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문과 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사실 내 인맥은 이과인으로 편중되어 있다. 그래서 문과인의 이슈도, 그들의 사고방식도, 그들의 문화도 궁금하다. 아무튼 이런저런 웹서핑을 하다보면, 문과인들 사이에 철학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을 비판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또한 어려운 글쓰기에 대한 비판도 접한 적이 있다. 둘다 공감이 간다.
1. 철학은 관념론이 우세하던 시절 이후로 점점 현실과 동떨어지기 시작했다. 데카르트의 제1원리가 코기토(cogito)를 강조한 이후부터 철학은 아(我)라는 주제에 심취했다. 여기에는 통일성과 명징함을 갖춘 철학을 완성하고자 하는 욕망도 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후의 철학자들은 주관적인 경험에 집중했지만, 흄은 자아 뿐만 아니라, 경험마저 미지의 영역으로 날려버린다. 흄이 철학에 가한 상처를 치료하고자 흄에 반박하려던 시도들은 번번히 실패했고, 철학자들은 감정에 호소하는 낭만과 비이성의 세계로 피신할 수 밖에 없었다.
감성의 철학이 사회에 미친 파괴적인 결과에 대항하고자, 다시금 이성을 중시하는 논리적 분석철학이 발전해왔지만, 이들은 현실에 대하여 이전 철학자들과 같은 영향력을 미치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버트런드 러셀도, 비트겐슈타인도 그들의 사회활동과 과학적 태도가 그들의 전문적인 철학보다 시대에 미친 영향력이 훨씬 큰 것이다.
대륙의 철학이 현실과 동떨어지는 동안, 영국의 철학은 로크의 사회계약론으로부터 공리주의에 이르기까지 늘 사회와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 인식에 대한 철학이 점점 사회란 존재를 모호하게 만들어가고 있는 마당에, 이는 조금 비합리적인 결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비합리성 덕분에 이들 철학은 건전함을 잃지 않았다. 영국의 철학은 신대륙을 발견하며, 새로운 희망과 사회발전의 꿈을 키워갔다. 벤담과 애덤 스미스가 똑같이 '이기적 인간'을 이야기했고, 공리주의와 자유시장경제가 더불어 탄생했다는 것, 요즘 미국에서 평등에 대한 욕구와 함께 롤스와 듀이가 다시금 부활하는 것을 보면 아(我)가 아닌, 사회에 주목하는 이들의 철학은 여전히 현실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철학사를 돌이켜보면, 철학이 살아있으려면 현실에 주목해야만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학술적인 성취를 과소평가해서는 안되지 않을까. 그러고보면 학계에 남아 이학을 연구하는 지인들이 참 많은데, 공학만 되도 조금은 낫지만 이학은 참 현실과 동떨어진 연구가 많다. 다들 더 좋은 학술지에 논문내려고 열심히들인데, 그들만의 리그같기도 하지만 그런 현실적인 목표마저 없으면 연구할 맛이 안나겠지. 현실과 밀고 당기기를 잘 해야만 하는 게 범생이들의 인생이다.
2. 글쓰기에 대하여 정말 좋은 책을 추천받은 적이 있는데 바보같이 잊어버렸다. 에릭 시걸의 글이었던 것 같은데 우리나라에서 판매되지는 않는 것 같네. 어쨌든 큰 줄기는 명징했다. 지나치게 긴 문장, 불필요하게 낯선 어휘가 가득한 글은 허식(虛飾)에 불과하다는 것.
좋은 글쓰기가 나의 인생에서 취미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는 힘들겠지만, 이왕이면 좋은 글을 쓰고 싶다. 위의 잣대를 적용했을 때, 내 글은 너무 부족하다. 특히 어제 포스팅이 무척 마음에 안드는데, 조금 친절하게 고쳐보았지만 쉽지않다. 마음에 들지가 않어. 쓸데없이 어렵게 쓰여진 책을 비난하는 것은 참 쉬웠는데 말이지.
나름 철학에 관심을 가지고 한동안 열심히 책도 읽고, 생각도 했었는데, 지나고보면 남은 건 블로그 몇 번 포스팅할 어치의 지식 뿐인 것도 같다. 요약하면 별 것도 아닌 내용들. 내가 너무 좋은 글을 쓴다면, 내 지식을 타인에게 거져 주는 셈이니 그런 점에선 부족한 글솜씨와 인기없는 블로그도 나쁘지 않구나. 이것도 현실과의 타협인 것 같다.
(2013.5.26 철학의 역사를 되짚는 견해가 바뀌어서 글을 새로이 고침)
(2013.5.26 철학의 역사를 되짚는 견해가 바뀌어서 글을 새로이 고침)
댓글 2개:
내용이 저한텐 쉽지 않은데 잘 읽히네요.
Sangl Yun/ 고맙습니다. 독자가 있다는 것에 기쁨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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