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12일 금요일

블로그를 옮겼습니다.

개원, 결혼 등의 이벤트를 치루며 오랫동안 블로그를 쉬었습니다.
벌써 개원한지 5개월 가까이 되어서 시골원장의 삶에 어느정도 적응을 했지만, 결혼이라는 큰 사건도 앞두고 있어서 조금은 정신이 없네요.
공중보건의사로 근무하던 시절처럼 자유시간이 많지는 않겠지만, 틈틈이 블로그를 통해서 제 짧은 생각을 정리하고,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습니다.

티스토리 블로그는 구글보다 글들을 분류하고 정리하는 게 수월하고, 사진을 올리기도 더 편한 거 같습니다. 그곳에서 새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2달 전에 티스토리 블로그를 열었는데, 아직 이곳에 올린 글들을 추스려 옮기는 작업도 다 못했네요.

지난 포스팅에서 티스토리 블로그 주소를 틀리게 링크했다는 걸 며칠 전에 알았습니다. 한심하네요. http://thespiritsetsfree.tistory.com 입니다. 이따금 방문해주세요.

새로 블로그를 옮기면서 3년 만에 깨달은 사실은 the spirit set free가 문법적으로 틀렸다는 겁니다. 예, the spirit sets free가 맞죠.. 3년간 몰랐습니다..

 이만 줄입니다. 티스토리에서 뵙죠!

2014년 7월 15일 화요일

다시 시작


 참 오랜만이다. 올해 초에 마지막 포스팅을 한 뒤로, 근 반 년 간 블로그를 운영하지 않았다.
 그 동안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다. 치과를 개원했다. 원장으로서 환자분들을 진료하고 있다. 치과 뒤 원룸에서 자취생활을 시작했다.  여자친구와 여행을 다녀오고, 상견례를 했으며, 9월 말에 결혼을 앞두고 있다.  이달 말에 프로포즈를 할 계획이고, 혼인신고를 하고 8월 첫 날에 신혼집에 입주할 예정이다.

 새로이 티스토리에 블로그를 개설했다. 주소는 thespiritsetsfree.tistory.com 구글 블로그보다 깔끔하고 글을 정돈하기 좋은 것 같다. 드물게 포스팅을 하더라도 의미있게 남기고, 보관해서 찾아볼 수 있게 블로그를 꾸려야지 싶다.
 구글에서 블로그를 2년 간 운영하면서 방문해주셨던 많은 분들께 다시금 감사드린다. 개원도 하고, 결혼도 앞두고.. 좋은 일들을 전해드릴 수 있게 되어서 기쁘다.

 어쨌든 첫 글이다. 아, 사진은 내 치과 대기실 풍경이고. 티스토리로 와주시라!

2014년 1월 2일 목요일

새해를 맞이하며


 정신없는 연말이었다. 모든 모임이 쓸모있지도 않고, 모든 대화가 의미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좋아하는 이들과 함께라 반가웠고, 소중했다.
 나를 힘들게 했던 환자문제가 정리가 되어가는 즈음, 복무 문제로 보건소 공무원 한 분과 마찰이 있다. 여러모로 반성하게 된다. 그간 스스로에게 무책임했다. 마치 행운의 여신이 항상 내 편이기라도 한 양.
 이제 장비, 재료업체를 구해야하고, 인테리어 업체도 구해야한다. 진료준비는 물론이다. 할 일이 많다. 아, 그리고 부동산에 대해서 연초에 한 번쯤 포스팅을 하게 될 것 같다. 연초에도 블로그에 아예 손을 놓지는 않는 셈이다. 허허.

 부끄럽게도 작년 한 해 동안의 독서량은 그다지 많지 못하다. 게다가 원래 난 이러는 스타일이 아닌데,  사놓고 안 읽은 책도 몇 권이 있다. 

