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2일 목요일
새해를 맞이하며
정신없는 연말이었다. 모든 모임이 쓸모있지도 않고, 모든 대화가 의미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좋아하는 이들과 함께라 반가웠고, 소중했다.
나를 힘들게 했던 환자문제가 정리가 되어가는 즈음, 복무 문제로 보건소 공무원 한 분과 마찰이 있다. 여러모로 반성하게 된다. 그간 스스로에게 무책임했다. 마치 행운의 여신이 항상 내 편이기라도 한 양.
이제 장비, 재료업체를 구해야하고, 인테리어 업체도 구해야한다. 진료준비는 물론이다. 할 일이 많다. 아, 그리고 부동산에 대해서 연초에 한 번쯤 포스팅을 하게 될 것 같다. 연초에도 블로그에 아예 손을 놓지는 않는 셈이다. 허허.
부끄럽게도 작년 한 해 동안의 독서량은 그다지 많지 못하다. 게다가 원래 난 이러는 스타일이 아닌데, 사놓고 안 읽은 책도 몇 권이 있다.
BBK의 배신/김경준 저/(주)비비케이북스
이번엔 다르다/케네스 로고프, 카르멘 라인하트 저/최재형, 박영란 역/다른세상 (중단)
기대감소의 시대/폴 크루그만 저/윤태경 역/황금사자
새로운 미래를 말하다/폴 크루그만 저/예상한 역/엘도라도
넛지/리츠더 탈러, 캐스 선스타인 저/안진환 역/리더스북 (중단)
모든 것의 가격/에두아르도 포터 저/손민중, 김홍래 역/김영사
김광진의 지키는 투자/김광진 저/중앙books
사라진 실패/신기주 저/인물과 사상사 (안 읽음)
죽음이란 무엇인가/셸리 케이건 저/박세연 역/엘도라도 (안 읽음)
민주주의와 교육 철학의 개조/존 듀이 저/김성숙 이귀학 역/동서문화사
자유주의와 사회적 실천/존 듀이 저/김진희 역/책세상
국가란 무엇인가/유시민 저/돌베게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말콤 글래드웰 저/김태훈 역/김영사
지금 당장 이 불황을 끝내라!/폴 크루그먼 저/박세연 역/엘도라도
촘스키, 세상의 권력을 말하다1,2/데이비드 바사미언 인터뷰/김용민 삽화, 강주헌 역/시대의창 (1권만 읽음)
종교와 과학/버트런드 러셀 저/김이선 역/동녘
과학의 미래/버트런드 러셀 저/석기용 역/열린책들
인기없는 에세이/버트런드 러셀 저/장성주 역/함께읽는책
런던통신 1931-1935/버트런드 러셀 저/송은경 역/사회평론
아들을 공부하라/데이비드 토마스, 스티븐 제임스 저/김양미 역/글담출판사
총 스물 한 권의 책을 구입하였고, 5권을 제대로 읽지 않았다. 물론 이유가 있는 경우도 있다.
'이번엔 다르다'의 경우, 비전공자인 내가 정독을 할 만한 내용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넛지'의 경우에도 지나치게 전문적이고 지루해서 다 읽을 가치를 못 느꼈다. 촘스키의 책도 마찬가지다. 네 권 모두 그다지 추천하지 못하겠다.
추천할 만한 책들을 골라보자. 폴 크루그만의 책들, 버트런드 러셀의 책들은 모두 강추한다. 김광진, 유시민의 책도 아주 좋아서 여러 번 다시 읽고 싶다.
작년 연말부터 여유시간에 치과 공부에 집중하고 있다. 올 한 해는 풍부한 독서를 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뭐, 가평에서 살다보면 밤에 지루할 때 오히려 더 독서에 열중하게 될 지도 모르지.
블로그 독자분들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p.s : 사진은 베키아앤누보. 한 때 자주 다니던 곳인데, 오랜만에 왔다. 여기 이탈리안 음식들 모두 참 훌륭하다. 값어치를 한다.
