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31일 수요일

문재인의 복지정책


(2012. 12. 7 lafite님이 답글을 통해서 의료공약에 관한 내용을 정정해주셨다. )

 나는 진보를 지지하고, 이번 대선에서는 문재인을 지지한다. 문재인으로의 단일화와 대선 승리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문재인의 모든 것을 좋아하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솔직히 문재인을 바라보는 나의 심정은 조금 복잡하다.

1. 문재인이 어제 먹튀방지법을 전격 수용했다. 그의 정치적 자산이 무엇인가 극명히 보여준다. 문재인은 이미 새누리당의 NLL 의혹에 대해서도 거침이 없었다.  이 사람의 자산은 분명히 노무현의 그것과 유사하다. 걸어온 삶에 부끄러움이 없고, 사리사욕이 없으며, 선의가 가득 느껴진다. 바라보는 사람이 꿈을 꿀 수 있게 해준다. 현실세계에서 정의가 승리하는 꿈. 문재인이 올해 박근혜를 무너뜨릴 수 있다면 그 저력은 역시 이것이 아닐까.

1-2. 문재인의 인간적인 매력에도 불구하고, 그가 좋은 대통령이 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드는 것은 그와 민주통합당의 정책이 보여주는 질이다. 지금까지는 솔직히 신뢰가 가지 않더라. 이 사람이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에 대해서 깊은 고민을 했을까? 좋은 대통령이 될 '준비'가 되어있을까? 정책에 대해 조금 살펴보았다.

2-1. 문재인이 어제 복지공약을 내놓았다. 지금까지 중 가장 잘 정리된 내용이었다. 기초노령연금,장애인연금 인상, 아동수당은 적극적으로 찬성한다. 청년과 실직자를 대상으로 한 취업준비금, 실직자 보험금은 논란의 여지가 있어보인다. 문제는 '보육, 교육, 의료, 요양 4대 민생지출 절반 축소' 부문이다. 대단히 급진적인 내용이 담겨있는데, 무상교육, 무상보육은 그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우리나라가 성장동력을 잃지않기 위해서는 출산률 증가가 필수적이다. 더구나 무상교육, 무상보육을 위한 국가차원의 투자는 공공부문 고용을 확대하게 될 것인데, 고용문제의 해결에 있어서도 아주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2-2. 전통적으로 성장동력이 되어온 제조업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분명히 고용효과에 있어서 한계를 맞이하고 있다. 제조업의 고용효과가 줄어드는 것은 기술혁신 뿐만 아니라, 중국과 같은 경쟁국의 성장탓이다. 이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은 서비스업에서 탈출구를 찾아야만 한다. 서비스업의 큰 축은 교육, 의료, 외식, 엔터 등인데, 이 가운데 정부가 가장 효과적으로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분야가 바로 교육이다.
 또한 교육 분야를 성장시키는 것은 여성을 두 가지 방향에서 해방시킨다. 육아부담을 덜어주고, 교육 부문에 여성의 고용이 확대될 수 있다. 여성문제는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중요하다. 육아부담을 덜고, 일하는 여성이 늘어나면 우리 사회는 대단히 달라지지 않을까?


3-1. 문제는 의료분야이다. 내가 속한 분야인 만큼 어느정도는 전문성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의료분야에 있어서 문재인의 정책은 공감하기 어렵다.
1) 어떤 질병에 걸리더라도 본인이 부담하는 의료비가 연간 100만원을 넘지 않도록 하겠다.
2) 건강보험의 비보험 진료를 모두 급여 항목으로 전환하겠다.
라고 밝히고 있는데, 2)가 단기간에 합리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지, 재정적으로 가능하기나 할지 의심스럽지만, 이보단 1)에 집중해서 이야기해보련다.