BBK의 배신/김경준 저/(주)비비케이북스
이번엔 다르다/케네스 로고프, 카르멘 라인하트 저/최재형, 박영란 역/다른세상 (중단)
기대감소의 시대/폴 크루그만 저/윤태경 역/황금사자
새로운 미래를 말하다/폴 크루그만 저/예상한 역/엘도라도
넛지/리츠더 탈러, 캐스 선스타인 저/안진환 역/리더스북 (중단)
모든 것의 가격/에두아르도 포터 저/손민중, 김홍래 역/김영사
김광진의 지키는 투자/김광진 저/중앙books
사라진 실패/신기주 저/인물과 사상사 (안 읽음)
죽음이란 무엇인가/셸리 케이건 저/박세연 역/엘도라도 (안 읽음)
민주주의와 교육 철학의 개조/존 듀이 저/김성숙 이귀학 역/동서문화사
자유주의와 사회적 실천/존 듀이 저/김진희 역/책세상
국가란 무엇인가/유시민 저/돌베게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말콤 글래드웰 저/김태훈 역/김영사
지금 당장 이 불황을 끝내라!/폴 크루그먼 저/박세연 역/엘도라도
촘스키, 세상의 권력을 말하다1,2/데이비드 바사미언 인터뷰/김용민 삽화, 강주헌 역/시대의창 (1권만 읽음)
종교와 과학/버트런드 러셀 저/김이선 역/동녘
과학의 미래/버트런드 러셀 저/석기용 역/열린책들
인기없는 에세이/버트런드 러셀 저/장성주 역/함께읽는책
런던통신 1931-1935/버트런드 러셀 저/송은경 역/사회평론
아들을 공부하라/데이비드 토마스, 스티븐 제임스 저/김양미 역/글담출판사

 총 스물 한 권의 책을 구입하였고, 5권을 제대로 읽지 않았다. 물론 이유가 있는 경우도 있다.
  '이번엔 다르다'의 경우, 비전공자인 내가 정독을 할 만한 내용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넛지'의 경우에도 지나치게 전문적이고 지루해서 다 읽을 가치를 못 느꼈다. 촘스키의 책도 마찬가지다. 네 권 모두 그다지 추천하지 못하겠다.

 추천할 만한 책들을 골라보자. 폴 크루그만의 책들, 버트런드 러셀의 책들은 모두 강추한다. 김광진, 유시민의 책도 아주 좋아서 여러 번 다시 읽고 싶다.
 작년 연말부터 여유시간에 치과 공부에 집중하고 있다. 올 한 해는 풍부한 독서를 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뭐, 가평에서 살다보면 밤에 지루할 때 오히려 더 독서에 열중하게 될 지도 모르지.

 블로그 독자분들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p.s : 사진은 베키아앤누보. 한 때 자주 다니던 곳인데, 오랜만에 왔다. 여기 이탈리안 음식들 모두 참 훌륭하다. 값어치를 한다.

2013년 12월 9일 월요일

잠시 쉬어가며


 
 
 연말이다. 곧 크리스마스도 찾아올 것이고, 한 해가 저물고 새 해가 밝을 것이다. 꿀을 빨던 공중보건의 생활도 내년 4월이면 끝이 난다. 내년에 나는 개원을 하고 작은 치과의원의 원장으로 새 삶을 시작할 계획이다.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에 있는 한 건물의 2층에 치과를 차리기로 계획하고 지난주에 임대계약을 마쳤다. 인테리어 공사는 2월말에서 3월초에 시작할 예정이다. 큰 변화를 앞두니 마음이 분주하고 조금 불안정하다. 인테리어, 장비, 기구, 직원채용 등 겪어보지 않은 새로운 일들이 쌓여있다. 몸으로 부딪히면서, 돈을 잃으면서 경험을 쌓고 싶지는 않은데, 벌써 시행착오를 겪고 있어서 뼈아프다.
나름대로 학원에서 강의를 할 적에 계약서를 작성해 본적도 있고, 그 때는 이 경험이 개원을 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었다. 막상 계약을 하고보니 아쉬운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 그간의 경험에서 내가 얻은 게 과연 무언가 싶다. 유연하면서도 명확하게 맺고 끊는, 그런 사회생활의 능력이 필요한데 내가 너무나 부족해서 조금 좌절이다.
  아, 전에 블로그에 포스팅한 적이 있는 문제의 환자는 나에게 끊임없이 찾아와 금전을 요구하고 있는 중이다. 이것은 이것대로 힘이 들지만, 이 역시 내가 해쳐나가야만 하는 일이다.
 