2013년 12월 9일 월요일
잠시 쉬어가며
연말이다. 곧 크리스마스도 찾아올 것이고, 한 해가 저물고 새 해가 밝을 것이다. 꿀을 빨던 공중보건의 생활도 내년 4월이면 끝이 난다. 내년에 나는 개원을 하고 작은 치과의원의 원장으로 새 삶을 시작할 계획이다.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에 있는 한 건물의 2층에 치과를 차리기로 계획하고 지난주에 임대계약을 마쳤다. 인테리어 공사는 2월말에서 3월초에 시작할 예정이다. 큰 변화를 앞두니 마음이 분주하고 조금 불안정하다. 인테리어, 장비, 기구, 직원채용 등 겪어보지 않은 새로운 일들이 쌓여있다. 몸으로 부딪히면서, 돈을 잃으면서 경험을 쌓고 싶지는 않은데, 벌써 시행착오를 겪고 있어서 뼈아프다.
나름대로 학원에서 강의를 할 적에 계약서를 작성해 본적도 있고, 그 때는 이 경험이 개원을 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었다. 막상 계약을 하고보니 아쉬운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 그간의 경험에서 내가 얻은 게 과연 무언가 싶다. 유연하면서도 명확하게 맺고 끊는, 그런 사회생활의 능력이 필요한데 내가 너무나 부족해서 조금 좌절이다.
아, 전에 블로그에 포스팅한 적이 있는 문제의 환자는 나에게 끊임없이 찾아와 금전을 요구하고 있는 중이다. 이것은 이것대로 힘이 들지만, 이 역시 내가 해쳐나가야만 하는 일이다.
평소에 출퇴근길에 웹서핑을 즐겨하는데, 요즈음 좋은 블로그가 너무나 많다는 것을 여러번 느낀다. 각종 경제, 정치현안에 대한 블로그부터, 요리, 외식에 대한 블로그, 패션에 대한 블로그 등을 즐겨찾기로 해놓고 자주 들른다. 내 블로그는 그동안 어떤 블로그였을까. 처음에야 의욕에 차있었지만, 들르는 이들에게 의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부족함도 많았던 것 같다.
다름이 아니라, 개원을 앞두고 이것저것 준비해야만 하는 입장에서 더 이상 블로그 활동을 이어가는 것이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단히 바빠서 블로그 활동을 할 시간이 없다기보다는, 마음이 산만하고 내용이 동이 난 탓이다. 이런저런 신변잡기야 쓸 수 있겠으나, 그런 개인적인 이야기를 이곳에 적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싶다.
블로그를 쉬는 동안에 좋은 경험도 많이 하고, 다양한 분야의 좋은 책, 영화, 음악도 많이 접해서 다시 의미 있는 이야기를 적을 수 있을 때 블로그 활동을 재개할까 한다. 그간 많지는 않았지만, 블로그에 이따금 들러서 흔적을 남겨주신 분들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내년 여름쯤? 다시 인사를 드리려고 한다. 아, 연말에 올해의 독서를 정리하는 포스팅은 해야지. 그건 올해도 할거다.
2013년 11월 24일 일요일
근황과 잡담
1. 11월은 꽤 다사다난했다. 결정적으로 치과개업을 하기에 좋은 자리를 발견하여, 임대계약을 할 뻔했는데, 아버님도 모셔온 자리에서 계약을 취소했다. 부동산 업자가 일방적으로 건물주에게 유리한 조건을 요구하고, 계속해서 탁자를 손으로 친다거나 윽박지르는 등 비정상적인 영업태도를 보이더라. 아무래도 이상해서 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는데, 그제야 사실 그 건물의 소유주가 자신들이라고 실토했다.