 우선 연간 100만원의 현실성에 대해서 의문이 든다. 요즘 양악수술은 수천만원이 들고, 임플란트를 한 개만 심어도 100만원이 넘는다. 그런데 이것을 '연간' 100만원으로 축소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정책의 현실성에 대하여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어쨌든 1)을 너그럽게 받아들이자면, 결국 고가의 진료에 대한 건강보험 지급률을 높이겠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폭증하는 건강보험료는 어떻게 충당할건가? 물론 세수를 늘려야한다. 그렇다면 급여 항목 확대를 위한 재정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세수 확보만으론 턱없이 부족하다. 이에 대한 해법은 두 가지일 것이다.
 첫 째, 저가 진료의 지급률을 낮춘다. 즉 저가 진료의 본인부담 의료비를 증가시킨다. 사실은 많은 의료인들이 주장하는 바가 이거다. 보험수가의 합리화. 하지만 반발이 거셀거다. 정치인이 국민들의 엄청난 반발을 뚫고 보험수가를 합리화시킬 수 있을까? 나는 부정적이다.
 결국은 둘 째 해법, 의사집단을 압박하는 방식을 취할 것이다. 그 정도는 지금까지보다 훨씬 심각해질 것이다. 진료를 제한하고, 재료를 제한할 것이다. 비전문가 집단이 전문가 집단에게 역선택을 강요할 것이고, 의료산업의 질과 양이 모두 감소될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의사로서는 어떻게 봐도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니다.

3-2. 의료산업이 위축되면, 의료산업의 고용 역시 위축될 것이다. 서비스업의 한 축이 약화되는 셈이다. 이것이 어떤 결과를 낳을까. 아직은 짐작도 가지 않는다. 어쨌든 나는 문재인을 지지한다. 나는 능력이 있다. 막말로 대한민국에서 치과의사로 살기가 지랄맞으면 이민을 가도 된다. 그렇게 생각하려고 한다. 나의 이해관계 때문에 박근혜를 지지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방향이 옳은지는 잘 모르겠다. 정책이 좀 더 구체화되면 의료산업의 시장성을 확보하는 방안들이 보완될 수도 있겠지.

 그러고보니 다른 대선후보들의 정책도 대충은 훑어보았는데 참 유사하다. 개인적으로는 박근혜가 정책적으론 가장 잘 준비되어 보인다. 글 제목은 '문재인의 복지정책'인데 대선정책이라는게 워낙에 사탕발림이기도 하고, 그다지 영양가있는 포스팅은 못된 것 같다. 가계부채나 자영업자 문제에 대한 정책을 살펴보는 것이 보다 논쟁적이겠지. 뭐, 다른 기회가 있겠지.

 어쨌든 대선이 기대되고, 다가올 미래가 걱정되고, 궁금하기도 하다.

2012년 10월 25일 목요일

블로그를 만든지 1년


1. 세월이 너무 빠르다. 블로그를 만든지 오늘로 1년이 되었다. 블로그를 만드는 목적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 중에 나로서는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다른 이와 소통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가장 컸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이 블로그는 아직까지 실패하고 있다고 봐야겠지. 하지만 여러번 밝혔듯, 보다 개인적이고 편안하게 블로그에 나의 생각과 삶을 털어놓을 수 있다면 여전히 이 블로그는 가치있다고 생각한다. 더 솔직해지는게 중요할듯!

2. 공중보건의 생활을 하는 동안, (아마도) 인생에서 가장 심각하게 삶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 작년에는 주로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만 할까 하는 점을 고민했다면, 올해는 좀 더 구체적으로 결혼과 연애에 대한 고민이 주를 이루고 있다.

3-1. 복지는 참 어려운 문제이다.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무료틀니사업이 있다. 어느날 한 할머니가 이 사업으로 만든 틀니가 불편하다며 보건소에 찾아오셨는데, 알고보니 작년에 만든 멀쩡한 틀니를 가지고 계신 분이었다. 게다가 그 틀니에 만족하고 계셨기 때문에 사실상 새 틀니가 필요하지 않은 분이었다. 그럼에도 어떻게 가능했는지 무료틀니를 신청해서 새 틀니를 만드신 것이다. 기존의 틀니에 잘 적응하고 계신 분을 새로 틀니를 만들어서 만족시키기는 대단히 어렵다. 게다가 악골 상태도 좋지 않아서 아주 까다로운 환자분이었다. 결국 작년에 만든 틀니를 잘 쓰시는 게 맞는 길이라고 설명하고 돌려보냈는데, 어제 여사님께 들으니 할머니가 말씀을 안 들으시고, 새 틀니를 만든 치과에 가서 소란을 한바탕 피우신 모양이다. 새 틀니를 제작했던 치과의사로서는 답답한 노릇이다.