  평소에 출퇴근길에 웹서핑을 즐겨하는데, 요즈음 좋은 블로그가 너무나 많다는 것을 여러번 느낀다. 각종 경제, 정치현안에 대한 블로그부터, 요리, 외식에 대한 블로그, 패션에 대한 블로그 등을 즐겨찾기로 해놓고 자주 들른다. 내 블로그는 그동안 어떤 블로그였을까. 처음에야 의욕에 차있었지만, 들르는 이들에게 의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부족함도 많았던 것 같다.
 다름이 아니라, 개원을 앞두고 이것저것 준비해야만 하는 입장에서 더 이상 블로그 활동을 이어가는 것이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단히 바빠서 블로그 활동을 할 시간이 없다기보다는, 마음이 산만하고 내용이 동이 난 탓이다. 이런저런 신변잡기야 쓸 수 있겠으나, 그런 개인적인 이야기를 이곳에 적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싶다.
 블로그를 쉬는 동안에 좋은 경험도 많이 하고, 다양한 분야의 좋은 책, 영화, 음악도 많이 접해서 다시 의미 있는 이야기를 적을 수 있을 때 블로그 활동을 재개할까 한다. 그간 많지는 않았지만, 블로그에 이따금 들러서 흔적을 남겨주신 분들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내년 여름쯤? 다시 인사를 드리려고 한다. 아, 연말에 올해의 독서를 정리하는 포스팅은 해야지. 그건 올해도 할거다.

2013년 11월 24일 일요일

근황과 잡담


1. 11월은 꽤 다사다난했다. 결정적으로 치과개업을 하기에 좋은 자리를 발견하여, 임대계약을 할 뻔했는데, 아버님도 모셔온 자리에서 계약을 취소했다. 부동산 업자가 일방적으로 건물주에게 유리한 조건을 요구하고, 계속해서 탁자를 손으로 친다거나 윽박지르는 등 비정상적인 영업태도를 보이더라. 아무래도 이상해서 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는데, 그제야 사실 그 건물의 소유주가 자신들이라고 실토했다.
 삼십대 중반의 동기들도 임대계약 때는 관련업계 지인이나 부모님과 동행한다더니, 강호의 험난함을 몸소 실감한 일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공중보건의로 말년을 보내고 있는 지인들 모두 미래를 계획하느라 분주한 거 같더라. 선배들이 입을 모아서 공중보건의 시절만큼 좋은 시절이 없다고들 하던데, 나도 좋은 시절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싶다.


2. 대전에서 공부하다가 서울에 올라온 첫 해에 많이 느끼긴 했는데, 전라도와 경상도뿐만 아니라 서울 내에서도 지역을 놓고 이래저래 편을 가르고 계급을 만들려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더라. 초등학교 때 일산에서 목동으로 전학을 왔는데 목동 출신이 아니라며 하대하는 친구들이 많았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듣노라면, 내가 다른 세상에서 살다왔나 싶기도 하다. 출신 고등학교를 따지는 사람들도 되게 많다는데, 대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나는 노원구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나왔는데, 내가 눈치가 유난히 없었는지 몰라도 나는 지역이나 돈, 집안으로 편가르기를 하거나, 당한 기억이 없다. 내가 중산층이 대다수인 평범한 지역 출신이라 그런걸까?
 자연히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어느 지역에서 키워야하나 고민하게 된다. 참 별 웃기지도 않은 걸로 내 미래를 고민하게 되는구먼.


