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23일 금요일

안철수는 하비덴트일까?

 
 안철수 후보가 사퇴했다. 나에게 그는 작년에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이후 예측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단일화 협상에 들어가며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하더니, 마지막에 가장 큰 충격을 남겨주고 후보직을 떠났다.
 난 정치란 연애와 참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연애에서 상대에게 사랑받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철저하게 상대방의 입장에 맞춰서 행동하면 된다. 선수는 자신이 해주고 싶은 것이 아니라,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해준다.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아니라, 상대가 보고 싶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어떤 이가 선수가 될 수 있을까? 물론 애초에 상대방이 원하는 바로 그런 사람이라면 그(그녀)는 그녀(그)에게 최고의 상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큰 행운을 필요로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해법은 결국 '연출'이다. 상대가 바라는 모습을 코스프레하는 것이다.

 정치인 안철수는 과연 어디까지가 진심이었을까? 인터넷 상에서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나돌고 있지만, 나는 솔직히 그건 누구도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과연 안철수 본인은 자기 마음 전부를 알까? 사람이 자기 자신의 마음도 온전히 들여다보기 힘든데, 남의 마음을 어떻게 다 헤아릴까? 그냥 그의 말과 행동을 보고 예측하고, 믿을 따름이다.
 어쨌든 나에게 불확실성 그 자체였던 안철수는,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건에서 중요한 단서들을 여럿 보여주었다. 특히 오늘 그가 내린 후보 사퇴라는 결정은 많은 단서를 준다.

 안철수의 지지층은 무당파와 정치무관심 내지는 정치혐오를 가진 젊은층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안철수의 진심이 어떻든, 그는 지지층의 이해에 꽤나 충실하게 행동했다.
 안철수는 정말 대통령이 되고 싶어했다. 그리고 새누리당의 재집권을 막기를 원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그에게 쇄신의 대상 내지는 파트너였을 뿐 지지대상은 아니었다. 안철수는 박근혜를 이길 자신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게 욕심을 낳아서, 단일화 협상 중에 계속해서 실책을 범하게끔 만든 가장 큰 이유가 아니었나 싶다.

 나는 안철수가 계속해서 언급하는 '진심'이 거짓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의도된 거짓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가 거짓 신념에 사로잡힌 사람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결코 '의도적'으로 저 정도의 감정을 꾸며내고, 거짓 진심을 입으로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안철수가 모든 정치적 행위를 진심으로 했다고 보기에는 힐링캠프에서 언급한 '곰보빵' 에피소드나, 국회의원 정원 축소 등의 정치개혁 방안은 이상했다. 성공한 기업가가 '곰보빵' 정도의 부정 밖에 저지른 적이 없다고 '진심'으로 말할 수 있다는 것, 국회의 역할을 축소시키면 정치개혁이 이뤄질거라고 '진심'으로 믿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게다가 너무 늦은 출마선언과 정당정치에 대한 과소평가, 갖춰지지 않은 정책과 세력 등이 완주에 대한 그의 강한 의지와 더해져, 이해할 수 없다는 결론으로 내 생각을 몰아갔다. 그리고 오늘의 사퇴는 협상단의 협상없이, 문재인과의 담판도 없이 이루어졌다.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이는 자기 희생의 감동으로 다가오는 모양이다. 나에게는 가장 영리한 의사결정으로 보인다.

 어쩄든 안철수는 어려운 의사결정을 해냈고, 커다란 정치적 자산을 얻었다. 감성에 호소하는 정치를 효과적으로 구사하는 이 이상한 진심의 정치인이 앞으로 어떤 행보를 이어갈까. 감성은 좋은 정치에의 열망을 이끌어 낸다. 하지만 좋은 정치란 결국 이성에 의해 인도되어야만 하는데.

2012년 11월 8일 목요일

문재인의 고용정책과 교육정책



 어쩌다보니 또 문재인의 정책에 대한 이야기다. 아무튼 문재인의 고용정책이 오늘 발표되었다. 이틀 전에는 교육정책이 발표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둘다 기대이상으로 마음에 들더라. 좋은 정책 방향을 잡았으니,이를 잘 현실화할 수 있으면 더 좋은 미래가 펼쳐지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어쩌면 내가 정치에 너무 큰 기대를 하는건지도 모르지. 하지만 대선후보가 고민의 흔적이 있는 정책을 들고 나왔다는 것은 어쨌든 환영할 일이 아닐까?