 이 무료틀니사업이라는게 보건소에서 혜택을 받을 환자분을 선택하면 환자분이 원하는 치과를 선택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담당 치과의사로서는 피할 수 없는 폭탄을 떠안은 것과 같다. 할머니는 무료라는 이점을 누리고자 불필요한 틀니를 원하셨다. 그로 인해 다른 저소득층 환자가 받아야할 복지의 혜택이 감소되었다. 복지 정책이 야기한 도덕적 해이의 전형이다.

3-2. 올 7월부터 75세 이상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레진상 완전틀니가 건강보험이 적용되었다. 향후 임플란트까지도 보험적용하겠다고 하니, 치과 진료도 이제 보험의 보장을 받게 되는 영역이 점점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치과 영역까지 보장성이 확대되는 것은 큰 방향으로서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보험의 부작용도 많다. 가령 7월부터 적용된 위 보험의 경우에, 1) 나이든 노인분이 75세가 되기 전에는 틀니가 건강상 필요하여도 틀니를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또한 더 나아가서 2) 75세가 된 노인분이 부분틀니가 가능해도 멀쩡한 이를 발치하고 더 저렴한 완전틀니를 제작하려고 한다. 이것은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아무쪼록 치과 영역의 보험적용이 과학적으로 잘 짜여졌으면 좋겠다.

4. 서울대병원 일류 교수진이 3억이 넘는 연봉을 받는다며 도마위에 올랐다. 이럴 때 내가 진보를 지지하는 것이 옳은가 회의에 빠지곤 한다. 대체 이것이 말이나 되는 일인가. 이런 기사가 나올 때마다 거론되는 '환자를 위해 봉사해야만 하는 의사가 환자를 이용해서 배를 불리고 있다.'라는 주장은 잔인하고, 저속하다. 다른 이가 마땅히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앗아간다는 점에서 잔인하고, 사람들의 마음 속에 질투심을 깃들게 한다는 점에서 저속하다. 과연 서울대병원의 일류 교수진이 3억의 연봉을 받기에 모자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분야의 일류도 그 정도, 혹은 그 이상의 연봉을 받고있다. 또한 서울대병원만 선택진료를 제한하면 그 수요는 사라지는가? 선택진료를 받으러 삼성, 아산, 세브란스 병원으로 가면 그만이다.

5. 보수는 킹카병에 걸리면 안된다. 진보는 열등감에 빠지면 안된다. 조금 더 유식하게 허영과 질투로 하자. 허영에 사로잡힌 보수주의자들은 흔히 자신들이 누리는 많은 것들이 순전히 스스로의 뛰어남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틀린 생각이다. 질투에 사로잡힌 진보주의자들은 흔히 다른 이가 가진 것을 빼앗으면 무너진 자존심이 회복되리라 믿는다. 틀린 생각이다. 이 두 감정을 경계해야만 더 좋은 보수가, 더 좋은 진보가 될 수 있다.

2012년 10월 17일 수요일

공보의가 하는 생각


1. 공중보건의로서 진료를 한다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다. 공무원처럼 정해진 급여를 받으며 진료를 할 뿐만 아니라, 환자분들도 무료 내지는 정해진 적은 금액만 납부하면 된다. 대체로 경제적 사정이 안좋은 노인 환자분들을 상대하다보니 요즘엔 주로 치주수술에 마음을 쏟게 된다. 나이가 들면서 잇몸에 염증이 장기간 진행된 노인 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치주수술이란 주로 치석을 제거하거나 잇몸, 골을 성형하기 위해 시행하는 술식이다. 문득 생각해보니, 임플란트가 치주 분야도 참 많이 바꿔놓았다.

