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23일 금요일

유럽위기와 ECB

 이틀전 ECB가 3년 만기 대출 4890억 유로를 공급하기로 결정했다. 시장 예상치는 약 3000억 유로 정도였고, 이를 훨씬 상회하는 유동성 공급에 시장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어제 이탈리아 2년 만기 국채 금리가 드라마틱하게 떨어졌다. 허나, 이번 조치 역시 시장 경색을 풀기에 충분치 못하다는 지적이 많다. 여전히 유로존 국가들의 채권 금리는 상당한 수준이며, 독일의 break-even rate도 1.2%에 불과하다.

1. 유럽에 위기가 찾아온 근본적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는 외인/내인의 두 가지 입장이 있을 것이다. 1) 첫 번째 입장은 위기의 발발은 유럽 '밖'에 있었다고 말한다. 바로 미국의 금융위기가 그것. 이 입장은 미국발 금융위기가 유럽 경제를 위축시켰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재정 적자가 심각한 수준까지 악화된 것이 위기를 낳았다고 말한다. 2) 두 번째 입장은 유럽이 내재된 악성을 키워왔으며, 미국발 금융위기는 단지 기폭제에 불과함을 말한다.
 나는 두 번째 입장에 찬성한다.
 결정적 근거로, 스페인의 GDP 대비 국가 부채 규모는 2007년 경 40% 미만으로서 매우 건전했다. 이탈리아의 경우 보다 높았으나, 2007년 이전에 비해 부채 규모가 축소되고 있었다. 유로존 위기가 그리스에서 이탈리아, 스페인으로 확장된 것은 국가 부채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것이다. 그리스의 (유로존 전체에 비하여) 아주 작은 경제 규모와 위의 사항을 함께 고려했을 때, 국가 부채는 유럽의 위기를 일으킨 근본적인 원인이 아니다.

 유럽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정치적인 이상이 경제적인 현실을 담보하지 못한 데에 의한 것이다. 유럽과 미국을 대비하면 이는 명확해진다. 미국은 하나의 거대한 섬과 같다. 수십개 주의 사람들은 공통된 언어를 사용하며, 하나의 국가, 하나의 국민을 정체성으로 가진다. 이에 비하여 각기 다른 언어, 국가, 정체성을 가진 유럽은 통합되어질 수 없는 것이다.
 하나의 국가는 위기시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무기를 두 개 가지고 있다. 바로 재정 정책과 통화 정책이 그것인데, 유로존의 개별 국가들은 통화 정책이라는 무기를 잃어버렸다. 국가간 노동시장의 경직성 또한 위기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 몇몇 국가들의 심각한 실업률에도 불구하고, 언어와 국가, 정체성의 차이가 노동력의 이동을 가로막는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유럽의 통합에 있어서 경제적인 고려가 심각하게 결핍되었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2. 물가안정만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있는 ECB의 전통은 미국의 FRB와 분명히 다르지만, (아마도) 존중받을 가치가 있을 것이다. 사견을 말하자면, 유로존은 미국에 비하여 세계 경제에서 가지는 위상에도 다소 차이가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역내 무역이 GDP의 상당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그 특징을 가진다. 인플레이션 압력을 외부로 전가하는 미국에 비하여, ECB가 연준보다 인플레이션에 민감함을 다소 납득할 수 있는 지점이다. 물론 그 외에도 여러가지 이유가 존재한다. 가령, 핵심물가 지표를 중시하는 연준에 비해 ECB는 소비자물가 지표를 중요하게 고려한다. 또한 정치적으로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경험한 독일이 ECB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도 유관하다.

 허나, 이러한 모든 점을 차치하더라도 ECB와 독일의 지난 행보가 위기 진화를 어렵게 만들어왔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유로존의 단일 통화 정책에 의해 가장 큰 수혜를 입은 국가는 독일과 같은 유로존 내 수출국들이다. 유로존 출범 이후, 유로존 내 수입국의 통화 가치는 상대적으로 절상되었고 유로존 내 수출국의 통화 가치는 상대적으로 절하되었다. 자연스럽게 역내 무역은 수입국의 무역 적자와, 수출국의 무역 흑자를 심화시켰다. 이는 Paul Krugman의 블로그에 과거 posting된 'Mysterious Europe'의 current account balances 그래프에 잘 드러나 있다.

http://krugman.blogs.nytimes.com/2011/11/26/mysterious-europe/

 이와 같은 역내 무역 불균형의 결과, 수출국의 자본이 대량으로 수입국에 유입되었고 자산 거품을 형성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수입국의 사치와 방탕이 위기를 낳았다는 보수적인 관점을 부정하는 것이다. 결국 독일과 ECB의 입장이 보다 전향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게 된다.

 ECB의 이번 조치는 분명한 호재이다. 그러나 규모의 부족함 뿐만 아니라, 은행을 경유한 자금 대출이라는 점 때문에 실제 채권 금리 인하를 얼마나 이끌어 낼 수 있는가에 대한 비관적 시선도 많다.
 많은 이들이 내년 1분기가 유로존 위기의 turning point가 되리라 예측하고 있다. Nouriel Roubini는 결국 몇몇 국가들이 유로존을 탈퇴할(해야만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가장 냉철한 해법인 것 같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Sims, Sargent는 과거 미국의 통합과정에 비유하여 유로존 위기의 해법을 제시한다.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1&no=658536

 오늘은 ECB 이사가 드디어 양적완화에 대하여 언급했다. 이건 정말 놀랄만한 변화다. 앞으로 유로존의 위기가 어떻게 진행될까?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1122359071

p.s : 2012.8.31 지난 글을 다시 보니 논리가 조금 성글어보여 약간 수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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