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10일 일요일

프로메테우스 이야기


(스포일러 포함)
 나는 리들리 스콧(Ridley Scoot)의 이름에 앞서서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라는 작품을 먼저 알았다. 중학생 시절, 일본 SF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를 아주 인상깊게 보았다. 인조인간을 통해서 인간성을 바라본다는 주제가 신선했고, 무엇보다 동서양이 뒤섞인 듯한 기묘한 미래상이 매력적이었다. 곧 '공각기동대'가 '블레이드 러너'에 주제와 세계관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았고, 청소년 시절 줄곧 '블레이드 러너'를 마음 속에 두었다.
  
 '블레이드 러너'를 직접 본 것은 아마도 대학시절이었을 것이다. 아마 지금껏 통틀어 4,5번 가량 보았을거다. 영화를 통해 받은 인상은 그 이상으로 컸다. 어쨌든 '블레이드 러너'를 통해 리들리 스콧의 이름을 알았고, 뒤늦게 '에일리언'이 그의 작품인 것도 알았다.

 '프로메테우스'는 '에일리언'의 프리퀄(prequel)이지만, 여러모로 '에일리언'보다는 오히려 '블레이드 러너'를 닮은 작품이었다.

 영화 속에서 피터 웨이랜드가 엔지니어에게 생의 연장을 요구하는 장면은 '블레이드 러너'에서 로이가 타이렐 박사에게 수명을 연장해달라고 요구하는 장면과 오버랩된다.

 인조인간인 데이빗은 "모든 자식들은 아버지가 죽기를 바란다."라며 일관되게 인간을 말살하려 하는데, 아주 함축적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이 역시 '블레이드 러너'의 리플리컨트들이 타이렐 박사에 대해 가지는 감정과 맞닿아있다.

 영화 속에서 인조인간인지 의심받는 여인 비커스는 어딘가 '블레이드 러너'의 레이첼과 닮았다. 비커스의 방과 어린 시절의 홀로그램은 블레이드 러너에서 온갖 액자와 사진에 의지해 어린 시절의 기억에 열중하던 레이첼의 그 '방'을 떠올리게 한다. 어쩌면 비커스도 블레이드 러너의 레이첼이 그랬듯이 인간이 아닌 인조인간일지도 모른다. (비커스 메레디스와 피터 웨이랜드는 성도 전혀 다르다.)

 그러고보면 영화에서 창조주 엔지니어를 멸망시킨 건 다름아닌 에일리언이기도 하다. 사실 에일리언은 모체를 죽이고 탄생하는 무척 상징적인 괴물이다.


 감독은 창조자에 대해 피조물이 가지는 복잡한 감정을 묘사하는데, 이는 한 가지로 똑부러지게 정의하기 어려운 것이다. 어떤 이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로 비유하던데 정말로 닮은 점이 있다. 피조물에게 있어서 창조자란 동경의 대상이고, 넘어야 할 산인 동시에, 태생적 결핍의 책임을 묻는 증오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는 인간이나 로봇이나, 심지어는 에일리언도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피조물에 대한 창조자의 태도는 일방적이기 이를 데 없다. 엔지니어에게 있어서 인간도, 에일리언도 그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 다름아니다.

 영화의 주인공 격인 엘리자베스는 데이빗의 부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십자가를 놓지 않고 있다. 그녀가 창조주를 찾아 다시금 떠난다는 결말은 '블레이드 러너'에서 데커드가 레이첼을 데리고 도망치는 마지막 장면이 그러했듯 나름 낭만적인 장면이었다.

 '프로메테우스' 역시 '블레이드 러너'가 그러했듯 생의 의미, 불멸과 잉태, 창조와 파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무지하게 불친절한 영화였다. 많은 관객들이 영화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럴 만도 하다. 내 생각에 이 영화는 사전에 '블레이드 러너'를 보거나, 리들리 스콧의 SF적인 관심사가 무엇인지 알아야 이해가 용이할 것 같다. 나같은 리들리 스콧의 SF 매니아라면 좋아할 수 있는 영화.

p.s : 영화 초반에 인간을 창조한게 엔지니어라면, 그 엔지니어는 누가 창조했을까 라는 고전적인 질문이 나오던데, 이에 대해 논파한 예전 포스팅을 링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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