 임플란트 이전에는 존재하는 치아를 최대한 뽑지않고 유지하는 것이 치료의 목적이 되어서
치석 제거 뿐만 아니라, 위생적인 형태로 골을 성형하는 것도 중요했다. 임플란트 덕택에 건강하지 못한 치아의 가치는 줄어들었고, 임플란트가 식립될 골의 가치는 증가했다. 덕분에 적극적인 골 삭제를 요구하는 치주수술은 요새 거의 시행되지 않는 것 같다.
 보존치료에 속하는 신경치료도 마찬가지다. 오랜 시간이 걸리고, 환자와 술자 모두 고생하는
신경치료의 가치가 임플란트의 등장으로 줄어들었다. 문제가 되는 치아를 임플란트로 대체해도 환자가 어느정도 만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첫 번째 신경치료가 실패한 뒤 시도하게 되는 재신경치료나 치근단수술, 치아재식술 같은 것들이 그러하다. 아무래도 성공률이 낮거나, 침습적인 치료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중보건의는 환자에게 청구하는 금액에도 부담이 없고, 급여도 일정하기 때문에 발치를 하기 전에 최대한 다른 치료를 시도해볼 수가 있다. 나에게 의지가 있고 환자가 치료 과정을 견뎌낼 용의만 있다면.
 가끔 의사가 좋은 진료를 하는데 시장경쟁이 방해가 되기도 한다는걸 깨닫는다. 시장에서 형성되는 진료의 가격과 진료가 가지는 실제가치가 불일치할 때도 많기 때문이다. 치아를 살릴 가능성, 환자와 술자의 노동만 고려해서 술식을 시도할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은데, 현실적으로는 치과의사의 이윤이나 평판, 환자의 비용 등도 함께 고려해야만 한다. 그리고 건강보험제도는 보험/비보험진료로 구분하고 더욱 복잡한 영향을 미친다.


2-1. 시장경제의 원리로 의료계가 돌아가다보니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발생한다. 긍정적인 면은 아무래도 진료동기일 것이다. 이윤은 의사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고민하게 한다. 부정적인 면은 이윤동기와 공공의 목적이 부합되지 않을 때 발생한다.
 치과의 경우에도 보험수가에 묶여있는 신경치료 가격이 임플란트의 1/10 수준인 것은 신경치료에 대한 인센티브를 떨어뜨리고, 임플란트에 대한 인센티브를 증가시킨다.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가 이런 점에서 아쉽다. 건강보험제도가 환자들에게 싼 가격에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주지만, 의사들을 더 높은 수익을 보장하는 비보험 진료로 유인한다. 의사들의 지역, 진료과목 편중에 대한 기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런 추세는 조금 속상하다. 수익이라는 미명 하에 의사로서의 소명의식과 긍지가 희생되고, 환자 역시 마땅한 권리를 잃는다.

 또한 우리나라는 의사가 먼저 진료를 하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나중에 진료 내역을 검토하고 보험급여를 지급하거나, 과다청구 등의 이유를 들어서 삭감할지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미국의 경우에는 의사가 진료를 하기 전에 먼저 보험회사에 진료 계획을 알리고, 보험회사가 검토 후 보험급여를 지급하기로 하면, 그에 맞춰서 진료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급여를 삭감당하면, 의사는 진료비를 받을 수 없고, 환자에게 과잉진료를 했다는 비난을 받는다. 즉 그 피해는 의사에게 간다. 미국에서는 급여를 거부당하면, 환자가 원하는 진료를 받을 수 없다. 그 피해는 환자에게 간다. 정부나 보험회사는 똑같이 지출을 줄이려하므로, 우리나라에서는 의사가 정부와 대립하고, 미국은 보험회사가 환자와 대립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의사는 '이익에 눈이 먼 기득권'이라는 비난을 받고, 미국에서는 보험회사가 그런 비난을 받는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의사들 입장에서는 여러가지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건강보험제도에 비판적일 수 밖에 없다.

 주변의 여러 사례를 들어보면 재정 지출 삭감에만 초점을 맞춘 급여삭감으로 정당한 진료를 한 의사들에게 피해를 준 경우도 상당히 많다. 인간이 다루는 제도란 완벽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안타까운 일이다.