3. 이코노미스트 홍춘욱 님은 ‘김광진의 경제포커스’에 패널로 참석했던 이들 가운데 내가 좋아했던 분이다. 날카로운 분석력과 나긋나긋한 어투가 인상이 깊어서 이름을 기억한 몇 안되는 이들 가운데 한 분인데, 이분이 운영하는 블로그가 있더라. 더군다나 공짜로 읽기가 죄송스러울 만큼 아주 양질의 글들이 가득하다. 링크한다.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좋은 의견과 정보를 제공해주신다. 부동산, 환경, 인구변화, 그 외 여러 경제현황에 대한 글들이 있고, 논문, 도서에 대한 리뷰도 많다.
 아무래도 부동산과 같이 나랑 밀접한 주제의 글들을 먼저 유심히 읽게 되었는데, 부동산 시장이 폭락할 가능성이 아주 낮다는 분석을 하셨다. 두 가지 원인이 있는데,
 1) 우선은 우리나라는 부동산 대출이 변동금리 위주이므로 경기가 어려울 때 이자부담이 급격히 줄어든다는 점을 든다.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에 우리와 비슷한 변동금리 모기지로 대출을 받은 영국과 호주는 금리인하 덕택에 주택시장이 폭락하지 않았고, 영국은 작년에 완만한 반등, 호주는 올해 사상 최고가를 갱신하는 등의 강세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현재 고점에서 일정 정도 하락한 후 횡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같은 이유로 해석할 수 있다.
 2) 둘째로 소득대비 주택가격 비율(PIR)을 살폈을 때, 한국의 서울은 9.4, 전국은 4.8로 높은 편이다. 허나 이는 주택가격의 수요 요소(소득)만을 고려한 것이다. 공급 요소, 즉 국토면적이 적어서 토지 공급가격이 비싼 특성을 고려하면 유사한 영국, 홍콩, 싱가포르 등과 비교했을 때 결코 높다고 볼 수 없다.
 이전과 다른 아주 흥미로운 분석이다. 허나 1)의 경우, 우리나라의 채권 금리가 미국의 금리 변동에 대단히 민감하기 때문에 내년부터 예상대로 미국이 금리인상을 하면 부동산 대출의 이자부담이 급격히 증가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점이 우리나라의 부동산 시장에 부정적인 요소로 생각된다.

2013년 11월 2일 토요일

철학이 필요없다는 철학



 절친한 친구 한 명과 이따금 논쟁하곤 하는 주제가 있다. 이 친구는 모든 가치의 우열이 없다는 주장을 한다. 일종의 회의주의인데, 이 친구는 원자화된 개인의 욕구가 끊임없이 충돌하지만, 결코 어떠한 보편성도 기반으로 확보될 수 없는 무질서한 곳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이 친구에게는 살인도 죄가 아니다. 물론 죄라는 개념이 허구이기 때문이다. 합리가 비합리보다 우월하지도 않다고 말한다. 의무도 허구이다. (직접 묻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권리도 역시 허구라고 주장할 것이다)

 친구의 주장은 일견 설득력이 있다. 왜냐하면 여지껏 밝혀진 바에 의하면, 그의 주장 전부가 사실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은 누구나 '존재한다.'는 것 이상의 정보를 확신할 수 없다. 존재한다는 것은 수많은 감각정보에 의해 유추된 것이다. 개인이 직접적으로 인지하게 되는 것들은 이러한 감각들 뿐이다. 세상이 내가 눈으로 보는 것처럼 존재하고 있는지 우리는 확신할 수 없다. 호접지몽에서 그러했듯, 내가 단지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

 앞서 '흄의 철퇴'라는 블로그 포스팅에서 밝혔듯이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고, 자극에 반응하고, 사고를 형성하는데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경험적 지식들은 결코 어떠한 확실성에도 도달하지 못한다.
 오늘날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을 통해서 개연적 지식을 획득할 수 있다고 믿는 이유는, 단지 그리 믿지 않으면 더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연역적 지식은 소급해 올라가면 궁극적인 출발점이 필요하다. 우리는 개연성과 같은 몇  가지 원리를 연역적 지식의 머리에 둔다. 우리가 사고를 형성하려면 몇 가지가 더 필요하다. 가령, 모순율이 그렇다. 또 'A=B이고 B=C이면 A=C이다.'와 같은 명제도 사실로 인정되어야 한다. (이 외에도 더 있지만 이만하자) 이러한 것들이 어째서 사실인지 더이상 따지고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들 원리들을 받아들여야 연역작업이 이루어질 수 있다.
 '방황하는 윤리'라는 포스팅에서 이야기한 적이 있듯이, 많은 윤리문제들이 사실상 취향의 차이이다. 어떤 이는 사람을 죽이는 걸 좋아할 수 있다. 어떤 이는 법을 어기고 싶어할 수 있다. 어떤 이는 전쟁을 일으키고 싶어할 수 있다. 생득되는 윤리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의무'나 '권리'의 개념을 버리기만 하면, 이 모든 것이 단지 취향의 차이가 되어버린다.

