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21일 금요일
정치블로그가 아닌데
대선 1주일 전 쯤부터 감정이 동요하더니, 대선 전날에는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대선이 패배로 끝난 뒤엔 거의 밤을 샜다. 나조차 몰랐던 어처구니없는 나의 모습. 어쨌든 이 감정이 내 지성에는 연료가 되어서 최근 중 가장 정신적인 활력이 넘친다.
1. 지난 포스팅에서 16대 대선에서 노무현은 어떻게 보수표를 끌어들일 수 있었는가를 고민했는데, 블로그 리플과 페이스북 등을 통해 좋은 생각들을 많이 접해서, 100% 정답은 아니더라도 의미있는 소설을 한 편 써볼 수 있는 것 같다.
15대 대선에서 김대중이 승리한 이후, 민주정부 치하의 5년을 겪었다. 마침 진보당은 여당이었고, 여기서 노무현이라는 걸출한 스타가 나왔다. 정몽준과의 단일화 이전에는 20%에 머무르던 그의 지지율은 단일화 이후 45%이상으로 치솟았다. 이는 명백히 보수층의 표가 이동한 것이다. 단일화의 과정은 지극히 비정상적이었으나 개의치않았다. 노무현은 탈권위라는 이름으로 더 나은 민주주의의 꿈을 던져주었고, 이미 민주정부 치하 5년을 겪은 40대 젊은 보수층은 고착화되어있지 않았다. 즉 보수당이 아닌 안정을 중시하는 보수층도 많다는 것이다. 그들은 변화할 수 있었다. 젊은층의 열광과 함께, 젊은 보수층은 참여정부를 탄생시켰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후의 17대, 18대 대선에서 보수층은 고착화되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을 찾기에 앞서 이번 패배를 다시금 되돌아보자.
2. 이번 18대 대선에서 문재인은 왜 패배했는가? 지역주의를 바탕으로 한 분석자료는 보스턴 김 사장이 본인의 블로그에 잘 정리해주었다. 아주 덕후스러웠다. 링크한다.
이를 요약하자면,
1) 부산, 경남에서 문재인의 선전이 대구, 경북에서 박근혜의 선전으로 상쇄됨.
2) 수도권, 충청권에서 16대 대선에 비하여 성과가 부족하여 패인으로 보임.
정도가 되겠다. 즉 지역주의를 바탕으로 하면 16대 대선에서 노무현의 행정수도 이전과 같은 파격적인 전략이 필요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3. 더불어 나는 요즘 언론의 분석이 두 가지 면에서 틀렸다고 생각한다.
1) 이번 대선은 '보수의 총결집에 의한 패배'가 아니다. 지난 포스팅에 다뤘듯이 보수의 총 표수 자체는 큰 변화가 없다. 17대 대선이 워낙 시시한 선거이기는 했으나 당시에 비하여 18대 대선에서 진보층이 얻은 표수는 무려 700만명이 증가했는데 보수층은 고작 50만명의 증가에 그친다. 이번 대선은 오히려 진보가 총결집한 선거였다. 16대 대선과 비교해봐도 당시 40대(지금의 50대)의 투표율은 76.3%에서 89.9%로 13.6% 상승했지만, 오히려 당시 20대(지금의 30대) 투표율은 56.5%에서 72.5%로 16%나 상승했다. 마지막으로 17대 대선에서 보수가 받은 지지율을 40대(64.4%)-50대(72.4%)에서 거칠게 근사하면 약 68% 내외로 지금 50대의 지지율(62.5%)보다 오히려 약간 높다. 결론적으로 투표율을 감안해도 보수의 결집력이 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2) 그러므로 언론의 분석과는 달리 이번 대선에서 '박정희에 대한 향수'가 미친 영향력은 결코 크지 않다. 보수가 결집하지 않았다는 점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결국 이번 대선은 여전히 '참여정부에 대한 심판'이었던 것이다. 이는 16대 대선과 17대, 18대 대선을 비교하면 극명히 드러난다.
16대 대선에서 노무현은 30대(지금의 40대)에게 62.1%의 지지를 받았으나 18대 문재인은 55.6%에 그쳤다.
16대 대선에서 노무현은 40대(지금의 50대)에게 47.4%의 지지를 받았으나 18대 문재인은 37.4%에 그쳤다.
그리고 이 구도는 앞서도 밝혔듯이 17대 대선에서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인구구조에서의 불리함을 고려할 때, 이번 대선에서 진보가 패배한 것은 전략의 실패이다. 진보 대 보수의 일대일 구도에서는 보수표를 빼앗지 않고선 인구구조상 진보가 이기기 힘들었던 것이다. 젊은층의 투표율을 올리려던 전략은 궁여지책이었으나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그러므로 앞서 지역주의 분석에서 언급되었듯 수도권과 충청권을 사로잡을 전략이 필요했다.
그런데 이들 수도권, 충청권을 사로잡으려면 무엇보다 먼저 알아야하는 것이 있다. 바로 왜, 무엇이 40대 이후 세대가 참여정부에 등을 돌리게 하였는가이다. 나로서는 두 가지를 떠올릴 수 밖에 없다.
1) 참여정부 시절 정치적 혼란
2) 참여정부 시절 부동산, 교육 정책의 실패
물론 참여정부 시절의 잘못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객관적이지 않다. 참여정부는 여러 성과면에서 결코 못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1)은 40대의 보수적 정서를 상하게 하였고, 2)는 40대의 실제 삶에 큰 상처를 준 것이다.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는 민주정부는 이후에 맥을 이어갈 충분한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안타깝게 무너지고 만 것이다. 등을 돌린 40대는 이후의 17대, 18대 대선에서 보수를 지지했고, 아마도 앞으로의 대선에서도 그러할 것이다. 이들의 마음을 되돌리지 않고선 앞으로도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
보수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진보는 더 싫다는 어른들의 흔한 양비론에 숨어있는 정서가 무엇인지 조금은 생각해보게 된다.
피드 구독하기:
댓글 (Atom)
댓글 2개:
문제는 사람들이 진보 정권에 대해서 훨씬 높은 잣대를 들이대는거 같애. 보수, 진보 정권 둘 다 삽질하면 보수로 기운다고나 할까. 진보는 뭐 좀 바꾼다고 해서 기대했더니 거봐~ 똑같이 삽질하잖아~ 하면서 보수로 다시 돌아서는 느낌.
그리고 이건 얼마나 영향이 있었을지 모르겠는데 육영수의 고향이 충북 옥천이었던 것도 충청표에 영향을 줬을 듯. 특히 육영수에 대한 이미지는 국민들에게 굉장히 좋고 박근혜가 (일부러) 육영수 이미지, 헤어스타일도 비슷하기 때문에 좀 도움이 됐을거 같기도 해.
Wonyoung Kim/그게 보수적인 정서인거 같아. 생각해보면 심리적으로 자연스러운게, 변화에는 스트레스가 따르게 마련이거든.
육영수 여사의 딸이라는 효과도 있었겠지. 나는 여전히 박근혜란 인물의 효과가 대단치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고작 100만 표 차이의 선거였으니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