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타고라스'에서 소크라테스와 프로타고라스는 덕을 가르칠 수 있는가 라는 주제로 담론한다. 이 대화편은 알쏭달쏭한 결론으로 끝을 맺지만, 결국에 이를 집필한 플라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러했듯) 덕이란 지성을 통해 가르치고 훈련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입을 통해 플라톤이 주장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자발적으로(알면서) 잘못을 행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언뜻 생각하기에, 덕이란 마치 성격과 같이 생각되어지고, 타고난 천성같기도 하다. 사실 나조차도, 불과 얼마 전까지 이 생각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와 생각하기에, 이 명제는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진리에 부합하는 것 같다.
인간 관계에 있어서 겪게되는 많은 문제들은 사실상 모두 가치판단의 요소를 포함하고있다. 또한 많은 경우에 보다 '올바른' 판단이 보다 '선호'되는 판단과 불일치한다. 이는 우리가 인성적인 문제로 여기는 것들도, 사실은 지적인 문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지성은 물론, 감정을 제어하고 통제하는 능력도 포함하는 것이다.
또한 덕은 문화의 반영이기도 하다. 나와 아마존 원주민의 덕은 분명히 아주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덕이란 훈련되어질 수 있는 것이고, 마땅히 훈련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결론은, 나에게 조금 무서운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논의를 거듭하다보면, 잘못된 엘리트 의식으로 생각이 발전하기도 쉽기 때문이다. 그것은 유혹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나는 이에 못지않게 썩어빠진 기득권을 목도하고 있다. 그들의 지성이란 단지 편협하고, 야만적인 본능의 노예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회적 성공을 위한 지성 혹은 이를 획득하는 잠재력 -구체적으로 운동, 예술, 논리 능력 등- 은 덕의 함양 능력과 관련은 있겠으나, 일치하지는 않는다. 사회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덕이 부족한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이다. 바로 이 점이 플라톤의 주장이 정답이기도 하지만, 오답이기도 한 이유일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현명한 여자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혼자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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