 철학을 공부하면서 참 재미있는 게, 하늘 아래에 새로운 게 없다는 사실이다. 이미 2천년 전에 그리스에서 비슷한 주장을 한 철학자들이 있었다. 버트런드 러셀의 '서양철학사'에 의하면, 이 회의주의 철학은 아주 당연히 철학과 거리가 먼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게으른 사람들의 자기 위안이 되어주기도 하였다. 철학이 필요없다는 걸 주장하는 철학이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친구는 일체의 보편성을 거부하고 원자적 개인에 머무르려 한다. 그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다양한 결정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단지 자신이 그러한 욕구를 느끼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의 선호를 타인에게 설명할 수는 있지만, 어떤 보편성에도 호소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다양한 욕구들이 사회 안에서 보편화되어 규율이 형성되는데, 그 자신은 일체의 규율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는 절친한 지인에게 자신의 선호를  존중해줄 것을 부탁할 수 있다. 지인은 그를 존중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가 일면식도 없던 살인마를 만나면 그는 단지 '저는 죽고싶지 않아요.'라고 말할 수 있다. 결코 '살인을 하면 안됩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안타깝게도 살인마는 그의 선호를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세상만사에 대해서 '이것이 옳다.'라고 주장할 수 없다. 옳은게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이것이 좋다.'라고만 말할 수 있다. 별난 결론이다.
 모두가 자기 마음대로 하면 그만이라는 주장은 단칼에 모든 고민을 해결해버리는 시원함이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을 하면 그는 세상을  향해 어떠한 적극적인 주장도 할 수가 없게 된다. 다양한 사회집단에게 단지 자신의 '선호'만을 호소한다면, 개인적 인간관계의 울타리 밖에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결국 그들은 소극적으로 자기보호를 얻는 것에 만족한다.

 친구는 나와 많은 부분에서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 윤리의 기원에 대한 견해도, 인식론에 대한 견해도 큰 그림에서 유사하다. 그럼에도 아주 작은 관점의 차이에 의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진다. 취향의 차이가 회의주의를 낳고, 이 회의주의는 합리마저도 부정하기 때문에 설득될 수도 없다. 결국 개인이 가진 욕구만이 남으므로, 감정에의 호소가 더 효과적일 것 같다.
 역사를 보면 특정 시대의 정서가 특정 시대의 철학을 낳곤 한다. 개인의 정서도 그에 알맞은 철학관을 낳는다. 회의를 바탕으로 원자적 감정의 세계로 피신하는 개인이 품은 중심정서란 무엇일까. 나에게 이는 극복의 대상으로 보이지만, 이 또한 나의 취향임은 부정할 수 없다.

p.s : 사진은 이촌동 미타니야에서 먹은 카레라멘. 나는 일식 중 카레라멘이 제일 좋더라. 아.. 카레!

2013년 10월 25일 금요일

블로그를 만든지 2년


 2년 전 오늘이다. 경상남도 통영에서 병원선을 탈 적에 Hubris님의 블로그에 감명받아서 블로그를 처음 만들었다. 작년에도 같은 날 포스팅을 했다. '블로그를 만든지 1년'. 이제 2년이 되었다. 문득 세월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 처음으로 삼십대가 되었는데, 벌써 31살이 눈 앞에 보이는 듯하다. 나이를 먹는다고 삶의 고민들이 해결되는 건 아닌 것 같다. 듀이의 철학이 그렇듯이, 나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주위 환경도 그러하다. 그리고 나의 고민도 조금씩 색깔을 바꾸면서 내 곁에 머물러 있다. 나의 해답도 마찬가지다. 늘 조금씩 변화한다. 삶의 해답이란 늘 임의적인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p.s : 아버지는 얼마 전에 흔들의자를 장만하셨다. 쓸데없이 방이 많아서 사진의 방은 책 방, 어떤 방은 아버지의 화실이 되었는데, 의지가 책 방과 잘 어울리긴 한다. 아버지는 흔들의자를 장만하는게 로망이라고 이따금 말씀하시곤 했다. 노년에 작은 꿈 하나를 이루셔서, 의자에 앉아 흔들흔들 기분을 내시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