삼십대 중반의 동기들도 임대계약 때는 관련업계 지인이나 부모님과 동행한다더니, 강호의 험난함을 몸소 실감한 일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공중보건의로 말년을 보내고 있는 지인들 모두 미래를 계획하느라 분주한 거 같더라. 선배들이 입을 모아서 공중보건의 시절만큼 좋은 시절이 없다고들 하던데, 나도 좋은 시절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싶다.
2. 대전에서 공부하다가 서울에 올라온 첫 해에 많이 느끼긴 했는데, 전라도와 경상도뿐만 아니라 서울 내에서도 지역을 놓고 이래저래 편을 가르고 계급을 만들려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더라. 초등학교 때 일산에서 목동으로 전학을 왔는데 목동 출신이 아니라며 하대하는 친구들이 많았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듣노라면, 내가 다른 세상에서 살다왔나 싶기도 하다. 출신 고등학교를 따지는 사람들도 되게 많다는데, 대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나는 노원구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나왔는데, 내가 눈치가 유난히 없었는지 몰라도 나는 지역이나 돈, 집안으로 편가르기를 하거나, 당한 기억이 없다. 내가 중산층이 대다수인 평범한 지역 출신이라 그런걸까?
자연히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어느 지역에서 키워야하나 고민하게 된다. 참 별 웃기지도 않은 걸로 내 미래를 고민하게 되는구먼.
3. 이코노미스트 홍춘욱 님은 ‘김광진의 경제포커스’에 패널로 참석했던 이들 가운데 내가 좋아했던 분이다. 날카로운 분석력과 나긋나긋한 어투가 인상이 깊어서 이름을 기억한 몇 안되는 이들 가운데 한 분인데, 이분이 운영하는 블로그가 있더라. 더군다나 공짜로 읽기가 죄송스러울 만큼 아주 양질의 글들이 가득하다. 링크한다.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좋은 의견과 정보를 제공해주신다. 부동산, 환경, 인구변화, 그 외 여러 경제현황에 대한 글들이 있고, 논문, 도서에 대한 리뷰도 많다.
아무래도 부동산과 같이 나랑 밀접한 주제의 글들을 먼저 유심히 읽게 되었는데, 부동산 시장이 폭락할 가능성이 아주 낮다는 분석을 하셨다. 두 가지 원인이 있는데,
1) 우선은 우리나라는 부동산 대출이 변동금리 위주이므로 경기가 어려울 때 이자부담이 급격히 줄어든다는 점을 든다.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에 우리와 비슷한 변동금리 모기지로 대출을 받은 영국과 호주는 금리인하 덕택에 주택시장이 폭락하지 않았고, 영국은 작년에 완만한 반등, 호주는 올해 사상 최고가를 갱신하는 등의 강세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현재 고점에서 일정 정도 하락한 후 횡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같은 이유로 해석할 수 있다.
2) 둘째로 소득대비 주택가격 비율(PIR)을 살폈을 때, 한국의 서울은 9.4, 전국은 4.8로 높은 편이다. 허나 이는 주택가격의 수요 요소(소득)만을 고려한 것이다. 공급 요소, 즉 국토면적이 적어서 토지 공급가격이 비싼 특성을 고려하면 유사한 영국, 홍콩, 싱가포르 등과 비교했을 때 결코 높다고 볼 수 없다.
이전과 다른 아주 흥미로운 분석이다. 허나 1)의 경우, 우리나라의 채권 금리가 미국의 금리 변동에 대단히 민감하기 때문에 내년부터 예상대로 미국이 금리인상을 하면 부동산 대출의 이자부담이 급격히 증가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점이 우리나라의 부동산 시장에 부정적인 요소로 생각된다.