1. 먼저 고용정책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이전 포스팅에서도 밝힌 바가 있지만, 나는 공공부문 고용확대가 바람직한 고용창출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무엇보다 15만명의 교육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18만명의 보육교사를 준 학교교사 수준으로 강화한다는 방침은 아주 마음에 든다.이전 포스팅에서 밝혔듯이, 자녀 양육에 깊게 관련되는 보육 및 교육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은 여성의 부담을 덜고, 여성에게 고용의 기회를 제공하는 아주 바람직한 것이다. 여성이 받는 구조적인 압력을 덜어주는 것은 경제적인 향상 뿐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도 우리 사회를 진일보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문제가 되는 것은 고용의 효율성이다. 질이 나쁜 고용은 국가 재정을 축낼 뿐 아니라, 사회문화를 병들게 한다. 일자리청의 부서간 경쟁은 고용의 양적 창출에 효과적이지만, 질적 측면에서 취약할 수 있다. 결국 고용의 질적 측면을 어떻게 평가하고, 반영할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이다.
 공중보건의로서 보건소에서 업무평가가 이뤄지는 구조를 바라보면, 솔직히 비효율적으로 생각될 때가 많다. 예를 들어서,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닌 치과와 의과의 업무 성과를 보건소에서는 똑같이 환자의 숫자로만 평가한다고 하더라. 약 처방 위주의 의과와 스케일링 치료 위주의 치과는 같은 환자수라고 해도 그 의미가 아주 다르다. 이러한 문제는 그 분야를 이해하지 못하는 비전문가가 보건소 업무를 너무 단순한 방식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일자리청은 다양한 일자리의 특성을 파악하고, 효과적으로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정부와 공공조직이 효율적으로 재편되지 않으면, 큰 그림이 아무리 좋더라도 정책은 실패할거다. 그리스는 전 국민의 1/4이 공무원이었다. 그들의 정치적 입김이 막강하여 정부의 재정지출은 효율적이지 못했고,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국민들은 가난에 허덕였다. 물론 그리스의 몰락에는 미국의 위기와 유로존이라는 구조의 탓이 크지만, 방만한 재정운영도 한몫을 했다. 우리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만 한다.

2. 언젠가 교육과 성장,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블로그에 해보고 싶다. 어쨌든 문재인의 정책에 국한해 이야기를 조금 해보련다. 교육정책에 관한 논쟁은 결국 평등과 효율 가운데 무엇을 우선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미국과 캐나다 등에서 이뤄진 연구결과를 종합해보면, 교육환경이나 학급규모보다 질높고 균질한 또래집단과 좋은 선생님이 교육에 더욱 효과적이라는 결론이 얻어진다. 다만 대부분의 교육연구는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를 시험점수로 평가하므로 한계가 있다.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고자 몇몇 연구들은 연봉을 기준으로 사회적 성공을 측정하는데, 그 결과는 부모나 또래집단의 영향력을 더욱 강조한다.
 아무튼 여러 연구를 바탕으로 평가할 때, 서열화 교육은 학습의 효율성을 분명히 높인다. 이에 대한 평등 교육 지지자들의 반박은 근거가 부족해보인다. 그럼에도 평등 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계층간 이동을 확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열화 교육은 불평등을 심화한다. 기득권 층은 기존의 자산과 우수한 유전자, 더 나은 교육환경을 바탕으로 세대를 넘어서 지위를 공고히 할 수 있다. 계층간 이동이 자유로이 이뤄지지 못하면, 장기적으로 사회가 건강함과 활력을 잃는다. 효율을 어느정도 희생하더라도 평등을 구현할 수 있는 교육구조가 만들어져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평등과 효율을 조화시킬 것인가. 문재인의 교육공약은 완벽하진 않더라도, 그럴듯한 해법을 보여주고 있다. 선택적 서열화라고 할 수 있는데, 가령 과학고를 제외한 특수목적고교의 폐지가 그러하다. 개인적으로 '과학고'는 필요없다고 생각한다. 과학고 출신에 공대 졸업생으로서 내가 많은 지인들과 공감하는 부분인데, 어릴 때 고교 수학, 과학을 그렇게 많이 배울 필요가 없다. 차라리 영어랑 국어, 특별활동을 강조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꼭 과학고가 아니더라도 소수 정예를 위한 특목고는 존재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고교평준화가 이뤄지면 초,중등 사교육은 분명히 축소된다. 평준화가 이뤄지면 인적 자원의 개발이라는 측면에서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은 틀림없다. 이 점에 있어서 문재인의 교육정책은 분명히 효율보다는 평등에 방점을 찍고있다. 그렇지만 효율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않았다. 교육부문의 고용을 확대하여 학급의 규모를 축소하고, 인프라 투자를 통해 교육환경을 선진화해 효율성을 보완하면, 이러한 평준화 방식도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보육교사와 보육시설의 질적 향상이다. 학습의 효과는 어린 나이에 배가 되기 때문이다.
 그 외 아동교육복지기본법은 사교육 문제를 어린이 인권의 문제로 바라본다는 점이 좋지만, 부작용도 우려된다. 수요가 살아있는 상황에서 공급을 제한하면, 자칫 음성적인 사교육 시장이 활성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른 정책과 어우러져 대응해야 할 부분이다.

 수능의 자격고시화가 이루어지면 각 대학의 평가방식에 대응한 또다른 사교육 시장이 형성되는 법이다. 이에 대하여 대입전형을 단순화하고 장기적으로 내신중심선발을 유도하는 대응은 바람직하다. 물론 내신중심의 사교육 시장이 형성되겠지만, 그나마 공교육이 사교육과 질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부문이 내신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내신을 상대평가 방식으로 평가하면 그 자체로 지역균형발전을 돕는다. 어쩌면 어떤 부동산 정책보다 효과적인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음.. 미국 대선도 끝났고, 벌써 우리나라 대선도 코앞이다.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