2-2. 개인적으로는 건강보험제도를 현행대로 유지할 것이라면, 크게 봐서 보험의 보장성은 넓히고 환자의 개인부담금은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옳은 거 같다. 무엇보다 기본 진찰 비용이 높아질 필요는 있다.
 첫 째로 진찰도 비용이 필요한 서비스 임을 환자들에게 알릴 수 있고, 둘 째로 의료쇼핑이나, 불필요한 내원을 줄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가 진료에 대한 개인부담금이 증가하면, 보다 고비용의 진료를 보험이 보장해줄 수 있는 재정적인 여력을 가지게 된다.

 지금과 같이 더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신경치료보다 비보험인 임플란트가 10배 이상 비싼 상황에서 의사의 양심에만 기대는 정책은 어리석다. 보장성이 확대되어 신경치료와 임플란트의 가격차이가 줄어들면 치과의사들이 치아를 살리는 치과의사 본연의 사명감을 충족시키면서 합당한 이윤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의사들의 지역 편중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수도권을 제외한 모든 지역이 쇠퇴해가는데 서울 출신이 대부분일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상류층에 해당하는 의사들이 수도권을 선호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정책적으로 의사들을 지방과 시골에서 근무하게 할 좋은 인센티브를 제공해 주어야만 한다. 가령, 현재 노르웨이나 스웨덴의 경우에는 '의료취약지 내 의과대학 설립'을 통해 의료 불균형을 해소하고 있고, 미국이나 일본은 '일정기간 의료 취약지내 의료 활동'을 조건으로 학자금 지원정책을 제공해주고 있다.

3. 보건소에 방문하는 환자들은 태반이 생계가 어려운 노인분들이다. 도와주고 싶은 순박한 환자들도 많지만 의욕을 잃게 만드는 환자들도 있다. 예를 들면 무임승차를 하려는 환자들이 그렇다.
 얼마 전에 한 노인분이 보건소에 와서는 원하는 약을 내놓으라고 나를 닥달한 적이 있다. (나야 물론 이름도 생생히 기억하지만 여기 올린다고 볼리도 없으니..) 진단결과 약 처방이 불필요해서 이를 거부했지만, 고함을 치고 삿대질을 하는 등 워낙에 막무가내라 결국 약을 처방해줬다. 직원 분의 실수로 환자분이 나간 다음에야 주소가 경기도 광주시인 것을 발견하고 허탈했다. 위장전입이었던 것이다. 노인 분들 중에는 약을 무조건 많이 타야만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참 많다. 어차피 싸니까 이득이라고 생각하시는 거다. 작년에 경남 병원선에 있을 때도 그랬다. 섬마을 환자들은 늘 '내가 낸 세금이 얼마인데..'라고 하시면서 파스는 꼭 두 장, 약은 가급적 많이 달라고 조른다. 사실 세금 거의 안내온 분들도 많고, 막상 약을 거의 안 챙겨먹는 분들도 많다. 몇몇 환자분들 집을 방문하면 몇달치 약이 쌓여있다. 어차피 공짜로 주니까 계속 쌓아놓으시는 거다. 어떤 용도인지도 모르시면서. (역시 마도에 전설적인 할머니가 계셨는데 밝히지는 않겠다) 아무튼 이런 문제는 나보다는 약 처방을 많이 하는 의과 분들이 훨씬 많이 겪는 스트레스일 것이다.

 늘 하는 말이지만, 더 가난한 사람이 더 부유한 사람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한 것은 아니다. 반대의 경우 역시 아닌 것처럼. 인간은 인센티브에 반응하는 법이고, 공짜 점심은 맛있는 법이다. 경제학자들은 공짜 점심은 없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장기적으로 본다면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케인즈의 말처럼 나에게는 공허하게 들린다.
 우리네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수많은 우연으로 점철되어 있지 않나?

p.s : 사진은 얼마전 대학 동기들과 만나서 카드 게임을 친 날 찍은 칩들. 아 재밌었지. 포스팅 내용과는 0.01%의 관련도 없구나.