2013년 11월 2일 토요일
철학이 필요없다는 철학
절친한 친구 한 명과 이따금 논쟁하곤 하는 주제가 있다. 이 친구는 모든 가치의 우열이 없다는 주장을 한다. 일종의 회의주의인데, 이 친구는 원자화된 개인의 욕구가 끊임없이 충돌하지만, 결코 어떠한 보편성도 기반으로 확보될 수 없는 무질서한 곳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이 친구에게는 살인도 죄가 아니다. 물론 죄라는 개념이 허구이기 때문이다. 합리가 비합리보다 우월하지도 않다고 말한다. 의무도 허구이다. (직접 묻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권리도 역시 허구라고 주장할 것이다)
친구의 주장은 일견 설득력이 있다. 왜냐하면 여지껏 밝혀진 바에 의하면, 그의 주장 전부가 사실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은 누구나 '존재한다.'는 것 이상의 정보를 확신할 수 없다. 존재한다는 것은 수많은 감각정보에 의해 유추된 것이다. 개인이 직접적으로 인지하게 되는 것들은 이러한 감각들 뿐이다. 세상이 내가 눈으로 보는 것처럼 존재하고 있는지 우리는 확신할 수 없다. 호접지몽에서 그러했듯, 내가 단지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
앞서 '흄의 철퇴'라는 블로그 포스팅에서 밝혔듯이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고, 자극에 반응하고, 사고를 형성하는데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경험적 지식들은 결코 어떠한 확실성에도 도달하지 못한다.
오늘날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을 통해서 개연적 지식을 획득할 수 있다고 믿는 이유는, 단지 그리 믿지 않으면 더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연역적 지식은 소급해 올라가면 궁극적인 출발점이 필요하다. 우리는 개연성과 같은 몇 가지 원리를 연역적 지식의 머리에 둔다. 우리가 사고를 형성하려면 몇 가지가 더 필요하다. 가령, 모순율이 그렇다. 또 'A=B이고 B=C이면 A=C이다.'와 같은 명제도 사실로 인정되어야 한다. (이 외에도 더 있지만 이만하자) 이러한 것들이 어째서 사실인지 더이상 따지고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들 원리들을 받아들여야 연역작업이 이루어질 수 있다.
'방황하는 윤리'라는 포스팅에서 이야기한 적이 있듯이, 많은 윤리문제들이 사실상 취향의 차이이다. 어떤 이는 사람을 죽이는 걸 좋아할 수 있다. 어떤 이는 법을 어기고 싶어할 수 있다. 어떤 이는 전쟁을 일으키고 싶어할 수 있다. 생득되는 윤리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의무'나 '권리'의 개념을 버리기만 하면, 이 모든 것이 단지 취향의 차이가 되어버린다.
철학을 공부하면서 참 재미있는 게, 하늘 아래에 새로운 게 없다는 사실이다. 이미 2천년 전에 그리스에서 비슷한 주장을 한 철학자들이 있었다. 버트런드 러셀의 '서양철학사'에 의하면, 이 회의주의 철학은 아주 당연히 철학과 거리가 먼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게으른 사람들의 자기 위안이 되어주기도 하였다. 철학이 필요없다는 걸 주장하는 철학이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친구는 일체의 보편성을 거부하고 원자적 개인에 머무르려 한다. 그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다양한 결정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단지 자신이 그러한 욕구를 느끼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의 선호를 타인에게 설명할 수는 있지만, 어떤 보편성에도 호소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다양한 욕구들이 사회 안에서 보편화되어 규율이 형성되는데, 그 자신은 일체의 규율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는 절친한 지인에게 자신의 선호를 존중해줄 것을 부탁할 수 있다. 지인은 그를 존중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가 일면식도 없던 살인마를 만나면 그는 단지 '저는 죽고싶지 않아요.'라고 말할 수 있다. 결코 '살인을 하면 안됩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안타깝게도 살인마는 그의 선호를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세상만사에 대해서 '이것이 옳다.'라고 주장할 수 없다. 옳은게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이것이 좋다.'라고만 말할 수 있다. 별난 결론이다.
