여러번 낙방한 끝에 지금은 미국에서 로스쿨을 졸업하고 법조인이 되었다고 한다. 김앤장 창업자의 아들도 사법고시를 패스하지 못하면 김앤장을 물려받을 수 없는 것이다. 사법고시 제도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사례로 동료들 사이에서 회자된다고.
과거 로스쿨 제도와 사법고시 제도에 대해 지인들과 의견을 나누고 블로그에 포스팅을 하기도 했다. 과거에는 로스쿨 제도를 옹호하는 입장에 가까웠지만, 요즘은 비판하는 쪽으로 입장이 바뀌었다.
2. 흔히들 수능이나 사법고시 같은 시험 제도를 옹호하는 이들은 미국에서 SAT가 도입된 역사적 배경을 짚는다. SAT가 도입되기 이전에는 각 학교의 GPA를 동일하게 비교할 수가 없었고, 학생들의 성적을 표준화할 수 없었기에 각종 부정을 통해 기득권층이 상류 대학에 합격하기가 유리했다. 때문에 보다 단순하고 표준화된 기준을 가지고 학생들을 평가하기 위해서 도입된 시험이 SAT이다. 결국 SAT는 학생들의 성취도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하지만 실제로 SAT점수가 학생의 성취도에 대한 참된 기준이 될 수 있을지는 많은 의심을 받아왔다. 객관식20% 주관식80%의 시험과 객관식80% 주관식20%의 시험은 그 결과가 아주 다를 수 있다. 시험이 서술형이라면 또 어떨까? SAT가 표준화는 시킬 수 있을지언정 공정한 평가라는 근거는 어디있는가?
아마도 SAT는 일반적인 지적 능력과 어느 정도의 상관관계를 가질 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을 가늠할 기준은 될 수 없다. 수능도 그런 점에서는 SAT와 비슷한 장점과 한계를 가질 것이다.
보다 전문적이라곤 해도 사법고시 역시 비슷한 문제점을 가진다. 어쩌면 사법고시 점수와 법률적 지식은 높은 상관관계를 가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후의 성취는 또 어떠한가. 사법고시 점수가 고시생들의 미래 가능성까지 평가할 수 있을까? 사법고시 점수와 법조인으로서의 성취를 분석해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우리는 결코 다른 이를 정확히 평가할 수 없고, 그들의 미래 가능성은 더더욱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3. 미국의 대학들은 차츰 SAT의 비중을 줄였다. 위에 언급한 SAT의 한계가 많든 적든 이의 근거가 되었다. 조기 입학 제도 등의 다른 전형이 도입됐다. 미국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소수 집단 우대정책 등이 도입되었고, 이 역시 SAT의 권위를 약화했다. 여러가지 전형들은 대학 입시에 각기 다른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전체적으로 종합해 본 결과는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여전히 기득권층이 명문대에 입학하기 쉬웠다. 2010년도에 나온 관련 기사를 링크한다.
요약하자면, 각 대학들은 조기 입학 제도와 같은 방법으로 SAT의 비중을 줄여 더 많은 부유층을 합격시키고 있으며, SAT 자체마저도 사실은 빈부격차와 강한 상관관계를 갖는다는 것이다. 2010년도 SAT 성적을 따져보면 최저 소득 계층과 최상류층 간격은 SAT 논술(critical reasoning)에서 130점, 수학에서 80점, 에세이에서 70점씩 차이가 났다. 아마도 유전적인 요인과 환경적인 요인이 아울러져 이러한 결과를 나타내는 것 같다.
4. 선발 제도의 목적을 우수 인재 선발에만 두는 건 사실상 교육의 양극화를 용인하고 묵인하는 것이다. 어느 학생의 능력이 보다 우수한지 분명히 골라내기가 어렵다면? 당연히 더 배경이 좋은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 대학의 입장에선 유리하다. 배경만큼 학생의 성공가능성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척도란 없는 것이다. 그들은 대학에 많은 기부금을 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방식이 좋아보이지 않는다.
선발 제도의 목적을 1) 우수 인재 선발과 함께 2) 계층 간 이동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확대하면 어떨까. 지금껏 우리 사회는 늘 우수 학생을 선별하는 것만이 입학 제도의 본래 목적이라 생각해왔다. 하지만 다양한 방식의 입학 제도는 사실상 기득권층에게 유리하고, 단순화된 시험 제도마저도 학생들을 올바르게 평가하지는 못한다.
우리가 우수한 이를 가릴만한 도구를 가지고 있지 않음을 인정한다면, 선발 제도는 제비뽑기와 같은 성격을 지녔음을 인정하고, 오히려 기회의 분배에 좀 더 방점을 두는게 좋지 않을까?
5. 오랫만에 긴 글을 쓰려니 힘이 든다. 다양한 사례들이 머리 속에 떠오른다. 형이 MBA를 준비할 때 나에게 해 준 이야기인데, essay가 아주 중요한데, 이를 대신 써주는 업체가 있다고 한다. 글로벌한 업체인데 우리 돈으로 1500만원인가 든다고. 재미있게도 정말 그 업체에 essay를 맡기면 합격률이 상승한다고 한다. 기가 막힌 일이다.
요즘 운전하면서 '나는 꼽사리다.'를 뒤늦게 듣는다. 어제는 사교육 편을 들었다. 인상깊었던 몇 가지.
1) 공교육의 부실이 사교육을 키운 것은 아니다. 사교육 시장은 하위50%가 아닌, 상위50% 학생들에 집중되어 있다. 그들은 '더' 잘하기 위해 경쟁한다. 사교육 시장이 팽창해서 공교육은 소외되었다. 결국 사교육이 공교육 부실의 원인이다.
2) 시험 제도가 존재하면 사교육 시장은 형성된다. 우리나라에 비해 사교육 시장이 훨씬 작은 미국도 SAT나 각종 전문 시험은 사교육 시장이 존재한다.
6. 오늘의 내용을 통하여 삶의 규율을 세우자면 아마 다음과 같을 것이다.
시험에 합격했다고 너무 기뻐할 일도 아니고, 떨어졌다고 너무 좌절할 일도 아니다. 물론 합격했으면 자랑스러워 할 만하고, 떨어졌다면 반성해야만 한다.
시험 제도에 대해 합리적으로 고민한 끝에 나오는 도덕적 결론이 아주 건전하고 실용적이라 좋은 것 같다. 아, 사진은 내 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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