모두가 자기 마음대로 하면 그만이라는 주장은 단칼에 모든 고민을 해결해버리는 시원함이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을 하면 그는 세상을 향해 어떠한 적극적인 주장도 할 수가 없게 된다. 다양한 사회집단에게 단지 자신의 '선호'만을 호소한다면, 개인적 인간관계의 울타리 밖에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결국 그들은 소극적으로 자기보호를 얻는 것에 만족한다.
친구는 나와 많은 부분에서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 윤리의 기원에 대한 견해도, 인식론에 대한 견해도 큰 그림에서 유사하다. 그럼에도 아주 작은 관점의 차이에 의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진다. 취향의 차이가 회의주의를 낳고, 이 회의주의는 합리마저도 부정하기 때문에 설득될 수도 없다. 결국 개인이 가진 욕구만이 남으므로, 감정에의 호소가 더 효과적일 것 같다.
역사를 보면 특정 시대의 정서가 특정 시대의 철학을 낳곤 한다. 개인의 정서도 그에 알맞은 철학관을 낳는다. 회의를 바탕으로 원자적 감정의 세계로 피신하는 개인이 품은 중심정서란 무엇일까. 나에게 이는 극복의 대상으로 보이지만, 이 또한 나의 취향임은 부정할 수 없다.
p.s : 사진은 이촌동 미타니야에서 먹은 카레라멘. 나는 일식 중 카레라멘이 제일 좋더라. 아.. 카레!
2013년 10월 25일 금요일
블로그를 만든지 2년
2년 전 오늘이다. 경상남도 통영에서 병원선을 탈 적에 Hubris님의 블로그에 감명받아서 블로그를 처음 만들었다. 작년에도 같은 날 포스팅을 했다. '블로그를 만든지 1년'. 이제 2년이 되었다. 문득 세월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 처음으로 삼십대가 되었는데, 벌써 31살이 눈 앞에 보이는 듯하다. 나이를 먹는다고 삶의 고민들이 해결되는 건 아닌 것 같다. 듀이의 철학이 그렇듯이, 나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주위 환경도 그러하다. 그리고 나의 고민도 조금씩 색깔을 바꾸면서 내 곁에 머물러 있다. 나의 해답도 마찬가지다. 늘 조금씩 변화한다. 삶의 해답이란 늘 임의적인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p.s : 아버지는 얼마 전에 흔들의자를 장만하셨다. 쓸데없이 방이 많아서 사진의 방은 책 방, 어떤 방은 아버지의 화실이 되었는데, 의지가 책 방과 잘 어울리긴 한다. 아버지는 흔들의자를 장만하는게 로망이라고 이따금 말씀하시곤 했다. 노년에 작은 꿈 하나를 이루셔서, 의자에 앉아 흔들흔들 기분을 내시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듀이의 실용주의
듀이는 실용주의자라고 일컬어진다. 그런데 실용주의라는 건 항상 '무언가'를 위한 실용성을 강조하는 것이니까, 자연히 그렇다면 무엇을 위한 실용주의인가 하는 의문이 뒤따라온다. 이에 대해 분명히 대답하는 것은 쉽지 않다.
듀이가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은 것들을 두 가지 꼽자면, 진화론과 헤겔의 철학을 고를 수 있을 것 같다. 진화론과 과학의 경험주의는 당대의 시대 전반에 큰 영향을 주었다. 환경이 변화하면 어떤 생물은 살아남고, 어떤 생물은 살아남지 못한다. 살아남은 생물은 자손을 번식할 수 있다. 이 자손도 또다시 환경의 변화를 겪고, 변화의 과정이 반복된다. 생물만이 환경의 영향을 받아 변화하는 것이 아니다. 듀이의 시대에 과학기술의 발달과 급속한 산업화는 환경을 급격하게 변화시키고 있었다. 생물과 환경은 서로 상호작용한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변화시키는 되먹임 작용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여기서 듀이는 끊임없는 '변화'와 '상호작용'이 세계의 중심원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역동성은 헤겔의 철학과 조화될 수 있었다. 듀이는 과학의 기반이 되는 경험을 중시했고, 헤겔의 관념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헤겔의 변증법은 실제 세계를 반영하는 올바른 틀이라고 생각했다. 듀이는 어떤 철학도 절대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떤 철학도 진공에서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그게 속한 시대상이 투영된 반영물이고, 그 가치도 시대의 요구에 따라 달라진다. 당대에 가치가 있는 철학도, 새로운 시대에서는 그 가치를 잃고, 오히려 해를 끼치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그에 대한 해법을 어떻게 결정할 수 있을까? 듀이는 과학에 그 해답이 있다고 보았다. 과학은 경험적인 학문이다. 교조적인 진리로부터 연역된 것이 아니라, 귀납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렇기에 늘 어떤 문제가 있을 때, 다양한 해법을 그 '결과'를 가지고 검토하게 된다. 듀이가 보기에 이러한 과학적 방법이 특정한 영역을 넘어서 사회 전체의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채택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듀이의 실용주의는 오늘날의 상식과도 잘 조화되고, 아주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이런저런 의문이 생긴다. 버트런드 러셀은 듀이와 많은 부분 공감대를 이루고 있었지만, 그의 실용주의적 입장이 지나치게 엄격하게 적용되는 것을 경계했다.
예를 들어서, 누군가 우리에게 지금 비가 오고 있는지를 물어봤다고 하자. 이럴 때 듀이의 실용주의를 채택하게 되면, 우리는 그에게 비가 온다고 답했을 때 빚어질 결과와, 오지 않는다고 답했을 때 빚어질 결과를 헤아려서 둘 중 어느 답변이 더 이로운가 판단해야만 한다. 비가 오는 것이 실제 사실이라면, 이러한 태도로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비가 오는 것이 사실이라고 언제나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는 인식론에 대한 러셀의 입장을 이해해야만 하는데, 러셀은 반대 증거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우리의 지각에 대한 믿음을 철회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러셀의 생각에는 실제로 비가 오고 있다면, 그 사실을 그대로 답하는 태도가 바람직하다. 러셀은 실용주의가 교조적으로 되어, 눈앞의 이익만을 중시하는 천박한 사회풍조를 낳을 것을 우려했다. 물론 듀이도 실용주의가 독단적인 원칙으로까지 교조화되기를 주장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당시의 각종 사회문제들이 미신이나 관습, 비이성적인 충동에 의해 발생한다고 보았고, 과학적인 태도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듀이의 실용주의 철학은 진지하게 받아들이기엔 너무 모호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많은 사회문제들이 서로 다른 가치들의 충돌을 담고 있고, 이는 과학적인 태도로 결과를 평가하고, 분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치란 것은 정량되지 않는다. 서로 다른 가치들을 비교할 수도 없다. 가치 간의 충돌은 '취향'의 차이를 반영할 때가 많다. 어떤 이는 오늘날의 사회가 지나치게 역동적이라고 비판한다. 지금의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은 어떤 사회를 이루어갈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는데 중요한 판단기준이다. 하지만 나는 결코 오늘날의 사회가 '지나치게' 역동적인지 아닌지 평가할 수 없다.
하지만 듀이의 실용주의는 문제들이 보다 구체적이고, 특정 영역에 국한될 때 큰 도움이 된다. 경제학은 듀이의 바람대로 사회문제를 과학적 방법을 통해 접근하는 학문이다. 가령, 저축이라는 개인의 미덕은 사회 전체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해가 되기도 한다. '미덕'에 대한 교조적 생각에 사로잡히면, 사회 전체에 손해를 입힐 수도 있는 것이다.
헤겔도, 마르크스도, 변증법의 결과는 계속되는 '진보'라고 했다. 사실 왜 변화가 필연적으로 '진보'를 의미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엄격하게 보면, 진화론의 진화도 환경에 대한 적응을 의미할 뿐이다. 진보라는 건 인간의 머리 속에만 존재하는 관념일지도 모른다. 나도 때때로 좌절하고, 무력감에 빠지기도 하지만, 내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믿는다. 듀이도 실용적인 의미에서 이런 나의 생각을 지지해주지 않았을까.
p.s : 사진은 이촌동 '동강'의 유린기. 처음 먹었을 때는 완전히 반했었다. 요즘에는 입맛이 변했는지 전같이 감동적이지는 않더라. 허허.
반항의 추억
고교 이후의 학창 시절에 나는 몇 가지 특이한 구석이 있었다. 우선 수업을 늘 듣지 않았다. 당연히 성적은 좋지 않았는데, 전혀 개의치않았다. 그리고 도서관을 가지 않았다. 집이나 기숙사, 교실, 나중에는 카페를 선호했다. 좋아하는 교수님이 거의 없었다. 나를 아는 교수님들도 대체로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반항을 하는 것이 중요한 삶의 태도가 되어있었다. 어릴 적엔 수업시간에 조는 것이 선생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여겼다. 그런데 불과 몇 년 뒤, 수업을 듣고 말고는 온전히 나의 권한이니 간섭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중등 시절까지 억압되었던 자아의 반작용이었다. 보통의 대한민국 중학생처럼 학업에 큰 스트레스를 받았기에, 특목고로 진학한 뒤에 내가 느낀 해방감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부모님은 내가 1등을 하지 못해도 더이상 나를 나무라지 않았다. 지나친 경쟁심으로 나를 대하는 또래친구들도 없었다. 게다가 정기적으로 어른들은 내가 나라를 이끌 인재라고 이야기해주었다.
대학에 진학한 뒤로는 동아리에 취해서 수업을 더욱 게을리 들었다. 그간 형성된 자만심은 이런저런 합리화로 내 태도를 변호했다. 어차피 공부는 혼자하는거다 출석따위로 성적을 메기는 방식은 저급하다 등.
고교 시절에는 교내 자습실을 이용해 공부했지만, 대학에서는 도서관을 가지 않았다. 공부는 스스로 하는 거니까 도서관에 가는 태도는 한심하다고 주장했다. 사실 그렇게 기숙사에 남아서 스스로 공부를 잘 해내지도 못했던 것 같다.
대학원은 자유롭던 공대와는 분위기가 달랐으므로, 여기서 내 수업 태도는 비로소 위기를 맞이했다. 대학원은 규율이 엄격했고, 문화는 보수적이었으며, 동기 집단이 좋은 평가를 받는 게 중요했다. 당연히 나의 수업 태도는 자주 동기 집단의 도마 위에 올라 비판을 받았다. 변명도 하고, 발끈하기도 하면서 대학원 4년을 지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물론 이와는 달리, 도서관을 가지 않는 태도는 이후로도 쭉 이어졌다. 윗사람을 싫어하는 태도도 마찬가지이다. 나의 개성 중 하나가 된 셈이다.
흔히들 모두가 '예'라고 말할 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어야만 한다고들 하지만, '예'나 '아니오' 따위로 균형잡힌 삶의 태도를 보장할 수는 없다는 걸 나는 안다. 뻔하디 뻔한 '예'만큼이나, '아니오'도 편협함의 산물일 수 있다.
그래도 내가 '예'라고만 하는 사람이었다면, '아니오'라고 말하는 소수를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 내가 자주 '아니오'라고 말하는 소수의 기질을 지니고 있다는게 다행스러운 점이 그거다.
p.s : 역시 어머니가 끓여주셨던 찌개. 나이를 먹고나서 알게 된 사실인데, 어머니가 보통의 주부들보다 요리를 잘하시는 거 같더라. 찌개에 대해서는 누구나 어머니의 입맛에 길들여져 있으므로 일반화하기는 힘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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